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AP 연합뉴스
전세계가 주목하는 월드컵 무대. 두 팀이 접전 끝에 승부차기에 돌입한다. 단 한 번의 실수에도 팀이 탈락할 수 있는 상황. 더할 나위 없는 압박이지만,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야말로 축구의 매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안에 승부에 대한 건강한 긴장 대신 인종차별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면 어떨까?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 리오 퍼디난드는 이런 위험을 경고한다. 그는 지난 7일(현지시각) 영국 <가디언>에 “선수들은 이제 페널티킥에 실패하면 래시포드, 사카, 산초에게 벌어진 일을 떠올릴 것”이라며 “이번 월드컵에서 영국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유색인종 선수들이 이런 고압적인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고 했다.
마커스 래시포드(25), 부카요 사카(21), 제이든 산초(22)는 잉글랜드 축구의 미래로 꼽히는 젊은 흑인 선수들이다. 이들은 지난해 7월11일 유로 2020 결승전 승부차기에 3∼5번 키커로 나와 잇달아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이탈리아에 우승을 내줬다. 이들은 경기 직후 에스엔에스(SNS)를 통한 집중적인 인종차별 공격에 시달렸다.
이런 에스엔에스 인종차별은 최근 축구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토트넘 홋스퍼 손흥민(30) 역시 지난해 4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와 경기 뒤 에스엔에스를 통한
인종차별 공격을 당했다. 손흥민이 반칙을 얻어내며 맨유의 득점이 취소됐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영국 경찰은 용의자 12명의 신원을 파악해 일부를 체포했다.
한 남성이 13일(현지시각) 카타르 도하 코르니쉬 산책로에서 카타르월드컵 마스코트가 그려진 벽 앞을 지나고 있다. 도하/로이터 연합뉴스
특히 축구계에선 개막을 앞둔 2022 카타르월드컵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름 아닌 일론 머스크 때문이다. 머스크는 트위터 인수 뒤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며 인권 담당 부서를 통째로 없앴는데, 이런 정책이 월드컵 기간 트위터 내 인종차별을 부채질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브루스 데이즐리 트위터 전 유럽지부 부사장은 “카타르월드컵 때 인종차별 공격이 트위터 첫 장을 장식한다면, 머스크가 이를 유발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머스크 인수 뒤 트위터에서 인종차별 표현이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영미권 비영리단체 ‘디지털 혐오 대응 센터’(CCDH)는 지난달 머스크가 인수한 뒤 트위터에서 흑인을 비하하는 ‘nig***’라는 표현이 2022년 전체 평균의 3배로 늘어나는 등 인종차별 트윗이 증가했다며 , “트위터는 증오 표현이 줄어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 양이 급증했음을 보여준다”고 10일 지적했다.
현지 언론에서는 에스엔에스 최고경영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 <브리티시 지큐>는 14일 “증오 표현에 맞서기 위해선 소셜미디어 거물들이 그들의 플랫폼을 감시하도록 법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며 “인종차별을 축구장에서 쫓아낼 때, 우리는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최악의 일이 패배인 세상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국 시민들이 지난해 7월13일(현지시각) 영국 맨체스터 위딩턴에 있는 마커스 래시포드 벽화에 그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붙이고 있다. 래시포드의 고향인 위딩턴 카페에 그려진 이 벽화는 이틀 전 잉글랜드가 유로 2020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자 욕설과 낙서로 훼손됐고, 이에 팬들이 래시포드를 응원하는 메시지로 망가진 벽화를 복원했다. 맨체스터/AP 연합뉴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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