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진 기자의 여기는 도하 /
스리랑카에서 온 25살 버시 버나드는 도하 시내 25층 짜리 건물에서 청소를 합니다. 아침 6시에 와서 12시간을 일합니다. 청소 구역을 크게 벗어날 수 없어 점심도 비상구 계단에서 쪼그리고 먹습니다. 일주일에 이틀을 쉬는 카타르 공식 휴무 중 하루를 반납하지만, 한달 월급이 550리알(약 15만원)입니다. 그는 껌 20통 정도 가격인 50리알로 한달을 삽니다.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점심은 일자리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방 하나에 함께 사는 동료 7명의 도움을 받습니다. 아낀 500리알은 3명의 동생과 어머니에게 보냅니다. 3년전 도하에 와 택시 운전을 하던 아버지는 1년전 추돌 사고로 숨졌습니다. 가족의 생계는 그의 몫이 됐습니다.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2000리알을 스리랑카 브로커에게 주고 이곳에 왔습니다. 도하에 일자리가 많아서입니다. 그는 “빌린 돈 이자를 갚고, 동생들 학비에 쓰려면 500리알의 두배는 보내줘야한다”고 말합니다. 도하아시아경기대회 청소 대행업체 소속으로 일하는데, 대회가 끝난 뒤에도 일을 할 수 있을지가 사실 더 걱정입니다. 3개월 비자 유효기간이 다가왔는데, 업체가 고용을 유지하겠다면 연장이 가능합니다. 그는 “2년을 생각하고 왔다. 가족과 함께 사는게 꿈”이라고 얘기합니다.
오후 5시가 되면 검게 탄 노동자들이 공터로 뛰어갑니다. 도하 외곽 집단 숙소로 가는 수송 버스가 많지않아 조금이라도 빨리 타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손엔 찌그러진 도시락 통이 하나씩 들려있습니다. 네팔에서 온 42살의 바부랄은 도하에 온지 5년이 됐습니다. 4명의 자녀를 둔 그의 월급은 750리알입니다. 그는 시리아 노동자들 보다 400리알 정도 적은 대우가 불만입니다. 얼마전 딸이 병원에 입원해 돈이 더 필요해졌습니다. 올해 네팔인 66명이 도하 공사장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의 안전도 위태롭긴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0일 남자 남북축구 8강전에 집단 응원을 온 북한 노동자를 만났습니다. 조선평양건설사업소를 통해 이곳에 온 그는 벽돌을 쌓는 기능공입니다. 도하에 와 빌라와 빌딩을 짓는 북한 건설 노동자가 1000여명이나 됩니다. 경기에 앞서 그는 동료들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야, 밑엔 잘라라.” 가족들에게 보낼 사진인데, 흙투성이인 바지와 신발을 보여주고 싶지않았던 겁니다. 그는 망원경을 갖고 왔습니다. “아들에게 주려고 샀는데, 잘 보이네. 그 놈 좋아하겠구만요.” 부자 나라 카타르 도하엔 고층빌딩이 참 많습니다. 그곳엔 도하에서 ‘삶의 기적’을 꿈꾸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눈물과 땀이 있습니다. 80만명 남짓 카타르 인구 중 이들을 포함한 외국인이 무려 60여만명을 차지합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