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식, 서양과 맞서온 역사 표현
정치·경제의 ‘세계 중심’ 열망 암시
정치·경제의 ‘세계 중심’ 열망 암시
장관이다. 거대하다. 산을 형상화하였으되 태산보다 더 크고 강을 그렸으되 장강보다 더 유장하다. 태산이 준엄하고 장강이 유려하되 그 사이의 역사가 또한 장려하고 그것을 몸으로 겪어낸 수천 년 중국 인민들의 문화와 합창이 태산장강을 압도하며 울려 퍼진다.
개막식 총연출을 맡은 장이머우 감독은 스케일이라는 게 단지 규모와 크기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모든 요소들의 화학적 결합에 의한 시청각적 상상력의 야심찬 충격 효과라는 것을 입증했다.
수천 년 역사를 담다 보니 여러 요소를 나열한 듯한 점도 있고 하나의 주제에서 다음의 주제로 넘어가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은 점도 있었으나, 어쨌든 장관은 장관이었다.
붉은색으로 시작하여 붉은색으로 끝났으며 불로 시작하여 불로 끝이 났다. 붉은색, 그리고 불은 중국인의 심장 속에 내장된 단단한 상징이다. 그것이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라는 이번 올림픽의 주제를 다양하게 변주했다. 특히 사람과 사물들이 허공에서 연출하는, 중력을 무시한 듯한 광경은 오늘날의 최첨단 시각예술의 한 장면으로 손색이 없었다. 이 개막식을 연출한 사람이 장이머우 감독임을 생각나게 하는 장면들이었다.
올림픽 개막식은 주최국이 그 누구의 규칙이나 권고사항도 없이 제 맘껏 자신들의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 상징을 유감없이 펼쳐낼 수 있는 공인된 선전의 장이다.
지난 2004 아테네 올림픽 때 그리스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이자 젖줄’이라는 테마로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문화를 중세와 근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인류 문화의 대동맥으로 연출해낸 바 있다. 아테네가 ‘물’이었다면, 이번 베이징은 ‘불’이다. 아테네 때 아이슬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가수 비요크가 ‘물의 여신’이 되어 ‘아들딸들아, 와서 내 젖을 먹어라’ 하고 노래를 했다면 이번 베이징의 1만4천명 남짓한 등장인물들은 ‘불’의 시대를 선언했다.
4만2000 톤의 철근이 정교하게 엮인 주경기장은 ‘새 둥지’(鳥巢, 냐오차오)라는 별칭대로 온갖 형태의 불을 품었다가 그것을 온 세계로 뿜어냈다. 집단 군무로 연출되는 다채로운 광경들은 ‘불’이라는 한 단어로 파생된 것이었으며 곧 단 하나의 ‘불’로 응집되었다. 불 중의 불, 모든 불의 시원, ‘강성했던 한나라와 융성했던 당나라’ 때를 염원하는 중국인들의 불, 곧 ‘성화’가 모든 사람들의 상상력을 위반하며 경악스런 장관으로 펼쳐진 것이다.
하나의 ‘스펙터클’로서 유례를 찾기 힘든 거대한 볼거리였으나 그것이 다름 아닌 중국의 한복판에서 펼쳐졌다는 점에서 어쩌면 한가로운 구경거리가 아닐 수도 있다. 바다와 강과 산을 경계로 그들과 이웃하여 수천 년 역사를 함께하면서 대립과 협조와 친교를 나눠온 우리로서는 그 모든 문화적 장면들이 매우 친숙하여 ‘ 과연 중국이군’ 하는 경탄과 동시에 온갖 형태의 불꽃과 폭죽으로 피어오르는 ‘중화주의’가 예사롭지만은 않다.
이번 개막식의 숨은 주제는 바로 ‘중화주의와 56개 소수 민족’이었다. 장이머우 감독은, 최근에 분리독립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신장위구르나 티베트를 포함한 56개 소수민족의 다채로운 의상과 춤을 세 차례나 등장시켰다. 개막식이라는 축제의 장에서 ‘중화주의’는 아름답게 실천되었다. 하지만 베이징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폭죽은 물리적인 타격력을 지닌 폭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옆에 있는 우리로서는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스포츠 평론가
이번 개막식의 숨은 주제는 바로 ‘중화주의와 56개 소수 민족’이었다. 장이머우 감독은, 최근에 분리독립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신장위구르나 티베트를 포함한 56개 소수민족의 다채로운 의상과 춤을 세 차례나 등장시켰다. 개막식이라는 축제의 장에서 ‘중화주의’는 아름답게 실천되었다. 하지만 베이징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폭죽은 물리적인 타격력을 지닌 폭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옆에 있는 우리로서는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스포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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