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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3년차, 대표팀에 뽑혔다고요?

등록 2012-04-27 21:28

2008년 처음 대표팀에 뽑혔던 시절 가족과 함께. 왼쪽부터 아버지, 여동생, 어머니 그리고 이청용. 이청용 제공
2008년 처음 대표팀에 뽑혔던 시절 가족과 함께. 왼쪽부터 아버지, 여동생, 어머니 그리고 이청용. 이청용 제공
[토요판] 이청용의 편지
2008년 남아공월드컵 예선
내 머리 쓸어준 박지성 선배
심장이 오그라들었죠
그리고 A매치 출전 네번째
태극마크 첫 골을 쐈어요

<한겨레>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먼저 기분 좋은 인사로 편지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볼턴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갑내기 친구 파브리스 무암바의 몸상태가 많이 좋아져 이제는 퇴원해 일상생활이 가능해졌습니다. 무암바는 현재 다시 축구장으로 돌아오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두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참, 그러고 보니까 저 역시 그라운드 복귀가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1년 가까이 경기장 밖에서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지켜봤더니 정말 잔디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습니다. 승패를 떠나 축구 선수가 경기장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절절하게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힘들었던 재활 과정을 꾹 참고 견뎌온 만큼 앞으로는 이겨내지 못할 고통은 없을 것 같아요. 많은 것들을 다시금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한국 언론의 보도를 보니까 4월 중으로 복귀가 가능할 것이란 기사가 나오고 있는데, 사실 많이 조심스럽습니다. 물론 하루빨리 복귀해 팀의 1부리그 잔류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건 사실입니다. 4월 말에 (지)동원이가 뛰고 있는 선덜랜드와의 경기에 나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져 보고요. 하루에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눠 구단에서 짜준 프로그램에 맞춰 운동을 하면서 복귀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빨리 복귀하느냐보다 부상을 완전히 털고 복귀하는 게 더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의학적으로는 완치가 됐지만 심리적인 문제 때문인지 힘을 줘 뛸 때 작은 통증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무튼 지금껏 꾹 참고 기다려주신 것처럼 조금만 더 인내해주시면 꼭 그라운드에서 좋은 모습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럼 본격적인 프로생활과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그라운드에 나섰던 당시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프로 1군 무대 데뷔 2년째인 2007년이 제가 프로 선수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진 시기였다면 2008년은 더 높은 곳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준 시기였습니다.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것도 바로 이때였습니다. 2008년 3월 북한과의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경기를 앞두고 처음 대표팀에 소집됐지요. 당시 잠을 자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국가대표가 됐다는 거예요. 꿈인 줄 알고 몇번이나 뺨을 꼬집어 봤죠. 하지만 신출내기가 그렇듯이 처음 소집돼 훈련을 해보니 대선배들 앞에서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습니다. 결국 최종 명단에서 제외돼 역사적인 A매치 데뷔 무대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죠.

그리고 두달 뒤쯤 다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2008년 5월 요르단과의 아시아 3차 예선 홈경기를 앞두고 다시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렸죠. 지난번에는 주눅이 들어 훈련 때부터 자신있게 플레이하지 못했지만, 이번엔 독기를 단단히 품고 파주 트레이닝센터로 향했죠. 확실히 두번째는 처음과 달랐습니다. 아직 여유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어깨도 활짝 펴고, 선배님들에게 공을 달라고 소리도 질러가며 훈련에 참여했죠. 당시 허정무 감독님이 유난히 저를 따로 불러 이런저런 주문을 많이 하시는 거예요. ‘아, 이번에는 최종 명단에 남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내 A매치 출전 기회를 잡았죠. 그것도 당시 대선배인 설기현(인천) 선수를 제치고 선발로 투입된 거예요.

누구든 대표선수로서 데뷔전은 힘들고 경직됩니다. 시야가 좁아져 땅만 보고 공을 차기 일쑤이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요르단과의 첫 A매치는 익숙한 대표선수 일원으로서 뛰는 경기 같았어요. 마침 안방과도 같은 소속팀 FC서울의 홈구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려 그만큼 긴장을 덜 수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아버지께서 보내준 문자메시지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거라.’ 아버지가 보내주신 문자에 힘을 얻기도 했지만, 저 스스로 한계라는 벽을 넘고 싶었고, 그런 독기가 고스란히 그라운드에서 자신감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주문대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다 보니 드리블 돌파, 패스, 문전 침투 등 모든 것이 척척 풀리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골 찬스도 여러번 만들어내고 결국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배의 골을 도왔죠. 지성 선배가 골을 넣고 나서 저한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데, 경기 내내 팔팔하던 심장이 그때야 오그라들더군요. ‘아, 내가 뭔가 해내긴 해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무엇보다 주위의 우려와 편견을 넘고 싶었어요. ‘애송이가 데뷔전에서 얼마나 잘하겠어’ 등의 부정적 시선을 넘고 싶었던 거죠.

너무도 간절히 기다려왔던 A매치 데뷔골은 그로부터 석달여 뒤에 터졌습니다. 2008년 9월 요르단과의 평가전 때였는데요. A매치로는 네번째 무대였죠. 15살 이하 청소년 대표로 시작해 17살·20살 이하 청소년대표, 올림픽대표, 그리고 마침내 성인 국가대표까지 제가 태극마크를 달고 축구팬에게 보낸 첫번째 골 선물이었습니다. 당시 골 장면은 지금 그리라고 해도 정확히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제 뇌리 속에 또렷이 박혀 있습니다. 김두현(경찰청) 선배가 띄워준 공을 몸을 날려 헤딩으로 살짝 방향을 틀어 골을 넣었죠. 워낙 두현이 형의 크로스가 좋기도 했지만, 당시 K리그에서도 머리로는 골이 없었는데 그래서 더 기억에 남고 의미있는 골이었어요.

잘나가나 싶었는데 곧바로 시련이 닥쳤죠. 프로팀에 복귀해 2008년 11월 치른 K리그 부산전에서 거친 파울로 퇴장을 받았죠. 일명 ‘발차기 사건’입니다. 당시 팬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일부 누리꾼들은 추가 징계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여왔어요. 저 스스로 그라운드에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행한 일이었기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죠. 한동안 크게 낙담하기도 했지만 주변의 선배들이 다독여준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곧바로 카타르와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 2호골을 터뜨리면서 마음고생도 덜 수 있었습니다. 신출내기 대표선수 시절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요. 다음은 잉글랜드 프로 볼턴 입단 과정과 꿈에 그리던 첫 월드컵 무대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영국 볼턴에서 이청용 드림.

국가대표 축구선수, 프리미어리그 볼턴 소속

정리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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