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에 데샹(가운데) 프랑스 대표팀 감독이 지난 10일(현지시각) 카타르 알코르의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8강전 잉글랜드와 경기 승리 뒤 킬리안 음바페(왼쪽), 앙투안 그리즈만을 안아주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알코르/EPA 연합뉴스
축구에서 점유율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공이 하나이기 때문”(요한 크루이프)이다. 공을 가지지 못한 팀은 골을 넣을 수 없고, 골을 넣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 이 단순한 원리를 기반 삼아 점유율은 축구의 승리 공식으로 자리매김했다. 많은 패스와 높은 수비 라인, 적극적인 전방 압박으로 구성된 능동적인 축구다. 1970년대 유럽 축구를 지배했던 네덜란드의 명문구단 아약스에 뿌리를 둔 유서 깊은 철학이지만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 최소한 월드컵에서 점유율은 필승 전략이 아니다.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점유율 축구’는 연전연패를 거듭했다. 조별리그와 16강·8강 토너먼트 60경기 가운데 양 팀의 점유율(피파플러스 통계 기준)이 10%포인트 이상 벌어진 42경기(무승부 8경기 포함)를 보면 점유율 열세인 쪽에서 18경기를 이겼다. 승률 43%. 반면 점유도 이기고 경기도 이긴 경우는 16번(38%)이었다. 점유 따위 개의치 않는 쪽의 승률이 더 높다. 여기에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적은 점유율(17.7%)로 승리한 일본(스페인전)이나 평균 점유율 28.8%로 4강에 오른 모로코 등이 포함된다.
왈리드 라크라키 모로코 대표팀 감독이 지난 10일 포르투갈과 8강전을 이긴 뒤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다. 도하/DPA 연합뉴스
이 팀들은 반대로 플레이한다. 수비 라인은 내리고, 공을 가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역습을 도모한다. 주도하는(proactive) 축구가 아니라 대응하는(reactive) 축구다. 전형적인 ‘언더도그’ 전략이지만 약팀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현재 ‘반-점유율’ 축구의 최고봉은 디디에 데샹 감독이 이끄는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다. 호주처럼 극단적으로 볼 소유권을 포기한 팀이 아닌 이상 프랑스는 상대가 마음껏 공을 가지도록 내버려두고, 대신 경기에서 이긴다.
잉글랜드와 8강전이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이 경기에서 36-54로 점유율을
18%포인트까지 밀렸고 슈팅 숫자에서도 14-9로 뒤졌다. 잉글랜드는 프랑스보다 143개 더 많이 패스(453-310)를 성공시켰으나 완성도 높은 프랑스의 펀치 두 방에 1-2로 무너졌다. 이날 경기에서 고작 공을 23번 터치하고도 결승골을 터뜨린 프랑스의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AC밀란)는 “중요한 건 언제나 디테일이다. 우리는 양쪽 벌칙 구역에서
더 효율적이었다”라고 승리 비결을 요약했다.
스페인의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지난 6일 모로코와 16강전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뒤 걸어가고 있다. 알라이얀/신화통신 연합뉴스
프랑스는 4년 전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정상에 섰다. 당시 프랑스는 결승에서 크로아티아에 점유율, 슈팅, 패스 모두 크게 밀렸지만 4-2 대승을 거뒀다. 프랑스의 러시아 대회 평균
점유율은 49%. 집계를 시작한 1966년 이후 우승팀 중 최저였다. 카타르에서는 평균 48%를 유지 중이다. 잉글랜드(58%), 아르헨티나(56%), 스페인(69%), 포르투갈(54%)보다 낮다. 일본, 가나, 호주 등 5개 나라를 제외하면 프랑스보다 많은 전진 패스(약 10m 이상)를 허용한 팀은 없다.
오랜 세월 세계 축구의 패권은 점유에 능한 팀의 몫이었다. 유로2008, 2010 남아공월드컵, 유로2012 3연패를 달성한 스페인, 2014 브라질월드컵을 제패했던 독일, 지난해 유로2020 우승컵을 들어 올린 이탈리아 등이다. 스페인과 독일이 연달아 두 번의 월드컵을 그르치고 이탈리아는 카타르대회 본선도 나오지 못하는 사이 프랑스를 위시해 유로2016에서는 포르투갈이, 지난해 코파아메리카에서는 아르헨티나가 실용주의 노선을 택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독일의 안토니오 뤼디거가 지난 1일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뒤 그라운드에 앉아 있다. 알코르/EPA 연합뉴스
여전히 클럽 축구에서는 페프 과르디올라 감독의 맨체스터 시티나 위르겐 클롭 감독의 리버풀처럼 점유에 기반을 두고 최신식 강팀의 축구를 구사하는 팀이 많다. 이 기조가 국가대항전에서 잘 먹히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국가대표팀이 클럽팀처럼 많은 경기와 주기적인 훈련을 통해
조직력을 연마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카타르에서도 점유의 귀재들은 이미 짐을 쌌다. 볼 점유 수치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망각한 탓이다.
점유보다 효율. 카타르월드컵을 관통하는 명제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