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성이 28일(현지시각) 오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가나와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첫번째 골을 넣은 뒤 웃고 있다. 알라이얀/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폭발적인 3분이었다.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H조 한국과 가나의 2차전 경기가 열린 28일(현지시각)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 전반전을 2점 뒤진 채 마감한 한국은 후반 8분 이번 대회 첫 유효슈팅을 시작으로 13분 추격골, 16분 동점골을 쏘며 승부를 점입가경으로 몰고 갔다. 이 세 번의 결정적 장면은 모두 조규성(24·전북)의 머리에서 나왔고, 후반 승부처의 공기가 바뀐 건 이강인(21·마요르카)이 교체로 들어오면서부터였다.
비록 경기는 2-3으로 졌으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한 두 선수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조규성은 이날 슈팅 6개, 유효슛 4개, 공중볼 경합 승리 6개(모두 양 팀 최다)를 기록했다. 축구통계 누리집 <
후스코어드닷컴> 기준 평점 8.7점, <
소파스코어> 기준 8.3점이다. 이 경기 ‘최우수선수’(플레이어 오브 더 매치)에 뽑힌 가나의 모하메드 쿠두스(아약스·8.58점/8.2점)보다도 높다.
조규성의 가나전 첫 골 장면. 알라이얀/연합뉴스
조규성의 상승 곡선은 가파르다. 그는 2019년 FC안양 K리그2 33경기 14골로 ‘센세이션’한 데뷔 시즌을 보낸 뒤 전북 현대, 김천 상무를 거쳐 K리그 최정상 스트라이커로 거듭났다. 올 시즌은 모든 대회를 통틀어 35경기 21골5도움. K리그 득점왕(17골)은 물론 베스트11까지 휩쓴 조규성의 기량은 세계 최고 무대에서도 통했다. 월드컵에서 한국 선수가 한 경기 멀티 골을 넣은 것은 그가 최초다. 그의 인상적 활약은 전세계 축구팬을 흡수하며 개인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월드컵 전 2만명 정도에서 29일 오후 5시 기준 140만명을 넘어섰다.
조규성은 가나전 뒤 믹스트존에서 “(벤투 감독이) 선발에 조금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필’이 왔다. 선발 명단을 보고 저를 믿어준 데 정말 감사했고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한번 뛰어보자 생각했다”고 간절했던 한 판을 돌아봤다. 그는 “매 경기 ‘다음 경기 더 잘해야지’가 아니라 ‘이번 경기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걸 자신 있게 하자’, ‘팀에 도움만 되자’는 생각으로 뛴다”고 덧붙였다.
이강인이 28일(현지시각) 오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가나와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코너킥을 준비하러 이동하고 있다. 알라이얀/연합뉴스
이강인 역시 눈부셨다. 슈팅 3개, 유효슛 1개, 키패스 2개, 패스 성공률 95.7%를 기록한 그는 <
후스코어드닷컴> 7.22점, <
소파스코어> 7.6점이다. 교체로 들어와 50여분을 뛰었음에도 39번의 볼 터치를 가져간 경기 영향력 역시 눈에 띈다. 이강인은 투입 1분여 만에 왼 측면에서 직접 공을 탈취한 뒤 그림 같은 왼발 크로스로 조규성의 만회골을 배달했고 남은 시간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며 한국의 공세를 지휘했다.
지난해 봄 이후 1년6개월간 대표팀 부름을 받지 못했던 그는 이번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소속팀의 에이스로 거듭나며 벤투 감독의 마음을 돌렸다. 지난 9월 소집 때는 출전조차 안 시켰던 벤투 감독도 월드컵 본선에서는 연달아 그를 후반 조커로 내보내며 ‘이강인 매직’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후반 종료 1분여 전 코너킥을 차러 가며 손을 들어 관중석 팬들의 호응을 유도하기도 한 이강인은 정신적으로도 에이스 구실을 했다. ‘꼬마 시절’ 지상파 축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슛돌이’로 불리는 이강인은 그만큼 성숙해져 있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과 이강인. 알라이얀/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강인은 경기 뒤 믹스트존에서 ‘선발 욕심’을 묻는 기자의 말에 “경기에 선발로 뛰고 안 뛰고는 감독님의 결정이다. 저는 감독님의 결정을 100% 신뢰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팀에 최대한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조규성도, 이강인도 마음가짐은 같다. “팀에 도움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제 것으로 만들었다. 아쉬운 패배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던 이들이 마지막 포르투갈과 결전에선 웃을 수 있을까.
알라이얀/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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