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가 9일 오후 베이징 과학기술대학체육관에서 열린 올림픽 유도 남자 60kg급 결승에서 오스트리아의 루드비히 파이셔를 한판승으로 물리친 뒤 손가락을 치켜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최민호 남자유도 60㎏급 금메달
‘작은거인’(1m63) 최민호(28·한국마사회)가 우승한 뒤 경기장엔 가수 이효리의 노래 ‘텐미닛’(10분)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최민호가 9일 베이징올림픽 남자유도 60㎏급 결승까지 다섯 판을 모두 한판승으로 이기는데 걸린 시간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 경기 규정시간이 5분인데, 5경기를 총 7분40초 만에 끝낸 것이다. 안병근 유도대표팀 감독조차 “이렇게 쉽게 이겨버리니 오히려 허무할 정도”라고 했다.
죽을것 같은 고통 참으며 훈련
금메달 따니 눈물 멈추지 않아
운동하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
다음 올림픽 한체급 올려 도전 이효리의 매혹적인 노래가 나와도, 최민호는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매트에서도, 매트를 돌면서도, 인터뷰 구역을 지나가면서도, 시상대 앞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기를 기다리면서도 눈물은 또 눈물을 끄집어냈다. 공식인터뷰에서 외국기자들이 그 눈물의 뜻을 물을 정도였다.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참아가면서 훈련했는데 올림픽 금메달을 주려고 이렇게 고생을 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요.” 최민호는 “자기 전 ‘하느님도 제가 이렇게 (독하게) 운동할 줄 몰랐죠? 깜짝 놀라셨죠?’라고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2003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최민호는 ‘3등 전문선수’로 통했다. 2002 부산아시아경기대회 동메달, 2004 아테네올림픽 동메달, 2007 세계선수권 동메달 등 구릿빛 메달만 수집해온 것이다. 최민호는 “사실 아테네올림픽 동메달도 기분이 좋았는데, 한국에 와보니 주위의 반응과 대우가 그게 아니었어요. 메달리스트들이랑 (행사에) 같이 다니는데 뒤에서 혼자 있어야 했고, 처량하고 참 힘들었어요. 그때 금메달과 동메달의 차이를 알게 됐지요”라고 했다. ‘그 차이’는 그를 방황으로 몰아넣었다. 아예 여관을 잡아놓고 술로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체중 조절이고 뭐고, “미친놈 소리 들을 정도로 배가 터질 때까지” 먹기도 하며 몸을 망가뜨리기도 했다. 흔들리는 그를 꽉 붙잡은 건 뜻밖에도 ‘행복’이란 단어였다. “훈련이 너무 힘들어 눈물을 흘릴 때도 많았어요. 그런데 너무 행복했어요. 운동하는 것도 행복했고, 지쳐 쓰러져도 행복했고, 내가 이렇게 다시 올림픽에 나오는 것도 행복했고…. 운동하는 것 자체가 이렇게 행복한데 예전엔 왜 그렇게 입상하려고 욕심을 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베이징올림픽이 29회인데, 개막식날 29번째 생일을 맞았다”며 웃는 최민호는 “어머니가 새벽 4시에 새벽기도를 나가시는데, 성당이 5시30분에 문을 여니까 수녀님이 아예 엄마에게 열쇠를 주셨대요. 천사같은 엄마를 나에게 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연금혜택 외에도 대한체육회 5만달러 보너스, 유도회 5천만원 포상금, 소속팀 마사회가 내건 2억원까지 받게 된 최민호는 “이제 한체급을 올려 다시 올림픽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한국유도에서 올림픽 두체급 석권은 누구도 해보지 못한 일이다. ‘울보’가 아닌 ‘행복한 남자’ 최민호가 이제 그 길을 가려는 것이다. 베이징/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금메달 따니 눈물 멈추지 않아
운동하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
다음 올림픽 한체급 올려 도전 이효리의 매혹적인 노래가 나와도, 최민호는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매트에서도, 매트를 돌면서도, 인터뷰 구역을 지나가면서도, 시상대 앞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기를 기다리면서도 눈물은 또 눈물을 끄집어냈다. 공식인터뷰에서 외국기자들이 그 눈물의 뜻을 물을 정도였다.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참아가면서 훈련했는데 올림픽 금메달을 주려고 이렇게 고생을 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요.” 최민호는 “자기 전 ‘하느님도 제가 이렇게 (독하게) 운동할 줄 몰랐죠? 깜짝 놀라셨죠?’라고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2003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최민호는 ‘3등 전문선수’로 통했다. 2002 부산아시아경기대회 동메달, 2004 아테네올림픽 동메달, 2007 세계선수권 동메달 등 구릿빛 메달만 수집해온 것이다. 최민호는 “사실 아테네올림픽 동메달도 기분이 좋았는데, 한국에 와보니 주위의 반응과 대우가 그게 아니었어요. 메달리스트들이랑 (행사에) 같이 다니는데 뒤에서 혼자 있어야 했고, 처량하고 참 힘들었어요. 그때 금메달과 동메달의 차이를 알게 됐지요”라고 했다. ‘그 차이’는 그를 방황으로 몰아넣었다. 아예 여관을 잡아놓고 술로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체중 조절이고 뭐고, “미친놈 소리 들을 정도로 배가 터질 때까지” 먹기도 하며 몸을 망가뜨리기도 했다. 흔들리는 그를 꽉 붙잡은 건 뜻밖에도 ‘행복’이란 단어였다. “훈련이 너무 힘들어 눈물을 흘릴 때도 많았어요. 그런데 너무 행복했어요. 운동하는 것도 행복했고, 지쳐 쓰러져도 행복했고, 내가 이렇게 다시 올림픽에 나오는 것도 행복했고…. 운동하는 것 자체가 이렇게 행복한데 예전엔 왜 그렇게 입상하려고 욕심을 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베이징올림픽이 29회인데, 개막식날 29번째 생일을 맞았다”며 웃는 최민호는 “어머니가 새벽 4시에 새벽기도를 나가시는데, 성당이 5시30분에 문을 여니까 수녀님이 아예 엄마에게 열쇠를 주셨대요. 천사같은 엄마를 나에게 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연금혜택 외에도 대한체육회 5만달러 보너스, 유도회 5천만원 포상금, 소속팀 마사회가 내건 2억원까지 받게 된 최민호는 “이제 한체급을 올려 다시 올림픽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한국유도에서 올림픽 두체급 석권은 누구도 해보지 못한 일이다. ‘울보’가 아닌 ‘행복한 남자’ 최민호가 이제 그 길을 가려는 것이다. 베이징/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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