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기춘 한판패… 2008베이징올림픽이 계속된 11일 베이징 과학기술대체육관에서 열린 유도 73kg급 결승전에서 왕기춘이 아제르바이잔 엘누르 맘마들리에게 발목잡아매치기 한판패 당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베이징=연합뉴스) 특별취재단 = 유도에서 아깝게 은메달에 머문 왕기춘(20.용인대)은 '황금체급' 73㎏급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표로 뽑힌 기대주.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원희(27.한국마사회)와 선발전에서 맞붙을 때마다 화제를 모았고 결국 5월 최종선발전 승자 결승에서 이원희를 물리치고 올림픽 티켓을 따냈다.
1988년 9월13일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계상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 왕태연 씨의 권유로 유도를 시작했으며 서울체고 재학 시절부터 73㎏급의 유망주로 급부상했다.
고교시절 이원희의 훈련 파트너를 하며 기량을 연마한 왕기춘은 3학년 때인 2006년 직지컵대회 우승에 이어 KRA컵 은메달,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동메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용인대에 갓 입학한 2007년 3월에는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당시 73㎏급에서 '양강' 체제를 이루고 있던 이원희와 김재범(23.한국마사회)을 연파하고 우승해 화끈하게 성인무대에 신고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5월 아시아선수권대회 1회전에서 이나자와 마사토(일본)에 한판으로 져 탈락한 것이다.
당시 "떨어지면서 뇌진탕 증세까지 왔다. 한국 유도의 꽃인 73㎏급에서 대표로 나가 그런 수모를 당해 할 말이 없다"고 입술을 깨물었던 왕기춘은 그 후 4개월 뒤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명예를 회복했고 베이징올림픽 제패를 꿈꿨으나 아쉽게 2위에 그쳤다.
왕태연 씨와 박남희 씨의 2녀1남 중 막내로 계상초등학교와 하계중학교, 서울체고를 거쳐 용인대에 재학 중이며 주특기는 업어치기.
위로 쌍둥이 누나가 있다. 좌우명은 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는 뜻의 '수사불패(雖死不敗)'와 '폼생폼사' 두 개다. emailid@yna.co.kr
위로 쌍둥이 누나가 있다. 좌우명은 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는 뜻의 '수사불패(雖死不敗)'와 '폼생폼사' 두 개다. emailid@yna.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