정경미가 14일 베이징 과기대체육관에서 열린 여자유도 78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브라질의 실바에를 누르기 한판으로 이기고 기뻐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유도 정경미, 렌즈 빠져 결승행 놓쳤지만 값진 ‘동’ 건져
‘곰’으로 불렸다. “도복 끈도 좀 멋있게 매지 않고, 배꼽 위쪽에 걸쳐 매던 애였어요. 처음 보면 어눌하게 보일 수 있는데, 같이 도복 잡아보고 그 힘에 깜짝 놀랐죠,” 정경미(23·하이원)의 중·고교 시절 코치였던 현 여자유도 57㎏급 국가대표 강신영(31·수서경찰서)의 얘기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투포환 선수로 상도 탔던 정경미는 그 힘으로 고교 3학년 때 유도 전국대회를 다 휩쓸었다. 강신영은 “경미 별명이 곰이었는데, 경미 아버님은 늘 ‘우리 공주’라고 부르셨죠”라며 웃었다.
정경미는 부친 정종영(65)씨가 42살에 얻은 1남2녀 중 막내 ‘늦둥이’다. 위 언니와는 11살 차다. 그 딸을 직접 보려고 부모님이 경기장을 찾았다. 아버지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라고 했다. “뭐 하나 풍족하게 못 해준 게 미안하다”는 어머니는 베이징에 와서도 새벽기도를 거르지 않았다.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돈을 잃고 사위가 있는 딸집에 가족이 같이 산 적도 있다. 그 속에서도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던 딸이고, 실업팀(하이원) 가면서 받은 계약금(5천만원)으로 가족을 챙기던 딸이었다.
‘곰 같은 공주’ 정경미는 지난해 세계선수권 3위를 했다. 도복 잡고 당기는 힘과 업어치기가 그의 무기다. 정경미는 3회전에서 바로 그 업어치기 한판승으로 4강에 올랐다.
14일 베이징과학기술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여자유도 78㎏급 얄레니스 카스티요(쿠바)와의 4강전. 경기 중반 정경미의 오른쪽 렌즈가 빠졌다. 정경미는 잡기싸움을 해봤지만, 상대는 도복 깃을 내주지 않았다. 정경미는 공격이 적극적이지 못했다며 지도를 받았고, 이게 결승진출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정경미는 에디난치 실바(브라질)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2분21초를 남기고 누르기 한판승으로 귀중한 동메달을 따냈다. 여자유도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성숙(63㎏급), 조민선(70㎏), 김선영(78㎏급) 이후 8년 만이다. 체육교육학 박사인 ‘56살 노장’ 윤익선 여자대표팀 감독이 2004년 11월 부임해 선수들의 훈련파트너가 되어주며 똑같이 훈련한 지 4년 만에 이룬 결과다.
정경미는 “렌즈 하나만 끼면 시력 차이가 나기 때문에, 동메달 결정전엔 나머지 렌즈 하나도 빼고 나왔다. 경기에 큰 영향은 없지만 상대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어야 보이는 정도”라고 했다. 정경미는 공식 기자회견실에서 질문하는 3m 앞 기자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정경미는 "자신의 시력이 마이너스"라고 했는데, 전문가들은 `마이너스 시력'이란 말이 없는 만큼 3m 앞 사람의 표정도 읽을 수 없다면 시력이 0.06 이하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정경미는 “여자유도를 위해 언니들과 훈련파트너들 모두에게 금메달을 따겠다고 했는데 아쉽다. 더 노력해서 다음 대회엔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정경미의 목엔 격렬한 경기 탓에 빨간 상처가 그어져 있었다.
베이징/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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