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펜싱 국가대표 권효경.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어릴 적에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가 육상을 시작했다. “뛰니까 숨이 차서 힘들었”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체력이 좋아지고, 하다 보니 승부욕도 생겼다.” 16살 때 지인이 펜싱을 권유했다.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칼을 잡았다. “잡고 찌르는 느낌이 좋았다.” 몸을 많이 움직이면서 상대의 빈틈을 노리고 공격해서 점수를 내는 것에 쾌감 또한 느꼈다. 휠체어펜싱 국가대표 권효경(홍성군청)의 이야기다.
권효경은 생후 6개월에 뇌병변장애 판정을 받았다. 미술, 육상을 거쳐 휠체어펜싱을 시작한 게 2016년이다. 휠체어펜싱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비장애인 펜싱과 다르게 휠체어를 프레임 위에 고정한 채 경기를 해서 하체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 때문에 순간적인 빠른 스피드가 중요하고 상대를 속이는 고도의 심리전도 필요하다. 권효경의 주종목은 에페다. 상체 모두가 유효 타깃이고, 어느 선수든 먼저 찌르면 득점이 된다. 권효경은 “펜싱 하면서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안 되어서 울었던 적도 많다”며 “손 다쳐서 속상해서 울고, 다쳐서 운동을 더 못해서 울고…”라고 했다.
휠체어펜싱 국가대표 권효경.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소속팀이 있는 홍성군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는 그는 마음에 응어리가 생기면 엄마에게 전화한다. 지난해 이탈리아 피사에서 열린 월드컵대회에서 처음 금메달을 땄을 때도 그랬다. 기대에 찬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져 조금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의 엄마는 “금메달 땄잖아. 그냥 이 순간을 마음껏 즐겨”라고 다독였다. 권효경은 “엄마가 희망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가족들과 소통을 자주 하는 편인데 내가 펜싱 하는 모습을 정말 좋아해 준다”고 했다. 3살 위 언니도, 비장애인인 쌍둥이 동생도 모두 그의 든든한 응원군이다.
슬럼프에 빠질 때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본다. “키키가 잘하다가 빗자루를 못 타서 슬럼프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서 공감을 하기 때문”이란다. 키키의 감정에 저절로 이입되며 용기를 얻고, 해답을 찾는다. 권효경은 “예전에는 슬럼프에 빠지면 힘들고 괴로웠는데, 지금은 다 지나간다고 생각한다. 지나가는 게 맞더라”라고 했다. 그래서 그의 좌우명은 현재 “재밌게 하자”이다. “즐기는 자가 이긴다고 내가 좋고 재밌어야만 열정이 생기고 실력이 느는 것 같아서”라는 이유를 댄다.
권효경의 장점은 순발력이다. 공격적인 플레이로 휠체어 위에서 몸놀림이 적극적이다. 박규화 휠체어펜싱 국가대표 감독(홍성군청)은 “긍정적인 사고와 밟은 에너지가 효경이의 최대 강점”이라고 했다. 장애인아시안게임 참가는 항저우가 처음이다. 10월초 이탈리아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예열은 마쳤다. 권효경은 “항저우에서 후회없는 경기를 하고 오고 싶다. 또 많이 배워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궁극적으로는 “패럴림픽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울리는 것이 최대 목표”다.
휠체어펜싱 국가대표 권효경이 왼팔에 새긴 나비 문신.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김양희 기자
휠체어펜싱은 스물 두 살 권효경의 오른팔에 여러 상처를 냈다. 장애가 있는 오른손을 휠체어에 고정하고 경기를 하는데 상체를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상처가 날 수밖에 없다. 칼을 잡는 그의 왼팔에는 작은 나비 문신이 새겨져 있다. 나비 문신은 ‘새로운 시작’, ‘변화’를 의미한다고 한다. 권효경은 말한다. “처음에는 펜싱이라는 종목이 칼을 잡는 스포츠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하지만 펜싱을 하다 보니 이런저런 일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마음의 여유도 생겼고, 내 세상도 더 넓어졌다. 그래서 펜싱은 또 다른 내 인생의 첫 걸음인 것도 같다. 스스로 운동을 좋아하면 장애와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행동했으면 좋겠다. 움직여야만 기회가 생긴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못 잡는다.”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은 22일 개막한다. 권효경은 23일 플뢰레를 시작으로 첫 장애인아시안게임을 시작한다. 메달을 노리는 에페는 25일 펼쳐진다.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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