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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 vs 가가와 신지, 그들이 황금이다

등록 2012-08-17 16:53수정 2012-08-17 21:25

[토요판/승부] 한·일 축구 미래의 얼굴
2007년 나란히 프로 데뷔전 다음해 국가대표 유니폼

그 뒤 분데스리가 입성까지 23살 동갑내기의 닮은꼴

빠른 기동력과 패싱 능력…현란한 기술과 침투력으로

공격형 미드필더 안착…한·일 축구의 새 얼굴로 떴다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은 아시아 축구의 성장세를 명징하게 보여준 승부였다. 올림픽 개막 이전까지만 해도 아시아 나라끼리 메달을 다투는 경기가 펼쳐질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연령 제한(23세 이하) 규정이 있는 대회라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대회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따라서 동메달을 놓고 겨룬 이날의 승부는 향후 한국과 일본 축구의 용호상박을 알리는 전조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일 양국 축구의 새로운 세대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비상하는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이번 올림픽은 꽤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다.

 

우열 가리기 힘든 양국 선수들의 유럽 진출 

 축구장 위에서 두 나라의 관계는 남다르다. 굳이 역사적 관계를 따로 서술하지 않더라도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왔기 때문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축구는 일본에 우리의 존재감을 알리는 가장 효과적 무대였다. 한국 팀의 누적된 승리는 결과적으로 일본 축구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고비 때마다 일본 축구의 발목을 잡았던 한국 축구의 우세는, 일본이 제이(J)리그를 창설하고 장기간에 걸쳐 축구 저변을 확장하면서 어느새 팽팽한 구도로 재편됐다. 그사이 두 나라는 단순히 서로간의 우열을 겨루는 것이 아닌, 아시아 축구를 상징하는 두 개의 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긴 라이벌의 역사에서 대표 스타끼리의 맞대결은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특히 한·일 선수들의 활동 무대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확장된 최근에는 해외파들의 활약이 두 나라 대표 스타들의 위상을 말해주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차범근-안정환-박지성으로 이어지는 한국인 유럽파의 활약이 오쿠데라-나카타-나카무라로 이어진 일본에 견줘 앞섰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 선수들의 유럽 진출이 급증세를 보이며 양국을 대표하는 스타들의 활약상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베테랑’ 박지성(잉글랜드 퀸스파크 레인저스)을 필두로 이청용(잉글랜드 볼턴), 기성용(스코틀랜드 셀틱), 지동원(잉글랜드 선덜랜드), 구자철(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손흥민(독일 함부르크), 박주호(스위스 바젤) 등이 유럽에서 활약중인 한국과, 나가토모 유토(이탈리아 인터밀란), 가가와 신지(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미야이치 료(잉글랜드 위건)를 비롯해 독일 분데스리가에만 10명을 진출시킨 일본 모두 그야말로 해외파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양국 축구의 얼굴로 향후 10년을 책임질 선수로 구자철(23)과 가가와 신지(23)가 있다. 자국 리그를 거쳐 유럽에 안착한 두 선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껏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스타 플레이어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기량과 아직 어린 나이로 인해 지금보다 미래를 더욱 주목해야 할 선수들로 꼽힌다.

 구자철이 런던올림픽 대표팀 주장을 맡아 대한민국에 사상 첫 축구 메달을 안기며 자신의 시대를 열어젖혔다면, 독일에서 소속팀 도르트문트를 2년 연속 분데스리가 우승으로 이끈 가가와 신지는 잉글랜드 맨유 입단으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할 채비를 마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둘을 한데 묶어 소개하는 이유는 이 동갑내기 선수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된 지점이 흥미로워서다. 나란히 독일 분데스리가를 경험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거듭한 두 선수는 경기장 안에서는 공격수 못지않게 빼어난 득점력을 갖춘 미드필더로, 경기장 밖에서는 각국 축구의 새로운 황금 세대 핵심 멤버로 거론되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둘이 유독 큰 주목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서로의 장점이 자국 축구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자철은 이전 세대의 힘과 투지, 다음 세대의 테크닉과 자신만만함이 결합된 유형의 미드필더다. 성인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였지만, 독보적 활약을 펼친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공격과 수비 능력을 겸비한 미드필더의 등장은 한국 축구의 오랜 숙원이었다. 구자철은 명민한 움직임으로 팀의 밸런스를 유지시키는 데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 소속팀 중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구자철의 플레이는 팀이 필요할 때마다 터뜨리는 결정적인 골과 함께 그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가가와는 일본 축구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바로 그 선수다. 지난 10년간 유럽 무대에서 가장 성공한 일본 선수인 나카타 히데토시와 오노 신지의 장점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이미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 나카타가 보여준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침착함, 전성기 오노 신지의 유연한 침투 플레이가 결합된 가가와의 경기력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보낸 2년 동안 더욱 견고해졌다. 따라서 이러한 장점을 내세운 두 선수가 그라운드 안팎에서 펼칠 앞으로의 치열한 승부는 새로운 세대가 그려낼 한·일전의 다른 이름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빈혈로 대학 진학 좌절된 구자철의 아픔  

둘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았다. 이를테면, 태어난 시기마저 비슷하다. 구자철과 가가와는 모두 1989년생 물고기자리다. 2월27일에 태어난 구자철과 3월17일에 태어난 가가와는 이 시기를 전후해 태어난 양국 축구 신세대 물결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21세기 한·일 축구의 전성시대를 예감하게 하는 이 세대의 면면은 제법 화려하다.

 구자철은 이청용, 기성용, 홍정호, 김영권, 김보경, 지동원, 남태희, 손흥민 등 21세기 한국 축구 ‘황금 세대’의 리더로, 가가와는 기요타케 히로시, 오쓰 유키, 사카이 히로키, 우사미 다카시, 요시다 마야 등 일찍부터 유럽 무대를 경험하며 급성장하고 있는 일본 축구 신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각각 첫손에 꼽힌다.

 자국 리그에서 도약의 발판을 다진 두 선수의 출발점도 같은 해다. 구자철은 케이(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가가와는 제이리그 세레소 오사카에서 2007년 나란히 데뷔전을 치렀다. 보인고 재학 당시 빈혈을 앓아 체력 부족으로 고생했던 구자철은 이로 인해 대학 진학이 좌절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각고의 노력으로 빈혈을 극복한 뒤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2007년 프로 데뷔전을 치렀고 이후 빠른 시기에 두각을 나타내는 ‘반전’을 이뤄냈다. 한편, 가가와는 일본 축구 사상 처음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제이리그 입단 계약을 맺는 엘리트 행보로 화제를 뿌렸다. 두 선수 모두 팀이 부진한 시기 1군에 합류해 핵심 멤버로 자리잡았고, 이후 팀이 한 단계 도약하는 데에 중심적인 노릇을 했다는 점도 닮은꼴로 꼽힌다.

 2008년 나란히 에이(A)매치 데뷔전을 치른 두 선수는 2009년 커다란 도약에 성공한다. 2009년 피파(FIFA) 20세 월드컵에 주장 완장을 차고 나선 구자철은 홍명보 감독의 지휘 아래 팀의 8강 진출을 견인하며 본격적으로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팬들 사이에서 ‘어린 왕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또래들 사이에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중원의 지휘자로 떠오른 구자철은 이 대회를 준비하며 인연을 맺은 홍명보 감독과 줄곧 함께하며 크고 작은 성과를 이뤄간다.

 반면 가가와의 도약은 제이리그 2부 리그에서 시작됐다. 데뷔 무렵 부진한 성적을 거둔 소속팀이 2부 리그로 추락한 것은 가가와에게는 오히려 호재였다. 덕분에 주전 자리를 더욱 확고하게 꿰찬 그는 좀더 공격적인 위치에 기용되며 2부 리그 첫해인 2008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잠재력이 폭발한 것은 이듬해인 2009년이었다. 혼자서 리그에서만 27골을 터뜨린 가가와는 2009년 제이리그 2부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고, 이와 동시에 소속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키며 단숨에 일본 축구 최대의 유망주로 떠오른다.

도르트문트의 가가와는 2년 연속 팀 우승 이끈 뒤
이적료 300억에 맨유 입단 본격적인 전성시대 예고

볼프스부르크 구자철은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 이적
2부 강등 위기의 팀을 구했고 한국에 첫 메달까지 안겼다

올림픽 축구대표팀 구자철이 지난 11일 영국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3·4위전에서 후반 강력한 오른발 슛을 성공시키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올림픽 축구대표팀 구자철이 지난 11일 영국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3·4위전에서 후반 강력한 오른발 슛을 성공시키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아시안컵에서부터 둘의 운명은 엇갈리고… 

 스무살을 갓 넘긴 둘에게 2010년은 잊지 못할 한 해였다. 제주의 핵심 멤버로 활약한 구자철은 소속팀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케이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아기자기한 패싱 게임과 빠른 공수 전환으로 케이리그에 돌풍을 일으킨 제주의 중심에 구자철이 있었다. 구자철은 그해 가을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다시 한번 홍명보 감독이 내민 주장 완장을 차고 대표팀을 이끈다. 박주영이 와일드카드로 합류한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이 대회 4강에서 아랍에미리트(UAE)에 아쉽게 패했지만, 이란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4-3 승리를 거두며 감격의 동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거둔다.

 한편 그사이 가가와는 활동 무대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먼저 옮겼다. 1부 리그 승격 뒤에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간 그는 제이리그 전반기에만 11경기에 나서 7골을 몰아쳤고 그런 그에게 유럽 팀들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결국 가가와는 그해 여름 독일 명문 도르트문트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에 진출한다. 도르트문트의 명장 위르겐 클로프 감독은 프리 시즌에서 맹활약한 가가와에게 시즌 초반부터 주전 자리를 내준다. 헐값에 도르트문트 유니폼을 입은 가가와는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며 매 경기 팀 공격을 이끄는 맹활약으로 독일 축구계에 충격을 던졌다. 가가와의 활약은 이후 여러 일본 선수들이 줄줄이 분데스리가에 입성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2011년 새해 벽두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둘의 운명은 절묘하게 엇갈렸다. 구자철에게 아시안컵은 전성시대의 개막을 알린 화려한 서곡이었다. 그때까지 구자철은 다소 수비적인 역할에 치중하는 중앙 미드필더로 주가를 높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조광래 감독은 구자철을 최전방 스트라이커 바로 뒷자리로 전진 배치한다. 붙박이 선발 기용에 대해서도 의외라는 평이 많았지만,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을 맡긴 조 감독의 결단은 구자철에게도 적잖은 부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자철은 조 감독이 지목한 이 포지션에서 놀라운 골 결정력을 발휘한다. 5골을 터뜨리며 대회 득점왕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한 것이다. 대륙 최고 권위의 대회에서 득점력을 인정받은 그는, 이제 유럽의 여러 클럽들한테서 관심을 받게 된다. 대회 전까지 스위스의 영 보이스 이적이 유력했던 구자철은, 결국 분데스리가 2009년 우승팀인 독일 볼프스부르크와 입단 계약을 체결하며 유럽으로 무대를 옮긴다.

 가가와에게 아시안컵은 악몽과도 같았다. 이 대회 4강 한·일전에서 발가락을 크게 다쳐 리그 후반기 출전 기회를 송두리째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시즌이 끝날 무렵 다시 그라운드에 복귀하기는 했지만, 시즌 초반의 상승세를 생각하면 몹시 아쉬운 부상이었다. 일본이 우승한 아시안컵 결승전을 그라운드 밖에서 봐야 했던 것도 가가와에게는 아픈 기억이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고 2011~12 시즌이 시작되자 둘의 입장은 다시 뒤바뀐다. 구자철이 소속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고전하는 사이, 부상에서 회복한 가가와는 소속팀 도르트문트의 선두 질주를 견인하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이다. 구자철은 자신을 영입한 감독이 경질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꾸준한 출전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팀 성적이 급락하며 제대로 자리잡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으로 거론될 만큼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며 팀의 1위 질주를 주도한 가가와에 비하면 악전고투나 마찬가지였다.

 

“박지성 대신 가가와?” 한국 팬들의 질투심 

해가 바뀌면서 둘은 본격적으로 각국 축구를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새해의 시작과 함께 분데스리가 하위팀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 이적한 구자철은 입단 즉시 핵심 멤버로 자리잡으며 빼어난 경기력을 펼쳤다. 이전까지 별다른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던 구자철은 2부 리그 강등 위기에 몰려 있던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한 뒤 모두 15경기에 나서 5골 1도움을 기록했다. 구자철의 활약에 힘입어 상승세를 탄 아우크스부르크는 1부 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2011~12 시즌이 끝난 뒤 이어진 런던올림픽은 구자철의 진가를 재확인한 대회였다. 20세 월드컵, 2010년 아시안게임에 이어 또다시 홍명보 감독과 함께한 구자철은 앞선 두 대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이끌었다. ‘단짝’ 기성용과 함께 중원에 자리잡은 구자철은 어떤 팀을 만나도 밀리지 않는 탄탄한 경기력으로 가장 돋보이는 플레이를 펼쳤다. 기동력과 패싱 능력을 겸비한 구자철의 플레이는 한국이 사상 처음 올림픽 축구 4강에 오르게 만든 견인차였다. 비록 브라질에 패해 결승 진출에는 실패해 아쉬움을 삼켜야 했지만, 일본과 맞붙은 동메달 결정전을 승리로 이끌며 한국 축구에 첫 메달을 안긴다. 특히 구자철은 팀 승리를 확정짓는 2-0 쐐기골을 터뜨려 국민적인 환호를 받았다. 다음 주말에 시작되는 2012~13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구자철은 다시 아우크스부르크 소속으로 경기에 나선다. 개막전 상대는 뒤셀도르프다. 이 팀에는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옮겨온 차두리가 있다. 분데스리가에서 갈고닦은, 올림픽에서 확인한 향상된 기량을 앞세운 구자철은 그렇게 또 한번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서형욱 엠비시(MBC)스포츠플러스 축구 해설위원
서형욱 엠비시(MBC)스포츠플러스 축구 해설위원
2012년이 커다란 도전의 시간인 것은 가가와 역시 마찬가지다. 도르트문트에 머문 2년 동안 소속팀을 분데스리가 연속 우승으로 이끈 그는 단숨에 유럽 명문 클럽들이 주목하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그의 다음 행선지는 발빠르게 결정됐다. 이적료 1700만달러(약 300억원)를 제시한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팬들은 특유의 질투심을 발동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 박지성이 앞서 7년간 맨유맨으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가가와 입단 이후 박지성이 퀸스파크 레인저스로 팀을 옮기면서 마치 가가와가 박지성을 밀어낸 듯한 모양새가 되자 많은 한국 팬들은 가가와를 더욱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맨유를 둘러싼 작은 한·일전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박지성과 무관하게 가가와는 맨유의 많은 기대를 얻고 있다. 한 단계 더 높은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가가와의 플레이가 한국 팬들 사이에서도 꾸준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의 뛰어난 기량 때문이다. 우리에게 일본을 대표하는 축구 스타의 이미지가 어느새 가가와 신지로 바뀐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2011년 한·일전에서 일본이 한국을 꺾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가가와 신지와 최근 한국 축구가 거둔 성과의 중심에 선 구자철은, 그래서 한·일 축구의 향후 10년을 엿볼 수 있는 상징적 좌표가 될 것이다.

서형욱 엠비시(MBC)스포츠플러스 축구 해설위원

구자철, 가가와 신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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