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연료가 타야 창의력이 나온다.”
“인무원려 필유근우. 멀리 보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이에 근심이 생긴다.”
“‘전성기’라고 하면 참 좋지만, 전성기란 내려가는 신호다.”
“과거에 발목 잡히면 미래를 잃는 거다”
탁월한 ‘축구 홈스쿨링’으로 오늘날의 손흥민(30·토트넘)을 키워낸 아버지 손웅정(60) 손축구아카데미 감독이 14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유퀴즈)에 출연해 ‘명언 자판기’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줬다.
1980년대 후반 프로선수로 활동했던 손 감독은 자신을 계속 “삼류선수”라고 칭하면서 “삼류였기 때문에 흥민이에게 다른 (축구교육) 프로그램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가령 손흥민이 그동안 수많은 골을 넣어 ‘손흥민 존(zone)’이라 불리는, 페널티 박스 양쪽 코너에서의 슈팅은 자신이 선수 시절에 같은 지점에서 공을 찼다가 골대를 맞혔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숱한 연습을 시켰다고 설명했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축구를 그만둔 뒤 막노동도 마다 않으며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그는 아들에게 축구를 시킬지 말지는 자신이 결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엔 2세가 태어나면 축구를 안 시킨다고 축구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운동선수라고 하면 손가락질하면서 부정적 시선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는 2세에게 축구를 시키겠다, 안 시키겠다는 이런 생각은 없었다. 태어나면 그 스스로 또 다른 인격체이지 않나. 자유라는 연료가 타야 창의력이 나온다. 풀어놓고 자유스럽게 해야 잘할 수 있다. 흥민이는 어려서부터 공을 좋아해서 축구를 하게 됐다.”
그는 손흥민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축구를 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엄격한 훈련을 시작했다. 추석이고 설이고 하루도 안 빼놓고 하루에 2시간씩 볼을 잘 다루고 볼을 통제하는 기본 훈련을 시켰다. “어떤 사람들은 기본기는 무시하고 경기를 하게 한다. 그래, 경기를 해도 좋다. 그런데 성적을 내게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성적인가. 어려서 너무 혹사당하다보니까 프로에 입단해야 하는 18살 정도가 되면 문제가 생겨서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흥민이는 슈팅 연습을 18살 이후 지나서야 했다.” 그는 아직 관절과 근육이 성장 중인 어린 선수들에겐 공을 멀리 강하게 차는 것을 절대 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녀들에게 영재 스포츠 교육을 시키려는 부모들을 위한 충고를 했다. “인무원려 필유근우다. 멀리 보지 않으면 근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몇달 전 “흥민이는 ‘월드클래스'가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월클 논쟁’을 지폈던 손 감독은 이날도 손흥민이 월드클래스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건 아니다.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서 “내 자식이라 보수적으로 보는 것도 있겠지만, 나는 흥민이의 축구가 늘 10%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흥민이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이 됐을 때, 나는 ‘전성기라고 하면 참 좋지만 전성기는 내려가라는 신호다'라고 말했다. 아름답게 점진적으로 내려가야 한다. 한번에 추락하는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점진적으로…. 갑자기 흥민이가 나락으로 떨어지면 축구팬들이 허무하실 수 있다.”
손 감독은 성적보다 ‘행복'을 강조했다. 그는 올 시즌 초반 손흥민이 소속팀에서 부진했던 것에 대해 “8경기가 아니라 16경기에서 골이 안 나오면 어떻냐”고 반문했다. “흥민이한테는 ‘경기 결과와 내용을 떠나서 행복해서 축구를 한 만큼, 행복하게 경기를 하고 와'라고 이야기를 한다. 득점왕도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거다.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본인이 좋아하는 축구를 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집에 돌아오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그는 손흥민이 숱하게 받았던 상패와 상장, 트로피 등도 보이지 않는 곳에 둔다는 얘기도 했다. “과거에 발목 잡히면 미래를 잃기 때문”이다. 손 감독은 지난 2010년 손흥민이 유럽 진출 뒤 첫 득점을 했을 때도 팬들의 열띤 반응에 노출되지 않게 하려고 아들의 노트북을 집으로 가져와 버렸다는 일화를 전했다. “흥민이가 도취될까봐 너무너무 두려웠다. 며칠 동안 망각증에 걸리면 좋겠다는 생각조차 했다.”
손흥민이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부상 투혼의 뒷얘기도 전했다. 손흥민이 월드컵을 앞두고 안와골절 부상을 당한 것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 ‘그럼 월드컵은?’이었다고 털어놨다. “수술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해야 했다. 부기가 빠져야 수술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잠자는 시간 빼놓고는 계속 얼음찜질을 해서 수술 날짜를 하루 앞당겼다.” 손 감독은 손흥민뿐 아니라 부상을 입고도 열심히 운동장을 누빈 선수들을 떠올리며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더 앞서, 사력을 다했다고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