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와이드 리시버’로 활약 중인 한국계 하인스 워드가 6일(한국시각) 미국 디트로이트 포드필드에서 열린 제40회 슈퍼볼에서 시애틀 호크스에 21-10 승리를 이끈 뒤, 아들 제이던을 안고 기뻐하고 있다. 피츠버그/AP 연합
한국계 워드 미 슈퍼볼 MVP ‘터치다운’
한때는 부끄러웠던, 하지만 이젠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 그 자체가 된 한국인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 스틸러스)는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렸다.
6일 오전(한국시각) 제40회 슈퍼볼 경기가 열린 미국 디트로이트의 포드필드. 영예의 최우수선수상은 미식축구 선수로서는 그다지 크지 않은 몸집(1m83, 97㎏)임에도 이날 최고의 활약을 펼친 피츠버그의 ‘와이드 리시버’ 워드에게 돌아갔다. 그는 이날 리시브 다섯에 123야드 전진, 43야드짜리 터치다운 성공 등으로 팀의 21-10 승리를 이끌었다.
부모이혼·가난·혼혈 설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그의 오른팔에는 예쁜 마이티마우스 그림과 함께 ‘하인스 워드’라는 한글 문신이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절반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워드. 그는 평소 “한인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할 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한국에 두어 왔다.
워드는 1976년 3월8일 서울에서 주한미군 보병 2사단에 근무하던 아버지 하인스 워드 시니어(50)와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55)씨 사이에 태어났다. 한 살 되던 해 미국으로 이주하자마자 부모는 이혼했고, 그의 평탄치 않은 인생이 시작됐다.
팔뚝엔 한글문신 또렷
법원은 영어를 못하고 경제적 능력이 약한 어머니 대신 아버지와 살 것을 명령했고, 아버지는 재혼했다. 그러나 워드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을 나와 꿈에도 잊을 수 없던 어머니 김씨에게 간다. 흑인동네에 살던 그는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면서 한국인 어머니를 둔 것이 부끄러웠다고 훗날 고백했다.
부끄러움을 자랑스러움으로 바꾼 것은 어머니 김씨의 헌신적 사랑이었다. 어머니 김씨는 외아들을 향해 끊임없이 겸손하라고 가르쳤다. 워드는 “어머니는 내게 모든 성공과 승리의 순간 ‘기회에 감사하고 겸손하라’고 말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날 키운건 어머니의 헌신 ‘흑인과 결혼해 아들을 뒀다’는 이유로 고국인 한국에도 돌아오지 못한 김씨는 미국에서 험난한 인생을 살았다. 애틀랜타 공항 음식점에서 접시닦이, 호텔 청소부, 식료품점 점원 등 세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며 새벽 2시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아들 워드를 위해 식사 때는 반드시 집에 와 밥을 챙겨주고 깨끗한 옷을 입고 다니도록 했다. 워드는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결코 어머니가 내게 해준 것을 되갚지 못할 것”이라며 어머니 김씨의 정성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워드는 조지아대 재학 시절 쿼터백, 와이드 리시버, 러닝백 등 ‘만능선수’로 뛰면서도 우수한 학업성적을 유지해 어머니를 기쁘게 했다. 프로입문 뒤에도 피츠버그에서 2004년까지 4년 연속 리시브 전진 1천야드 이상 기록을 세우고, 프로볼에도 출전하면서 팀의 간판스타로 커왔다.
마침내 이날 미식축구 최고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워드는 자신이 팀내 최고 몸값(4년 동안 약 250억원)을 받는 게 정당함을, 또 고독했던 어머니 김씨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증명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날 키운건 어머니의 헌신 ‘흑인과 결혼해 아들을 뒀다’는 이유로 고국인 한국에도 돌아오지 못한 김씨는 미국에서 험난한 인생을 살았다. 애틀랜타 공항 음식점에서 접시닦이, 호텔 청소부, 식료품점 점원 등 세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며 새벽 2시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아들 워드를 위해 식사 때는 반드시 집에 와 밥을 챙겨주고 깨끗한 옷을 입고 다니도록 했다. 워드는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결코 어머니가 내게 해준 것을 되갚지 못할 것”이라며 어머니 김씨의 정성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하인스 워드와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씨.(SBS스포츠)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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