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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야구·MLB

괴물의 좌우타석 홈런, 젠틀맨의 내리꽂는 마구

등록 2013-07-05 19:35수정 2013-07-07 09:56

[토요판] 승부 타자 호세 vs 투수 니퍼트
▶ 지난달 말 펠릭스 호세가 부산 사직야구장을 찾았습니다. 1999년과 2001년, 2006~2007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바로 그 호세 말입니다. 롯데의 초청으로 6년 만에 다시 한국을 방문한 호세를 보며 많은 야구팬이 잠시나마 옛 추억에 젖었습니다. 두산의 더스틴 니퍼트처럼 빼어난 에이스급 투수도 좋지만, 제2의 호세를 기다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이번 시즌 19명의 외국인 선수는 모두 투수입니다.

“3할을 원하는가, 30홈런을 원하는가.”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창에 사람 이름 ‘숀 헤어’를 입력한 뒤 엔터 키를 누르면 다소 긴 연관 검색어가 하나 뜬다. 특이하게도 단어가 아니라 어쩐지 자신감이 뚝뚝 묻어나는 문장이다. 해태 타이거즈 팬의 가슴속에는 쓰라린 상처로, 다른 구단 팬에게는 ‘먹튀’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그 이름, 숀 헤어라는 선수가 있었다. 숀 헤어가 한국 땅을 떠난 지는 이미 오래지만, 그가 남긴 주옥같은 명언들은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다. 추억의 시작은 1998년 5월의 광주 무등야구장이었다.

그날 광주 무등야구장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로 경기가 취소된 가운데 당당한 체구(키 185㎝, 몸무게 91㎏)의 백인 사내가 몇몇 구단 관계자와 함께 경기장을 찾았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모두 64경기를 뛴 ‘전직’ 메이저리거 숀 헤어였다. 그때 나이는 서른이었다.

해태가 모셔온 숀 헤어의 쓰라린 추억

외국인 선수 도입 첫해였던 그해에 해태는 빠듯한 예산으로 팀을 꾸려가야 했다. 모기업인 해태가 1997년 말 외환위기(IMF 사태)를 겪으며 크게 휘청이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8개 프로야구 구단 가운데 6개 구단이 두둑한 재정을 바탕으로 너도나도 좋은 외국인 선수를 뽑고 있을 때, 해태는 역시 주머니가 가벼웠던 쌍방울 레이더스와 함께 외국인 선수 없이 시즌을 시작했다.

팀 성적이 좋을 리가 없었다. 시즌 초 해태는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김응용 감독은 구단에 선수 보강을 여러번 촉구했다. 다른 팀처럼 두명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한명의 외국인 선수는 있어야 시즌을 꾸려갈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광주를 찾은 선수가 숀 헤어였다. 좌타자와 외야수가 부족한 해태였기에 왼손잡이 외야수 숀 헤어의 가세는 큰 힘이 됐다. 적어도 계약할 때까지는 그럴 줄 알았다.

5월 초 한국을 찾아 입단 절차를 모두 밟은 숀 헤어는 입국 첫날 광주 무등야구장을 찾아 경기장을 둘러봤다. 소감을 묻는 구단 관계자에게 메이저리그 출신 숀 헤어는 귀찮다는 듯 한마디 툭 던지고 구장을 빠져나갔다. “여기서는 외야 펜스를 넘겨야 홈런인가, 아니면 장외까지 넘겨야 홈런인가.” 메이저리그에 견줘 야구장 크기가 작다는, 거만하게 들릴 수 있는 발언이었다. 무등야구장의 크기는 좌우 담장까지의 거리 99m, 중앙 담장까지의 거리 120m로 결코 작은 편은 아니었다. 그가 남긴 이 말은 계약 당시 내뱉었다는 “3할을 원하는가, 30홈런을 원하는가”라는 말과 함께 많은 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니나 다를까 숀 헤어는 5월18일 한국 데뷔 경기(쌍방울 레이더스전)에서 안타 2개에 타점까지 하나 올리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거기까지였다. 메이저리그 출신답지 않게 불안한 수비로 경기를 말아먹는가 하면, 찬스 때마다 찬물을 끼얹는 헛스윙을 연발했다. 시즌 성적은 타율 0.206에 홈런 0개에 그쳤다. 해태 구단 관계자들은 그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숀 헤어는 손해여…”를 읊조리곤 했으니, 이래저래 그는 기록을 남기기보단 어록을 남긴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여기까지는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에 관한 ‘야사’의 일부다. 김은식 야구칼럼니스트가 쓴 책 <기아 타이거즈 때문에 산다>를 보면 숀 헤어의 “장외까지 넘겨야 홈런인가” 발언은 무등야구장의 이중 펜스를 보며 앞뒤 펜스 가운데 어떤 것을 넘겨야 홈런인지 묻는 질문이었다.

프로야구 무대에 외국인 선수가 등장한 것은 올해로 16년째다. 한국 야구 수준의 질적 향상과 선수 개인 기량의 발전이 꾸준히 이뤄지며, 한국을 찾는 외국인 선수의 면면도 크게 달라졌다. 지난 시즌부터 도드라진 현상은 ‘외국인 타자의 멸종’이다.

한국 프로야구 무대를 밟은 마지막 외국인 타자는 2011년 시즌 때 넥센 히어로즈에서 뛴 코리 알드리지와 한화 이글스에서 활약한 카림 가르시아가 마지막이다. 지난해 8개 구단, 올 시즌 9개 구단은 최대 2명(신생 구단 엔씨 다이노스는 3명)까지 보유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를 모두 투수로 채웠다. 특히 올해는 기아 타이거즈의 마무리 앤서니 르루를 뺀 18명이 모두 선발투수다.

과거 한국 프로야구 거쳐간
가장 빼어난 외국인 타자는
롯데 괴물타자 펠릭스 호세
천부적 파워, 정교한 선구안
한 경기에 양손 홈런 치기도

현재 국내 무대에서 뛰는
가장 빼어난 외국인 투수는
두산의 선발 더스틴 니퍼트
상체 세워 내리꽂는 직구는
타자 앞에서 살짝 휘는 ‘마구’

외국인 투수의 초강세는 국내 투수 가운데 긴 이닝 동안 타자를 구위로 확실히 압도할 만한 선수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뜻한다.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3할의 타율과 30개 이상의 홈런을 쳐줄 외국인 타자를 구하는 것도 예전처럼 쉽지만은 않다. 조현봉 롯데 자이언츠 운영지원매니저는 “구단마다 국내 선발투수 가운데 10승 이상을 안정적으로 올려줄 수 있는 선수가 사실 별로 없다. 우리 롯데만 해도 10승의 보증수표는 송승준 정도에 불과하다. 다른 팀도 국내 선수로 5선발을 모두 채우기가 쉽지 않다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무늬만 메이저리거인가, 진짜 메이저리거인가

외국인 선수 제도를 만든 초기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1998년 해태가 좌타 공백을 메우려고 숀 헤어를 데려온 것처럼 팀 타선의 빈구석을 외국인 타자로 메우려는 시도가 많았다. 해태에서 숀 헤어가 뛰고 있을 때 엘지(LG) 트윈스에는 주니어 펠릭스, 현대 유니콘스에서는 스코트 쿨바 등이 활약했다. 오비(OB) 베어스는 1루수 타이론 우즈와 2루수 에드가 캐세레스 등 내야에만 두명의 외국인 타자를 몰아넣었다. 한화 이글스도 유격수 조엘 치멜리스와 3루수 마이크 부시 등 외국인 선수 두명으로 내야의 절반을 채울 정도였다. 그해에 프로야구 무대에서 뛴 선수는 모두 12명이었는데, 타자가 8명이었다. 이듬해인 1999년에는 타자 편중이 더 심해져, 모두 16명의 외국인 선수 가운데 투수는 쌍방울에서 뛴 마이클 앤더슨과 제이크 비아노, 롯데의 마이클 길포일(시즌 중반 에밀리아노 기론으로 교체) 등 단 세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바로 그해 어록이 아닌 기록을 남긴 외국인 타자가 등장했다. 롯데의 펠릭스 호세였다.

사실 펠릭스 호세는 한국에 진출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화제를 모은 선수였다. 숀 헤어처럼 메이저리그의 냄새만 맡은 ‘무늬만 메이저리거’가 아니라 진짜 메이저리거였기 때문이다.

호세는 1988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외야 유망주로 입단한 첫해부터 천부적 타격 재능을 꽃피우며 빅리거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1989년에는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소속 팀을 옮긴 1990년부터는 본격적인 빅리거로 활약했다. 1991년에는 메이저리그 ‘별들의 전쟁’이라 할 수 있는 올스타전에 나섰고 1995년에는 리그 타격 5위를 차지했으니, 요즘 표현으로는 ‘ㅎㄷㄷ’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1999년 한국 프로무대에 등장한 호세는 국내 야구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체구(186㎝, 100㎏)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양손을 모두 잘 쓰는 ‘거포 스위치타자’는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물론 당시 국내 야구에는 엘지의 박종호라는 완성형 스위치타자가 있었지만 거포와는 거리가 멀었고, 5일 현재 홈런 1위(16개)를 달리고 있는 넥센의 이성열은 스위치타자를 포기하고 왼쪽 타석에만 들어서고 있다. 좌우 타석 가리지 않고 홈런을 쳐대는 건 호세라는 이름의 괴물, 단 한명이었다. 게다가 또 하나, 대개 홈런과 삼진 수는 정비례 관계에 있게 마련이다. 큰 걸 노리다 보면 스윙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세는 거포인 동시에 정교한 타격에 선구안까지 뛰어났다. 1999년 그와 함께 롯데의 중심타선을 꾸렸던 마해영 <엑스티엠>(XTM) 해설위원의 기억이다.

“정상급 메이저리그 선수가 온다고 해서 우리 동료 선수들도 큰 관심을 가졌다. 그가 하는 플레이 하나하나는 물론 훈련하는 장면까지 놓치지 않고 주의 깊게 지켜보곤 했는데, 정말 출중한 선수였다. 일단 천부적인 파워가 뛰어났지만 그보다는 공을 잘 보던 선수였다. 호세를 뺀 대다수 외국인 타자는 삼진을 많이 당하면서 홈런을 쳐대는 유형이었다면, 호세는 상대가 승부를 피하면 무리해서 스윙을 하지 않고 걸어나갈 줄 아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니까 타석에서 경기를 끌어갈 줄 아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호세는 첫 시즌부터 기록을 만드는 사나이였다. 그해 5월9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프로야구 통산 1만호 홈런을 쏘아올렸고, 5월29일 전주 쌍방울전에서 호세는 드디어 사상 첫번째 한 경기 좌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호세의 활약은 포스트시즌에서도 이어졌다. 삼성 라이온즈와 벌인 플레이오프에서 호세는 팀이 3-5로 지고 있던 5차전 9회말 투아웃 1·2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바로 앞 타석에 나왔던 4번 타자 마해영의 삼진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호세는 삼성 마무리 임창용의 몸쪽 빠른 직구를 받아쳐 그대로 담장 밖으로 날려보냈다. 역전 끝내기 3점 홈런이었다. 호세는 7차전에서도 0-2로 끌려가던 6회초 공격에서 삼성 선발투수 노장진을 상대로 추격의 솔로포를 쏘아올렸다.

호세는 왜 삼성 응원석에 방망이를 던졌나

호세의 한점짜리 홈런은 롯데의 추격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동시에 그의 불같은 성격을 야구팬에게 드러내주는 계기가 됐다. 먼저 호세를 자극한 건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을 찾은 홈팀 관중이었다. 홈런을 친 호세가 3루를 돌 때 심상찮은 조짐이 있었는데, 누군가 그에게 물병을 던진 것이었다. 이를 피한 호세가 홈 플레이트를 밟고 동료 선수들과 손바닥을 마주칠 무렵, 이번에는 맥주캔이 날아왔다. 맥주캔은 호세의 사타구니를 맞혔다.

흥분한 호세는 삼성 응원석을 향해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아니 던졌다. 호세가 던진 방망이는 내야에서 경기 관전 중이던 박아무개씨의 손목을 맞혔고, 관중들은 기다렸다는 듯 호세 등 롯데 선수단을 겨냥해 소주병과 맥주캔, 먹던 사발면(용기라면) 등을 집어던졌다. 라면은 그물에 대롱대롱 걸렸고 국물은 롯데 선수 쪽으로 쏟아졌다. 아수라장이었다. 시민의식을 갖추지 못한 일부 관중과 흥분한 호세 등이 벌인 황당했던 당시의 사건은 부산 야구팬이 호세에게 애틋한 감정을 품는 계기로 작용한 측면도 있었다. 다시 마해영 위원의 말이다.

“부산 야구팬은 화끈한 걸 좋아한다. 과거에도 보면 강속구로 삼진을 잡아내던 최동원, 박동희 선배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타자 쪽에서는 1대 4번 타자였던 김용희, 2대 김민호 선배는 물론 3대였던 나와 4대 이대호까지 뻥뻥 쳐주는 스타일의 선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호세가 딱 그랬다. 결정적 홈런도 많이 때리고 화끈하면서도 부산 팬에게는 또 엄청나게 친절했다. 그런 기억이 부산 팬에게는 오래 남아 있는 것 같다.”

그해에 호세는 박정태, 마해영 등과 함께 중심타선을 이루며 롯데의 막강 타선을 주도했다. 롯데 팬은 아직도 1999년 3번 타자 박정태-4번 타자 마해영-5번 타자 호세의 위용을 그리워하고 있다. 성적도 성적이었지만 악바리 근성의 박정태와 화끈한 호세,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 마해영의 조합은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박정태-마해영-호세 트리오가 1999년 남긴 성적은 이랬다. 타율과 안타, 홈런, 타점 순서다.

박정태 0.318/129안타/13홈런/79타점.

마해영 0.372/187안타/38홈런/118타점.

호세 0.327/151안타/36홈런/122타점.

호세는 이후 2001년과 2006~2007년 중반까지 모두 4시즌 동안 롯데 야구팬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한국을 떠났다. 2001년 그가 기록한 출루율(0.503)은 지금까지 역대 한 시즌 최고 출루율로 남아 있다.

롯데에 호세가 있었다면 오비(두산)에는 타이론 우즈, 한화에는 댄 로마이어와 제이 데이비스, 현대 유니콘스에는 클리프 브룸바가 있었다. 박근찬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팀장은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외국인 선수를 꼽으라면 우즈와 호세, 데이비스, 로마이어, 그리고 투수 다니엘 리오스 정도”라고 밝혔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까지 각 팀이 외국인 투수보다 타자를 더 선호했던 이유는 두가지였다. 팀마다 투수력보다는 타력 보강이 필요했다는 현실적인 필요도 있었고, 이와 동시에 프로야구 인구의 저변을 넓히자는 공감대도 각 구단에 형성돼 있었다. 박근찬 홍보팀장은 “아무래도 좀더 많은 팬을 끌어모으려면 일주일에 한번, 많아야 두번 등판할 수 있는 외국인 선발투수 자원보다 매 경기 나설 수 있는 타자가 유리하다는 것은 분명했다”고 말했다.

기론·키퍼·사도스키도 3년차엔 울었는데…

과거 한국 프로야구를 거쳐간 상징적 외국인 타자가 호세라면 현재 국내 무대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투수 19명 가운데 가장 빼어난 활약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는 선수로는 두산의 우완 선발투수 더스틴 니퍼트가 있다.

2011년 한국 무대를 처음 밟은 니퍼트는 첫해에 15승6패에 평균자책점 2.55를 기록하며 단숨에 최고의 외국인 선수 자리를 꿰찼다. 드러나지 않는 팀 기여도는 더 높았다. 그해 그가 마운드 위에서 책임진 이닝은 모두 187이닝이었다. 이 가운데 두번의 완투 경기와 한번의 완봉승이 포함돼 있었다. 삼진 150개를 잡는 동안 볼넷은 64개밖에 내주지 않았다. 지난 시즌 성적은 타자를 압도했던 첫해에 미치지 못했다. 11승10패, 평균자책점 3.20이었다.

호세가 뛰어난 성적과 함께
너무 화끈해서 걱정 끼쳤다면
니퍼트는 모범적인 젠틀맨
코치들은 ‘무한 믿음’ 보내 

지금 각 구단 1~2선발은
모두 외국인 투수 일색
10승 이상 확실히 보증하는
선발투수가 부족하다 보니
타자 수급보다 일단 선발!

외국인 투수가 3년 연속 잘 던지기란 불가능하다는 ‘외국인 투수 3년차 징크스’도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지금까지 한국을 거쳐간 외국인 투수의 세번째 시즌은 험난했다. 1999년 호세와 함께 롯데에 입단한 에밀리아노 기론은 첫 시즌 5승1패, 두번째 해에는 10승8패를 기록하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으나 3년차였던 2001년 부진에 빠져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기아 타이거즈와 두산을 거친 마크 키퍼도 첫해 기아에서 19승을 거둔 뒤 두산으로 이적했으나 데뷔 3년째였던 2004년 7승9패 방어율 4.69의 초라한 성적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한국을 떠났다. 롯데의 외국인 투수 라이언 사도스키, 현재 넥센에서 뛰고 있는 브랜든 나이트도 3년차 징크스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일단 한국 타자에게 구위나 투구 패턴을 읽히면 낯선 외국인 투수로서의 장점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강력한 직구를 갖고 있는 니퍼트는 달랐다. 시즌의 절반을 소화한 7월5일까지 그는 8승을 거두고 있다.

니퍼트는 월등히 큰 키로 타자에게 압박감을 안겨주는 흔치 않은 유형의 선수다. 니퍼트의 키는 203㎝. 투구 폼이 완벽한 정통파에 가까운데다 윗몸을 꼿꼿이 세운 채 던지기 때문에 공을 놓는 지점, 곧 릴리스포인트가 대단히 높다. 릴리스포인트가 높다는 것은 똑같은 변화구를 던져도 더 크게 휜다는 뜻도 된다. 공을 던지는 폼도 간결해 타격 타이밍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그가 위에서 내리꽂는 직구는, 비유하자면 2층에서 1층 아래로 던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여기에 한가지 비밀이 더 있다. 니퍼트의 직구는 위에서 내리꽂을 뿐 아니라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살짝 한번 더 떨어진다. 싱킹 패스트볼 혹은 투심과도 비슷하다. 김정준 <에스비에스 이에스피엔> 해설위원의 평가다.

“니퍼트의 가장 큰 강점은 위에서 내리꽂는 각도 큰 직구다. 게다가 볼 스피드가 150㎞를 웃도는데, 이건 한국 타자들로서는 분명 상대하기 까다로운 그만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직구 이외에는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커브 등 네가지 변화구를 던지는데, 체인지업과 슬라이더가 특히 좋다. 세가지 구질의 변화구 모두 B+에서 A 정도는 된다고 본다.”

니퍼트는 ‘두산 투수력의 40%’

투수 출신인 손혁 <엠비시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도 니퍼트를 올 시즌 최고의 외국인 선수 가운데 한명으로 꼽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올 시즌 최고의 외국인 투수는 두명이다. 좌완 에이스가 에스케이(SK) 와이번스의 조조 레이예스라면, 우완으로는 니퍼트였다. “니퍼트의 경우 150㎞가 넘는 속구를 타자의 몸쪽과 바깥쪽으로 정확히 찔러 넣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외국인 투수는 대개 힘에 의존하는 투구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제구력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니퍼트는 구위와 제구를 다 갖춘 몇 안 되는 투수다.”

롯데에서 뛰었던 호세가 구단 관계자에게 뛰어난 성적으로 기쁨을 안겨준 동시에 화끈한 성격으로 늘 걱정을 끼쳤다면 니퍼트는 반대 사례에 속한다. 늘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슷하지만 호세와 달리 야구를 대하는 자세나 생활 태도도 대단히 모범적이라는 것이 두산 관계자의 평가다. 특히 정명원 두산 투수코치는 니퍼트를 가리켜 ‘두산 투수력의 40%’라고 할 정도로 그에게 큰 믿음을 보이고 있다.

“마운드 위든 어디든 항상 ‘젠틀’하고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를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만든 원동력이라고 본다. 현재 두산 1군 투수가 모두 12명인데 1군 투수력의 40%를 니퍼트 혼자 차지하고 있다. 다른 투수들이 좀더 잘해주면 좋은데, 아직은 가지고 있는 능력만큼 해주는 투수가 많지 않아서 니퍼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팀이 연패를 하고 있을 때 꼭 필요한 1승을 해줄 수 있는 선수가 바로 니퍼트다.”

니퍼트에 대한 정명원 코치의 무한한 믿음에서 알 수 있듯, 에이스급 외국인 선발투수는 감독 등 코칭스태프를 기쁘게 한다. 반면 폭발적인 장타력을 갖고 있는 외국인 타자는 팬을 춤추게 한다. 제2의 펠릭스 호세, 타이론 우즈, 카림 가르시아가 당분간 나올 수 없다는 현실은 분명 아쉬운 일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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