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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포츠일반

이라크 조정 ‘금메달 보다 값진 꼴찌’

등록 2008-08-12 10:13

총성이 심해지면 3~4일 동안 티그리스 강변 창고에서 숨을 죽인 채 앉아 있었고, 사위가 조용해지면 재빨리 강물에 배를 띄워 경비선들 사이로 힘차게 노를 저었다.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당당히 베이징올림픽 무대에 나서 굵은 땀방울을 흘린 이라크 조정 대표팀 선수들의 인생역정이 뜨거운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11일 저녁 중국 베이징 순이 올림픽 조정카누 공원에서 치러진 조정 남자 더블스컬 패자부활전이 끝나자 관중은 꼴찌로 들어온 이라크의 하이다르 노자드(25)-후세인 제부르(32) 조를 향해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2,000m 레이스를 마친 이라크 대표팀의 공식기록은 6분52초71.

1위를 차지한 러시아(6분23초52)보다 무려 30초 가까이 뒤떨어지는 형편없는 성적이었지만 오히려 자신들의 예선 기록을 7초 이상 앞당긴 좋은 결과였다.

초를 다투는 조정 경기에서 30초는 영겁과도 같은 시간. 하지만 이라크 조정팀에게 기록은 무의미했다. 올림픽 무대에 나섰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라크 대표팀은 베이징에 오기까지 두 번의 위기를 넘어야 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전쟁. 바그다드 체육대학에 재학 중인 노자드와 제부르는 유일한 훈련장인 티그리스 강에서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총알을 감수하고 훈련에 매진했다. 그나마 군사시설 근처에선 배를 돌려야만 했다.

전투가 심해지면 며칠씩 집안에 숨어 있어야 했고, 총성이 멎으면 티그리스 강으로 뛰어나가 배를 띄웠다. 그나마 안전하게 훈련을 할 수 있는 강의 거리도 1,700~1,800m에 불과해 올림픽 코스인 2,000m 훈련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두 번째 시련은 올림픽 개막 직전 터져 나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지난달 '이라크 정부가 자국의 국가올림픽위원회(NOC)에 정치적으로 개입했다'며 이라크의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금지한 것.

생명을 걸고 베이징행을 갈구해왔던 꿈이 헛수고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지만 올림픽 개막을 일주일여 앞두고 IOC가 극적으로 이라크의 출전을 허용하면서 마침내 이들의 노력이 빛을 보게 됐다.

더구나 와일드카드의 주인이었던 북한이 불참하면서 마지막 한 장 남은 출전권을 얻는 행운도 따라왔다.

비록 어렵게 출전한 대회에서 예선과 패자부활전 모두 꼴찌로 경기를 마쳤지만 이라크 조정 대표팀 선수들의 얼굴에는 실망보다 뿌듯함이 가득했다.

노자드는 "IOC가 올림픽 출전금지를 결정했을 때 걱정스런 마음에 며칠을 뜬 눈으로 지샜다"며 "하지만 우리는 결국 베이징에 왔다. 지난 일에 대해 누구의 탓도 하고 싶지 않다"고 웃음을 지었다.

그는 "베이징에서 경기를 치렀다는 것 자체가 이라크 국민에게 중요한 일"이라며 "이라크의 좋은 면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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