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던 임정화(22·울산광역시청)가 “으악” 온몸의 기운을 토해내며 허리를 곧추세워봤다. 하지만 머리 위로 113㎏을 얹었던 임정화의 무게 중심이 순간 기우뚱하며 역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베이징올림픽 첫 애국가를 역도경기장에서 울려퍼뜨릴 기회를 아쉽게 놓치는 순간이었다. 9일 베이징항공대체육관에서 열린 역도 여자 48㎏급에서 임정화는 합계 196㎏(인상 86㎏·용상 110㎏)의 기록으로 4위를 기록, 손에 잡힐 듯 했던 메달권 한걸음 앞에서 뒤로 물러났다.
은·동메달 경쟁자의 합계 기록은 199㎏. 마지막 시기를 앞두고 메달까지 꼭 3㎏이 모자랐다. 용상 3차시기에 113㎏을 얹어 승부수를 띄웠지만, 역기가 어깨에서 머리 위로 올라가는 순간 임정화의 힘이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인상 3차 시기에 훈련 최고기록 보다 2㎏ 적은 88㎏으로 던진 승부수가 무산된 게 아쉬웠다.
임정화의 출발은 좋았다. 1차 시기는 상위 5위권 수준인 83㎏으로 도전했다. “미리 치지 마!” 김도희 여자대표팀 코치가 긴장을 풀고, 4년간 땀을 흘려온 실력을 그대로를 보여줄 것을 주문했다. 기합소리와 함께 1m50 밖에 되지 않는 그의 머리 위로 역기가 들어올려졌다. 2차 시기에도 임정화는 자신의 종전 최고 기록보다 2㎏이나 많은 86㎏을 치켜들었다. 용상에서도 임정화는 1, 2차 시기에 106㎏, 110㎏을 성공했다.
하지만 경쟁자들이 잇달아 메달권 무게를 들어올렸고, 임정화는 자신의 최고 기량을 선보이며 치열한 수싸움까지 펼쳤지만 막판 뒤집기에 실패하면서 분루를 삼켰다.
임정화는 그간 53~57㎏급으로 체급을 바꿔가며 한국신기록을 30여개 차례나 작성해 ‘기록제조기’로 통했지만, 국제대회에서는 항상 아쉬움을 남겨왔다. 최근엔 2002년 부상아시아경기 5위, 2005년 동아시아경기(58㎏급) 4위, 2007년 세계여자역도선수권(53㎏급) 7위 등을 기록했다. 하지만 48㎏급으로 체급을 낮춘 뒤 기록이 뛰기 시작하면서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도 메달권으로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금메달은 세계순위 1위 첸셰사(23·중국)가 가져갔다. 그는 초반부터 경쟁자들이 금메달을 노리지 못하도록 높은 벽을 쌓았다. 주종목인 용상에서 세계기록(120㎏)을 보유한 첸셰사는 현역 최고선수답게 인상에서도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1차시기에서만 첸셰사는, 앞서 경기를 치른 13명 선수 최고 기록보다 많은 90㎏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이어진 2, 3차 시기에도 추가로 2㎏, 3㎏씩을 더 얹어 인상에서만 2위권과 7㎏이상 차이를 벌였다. 용상에서도 첸셰사는 한차례도 실패없이 최고 117㎏을 들어, 합계 212㎏으로 2위 오즈카 시벨(20·터키)을 13㎏차로 따돌리는 괴력을 발휘하며 주최국 중국에 이번 대회 금메달을 안겼다.
베이징/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