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승부] ‘마무리 지존’ 오승환과 봉중근
▶ 자고로, 매듭을 잘 지어야 한다고 했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완투형 투수가 줄고 후반부에 가서 뒤집히는 경기가 늘면서 현대 야구에서 마무리 투수는 선발만큼 중요해졌다. 수년간 세이브 1위를 달리며 마무리 세계를 평정해온 오승환(삼성)의 독주체제를 위협하는 막강한 도전자들이 등장했다. ‘지존’ 오승환을 뒤쫓는 추적자들의 대결에 9회말 투아웃은 더 짜릿해졌다.
250세이브 고지 넘은 오승환
140~150㎞를 넘나드는
빠르고 묵직한 돌직구로 승부
‘라젠카, 세이브 어스’ 나오면
상대편서 “졌다” 탄식 터져 지난해 26세이브 기록하며
변신 성공한 2년차 마무리 봉중근
‘솔저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방수처럼 등장해
부족한 파워직구는 수비로 보완 “둥둥” 강력한 비트의 전자음이 울리면 대구야구장은 둘로 갈라진다. 원정팀 응원석은 “졌다”는 탄식이 흐르고, 안방팀에선 “이겼다”는 안도감에 분위기가 확 뜬다. 그룹 넥스트의 ‘라젠카, 세이브 어스’(라젠카, 우리를 구해줘) 음악과 함께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나이. 삼성의 한국시리즈 2년 연속 우승의 공신인 돌부처 오승환(31·삼성)이다. 팬 공모로 등판 배경음악이 된 노래 제목처럼 오승환은 국내 최고의 ‘세이버’(구원자)다. 오승환은 2005년 데뷔해 지난해까지 249세이브를 기록했고, 7일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250세이브 고지를 밟았다. 22일 현재 251세이브. 매 세이브 때마다 기록을 다시 쓴다. 향후 목표는 300세이브 돌파. 올 시즌에 이루려면 49세이브(22일 기준)가 필요하다. 2006년, 2011년 47세이브로 단일 시즌 아시아 최다를 기록했는데, 그때보다 2세이브를 더 해야 한다. 팀이 앞서 나가야 기회를 잡는 만큼 운도 따라야 한다. 오승환은 “블론 세이브(세이브 기회를 놓치는 것)를 하지 않고 300세이브까지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토종 클로저(마무리 투수)로 우뚝 선 오승환에 맞설 후보는 눈을 씻고 찾아도 쉽지 않다. 마무리 보직이 워낙 특화된 영역인데다,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주무기와 강력한 배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통 3점차 이내의 승부에서 마지막 1이닝을 소화하는 마무리가 ‘불을 지를 경우’ 다 잡았던 승리는 날아간다. 마무리 투수가 느끼는 심리적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삐끗했다간 ‘방화범’ ‘새가슴’ 등 팬들의 온갖 비난도 감내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엘지(LG)의 수호신으로 변신한 봉중근(33)은 그래서 “오승환과 나를 비교하지 말아달라”고 한다. 워낙 걸출한 오승환과의 비교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뜻이다. 하지만 선발에서 마무리로 보직을 바꾼 봉중근도 마무리로서 이름 석자를 각인시키고 있다. 지난해 26세이브에 평균자책점 1.18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변신을 했고, 올 시즌 본격적으로 마무리 보직을 맡은 뒤 에스케이(SK)와의 개막 2연전에서 세이브를 올리는 등 22일 현재 6세이브로 피치를 내고 있다. 봉중근이 뒷문을 책임지면서 엘지의 팀 전력이 안정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엘지는 2007~2011년 블론세이브 71개를 기록하는 등 10년 가까이 뒷문이 허술했다. 당시까지 8개 구단 중 가장 많은 숫자다. 프로구단마다 사정은 다르다. 올 시즌 투수력이 든든한 기아는 마무리 고민이 절실하지 않다. 두산이나 엔씨(NC), 한화는 딱히 마무리 투수로 꼽을 만한 선수는 드물다. 그러나 엘지로선 든든한 마무리가 가을야구를 보장하는 최고의 카드다. 봉중근은 이런 팀 전략을 수행해야 한다. 선발 경험에서 나오는 연륜과 마무리 투수에게 중요한 정신력에서 봉중근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있다. 봉중근의 등장 배경음악은 스스로 선택한 록그룹 드라우닝풀의 ‘솔저스’다. 비상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나타나 불을 끄는 소방수를 연상시킨다. 오승환의 목표는 300세이브 돌파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의 노무라 가쓰야 명예감독은 우승팀의 조건으로 “절대적인 마무리 투수의 존재”를 가장 먼저 꼽는다. 지난해 우승팀 삼성의 류중일 감독도 “현대 야구는 분업화되면서 불펜, 마무리가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선발이 5~6회까지 해결하면, 롱릴리프·쇼트릴리프라 불리는 중간계투진이 점수를 관리해주고, 셋업맨이 우세 상황을 정리해준 뒤 한 이닝 15개 안팎의 공을 던지는 마무리가 등장하는 방식이다. 에이스급 선발투수 자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자원을 최적으로 배분한 셈이다. 국내 프로야구의 경우 선발이 9회까지 책임지는 완투율이 1990년대 33.6%에서 2000년대 8%로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완투율은 5%였다. 메이저리그도 1950년대까지만 해도 완투율이 40%를 넘었지만, 2000년대 12%로 떨어졌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2번 이상 완투한 투수는 전체 30팀 중에서 33명에 불과하다. 오승환은 앞선 상황에 화룡점정을 해 승리를 밀봉할 주무기로 직구를 갖추고 있다. 슬라이더도 예리하지만 직구 구속이 시속 140㎞ 후반~150㎞ 중반이다. 비공식 기록으로는 159㎞를 찍은 적도 있다. 오승환의 공은 빠르면서 묵직한 점이 특징이다. 일명 ‘돌직구’라 불리는 그의 포심패스트볼을 타자들은 들어오는 것을 알면서도 못 친다. 2006 세계야구클래식(WBC)에서 오승환을 경험한 당시 미국 대표팀의 포수 마이클 배럿은 “한국의 마무리가 110마일(시속 176㎞)짜리 직구를 던지는 것 같다”며 엄청난 체감 속도를 고백한 바 있다. 돌 같은 직구에 이어 구속을 대폭 낮춘 슬라이더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은 뒤 다시 직구로 삼진을 잡는다. 배트에 맞아도 범타가 되기 일쑤다. 지난해 홈런왕인 넥센의 박병호는 “오승환의 공은 볼 끝의 힘이 좋다. 초속과 중속의 차이가 크지 않아 포수 미트까지 볼 끝이 살아 움직인다. 직구라는 걸 알면서도 치기가 쉽지 않고, 받아쳤을 때도 묵직하다”고 말했다. 견제 동작과 각 누(베이스) 백업 전환도 빠르다. 봉중근의 필살기도 직구와 수비 능력이다. 선발 출신의 봉중근은 직구뿐 아니라 커브, 체인지업 등 다종다양한 구질을 구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낼 수 있는 좌우 컨트롤이 정교하다. 넥센의 박병호는 “봉중근의 구속은 빠르지 않지만 변화구가 다양하고 예리하게 들어온다”고 말했다. 봉중근은 “선발투수로 5년간 던지면서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마무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직구, 커브, 체인지업 세개만 갖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낙 던지는 공의 절대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병기를 써야 하는 제약 조건 때문이다. 봉중근은 “역시 주무기로는 직구의 비율이 다른 공보다 훨씬 높다. 결정구라면 현재 직구다. 스피드를 떠나 마무리는 공격적으로 가는 게 좋다고 해서 공격적인 피칭으로 직구를 많이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봉중근은 파워직구에서 밀리는 약점을 “수비 능력과 주자 견제”에서 보완하고 있다. 왼손 투수이기 때문에 1루 주자의 베이스러닝을 지켜보고 있어 주자를 묶어놓는 능력이 탁월해 한점차 승부에서 유리하다는 평가다. 특히 발야구가 강조되는 올 시즌 봉중근의 가치는 부각된다. 봉중근은 “뛰는 야구가 대세일수록 나는 자신있다. 첫 타자를 살려 보내도 긴장하지 않고 번트나 도루를 안 주고 주자를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리를 높게 올려 견제하는 습관이나 제스처도 여러가지로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봉중근, 국내 최고의 주자 견제능력 차명석 엘지 투수코치는 “아무나 마무리 투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불펜에서 잘 던져 마무리로 내보내면 원래 던지던 공도 못 던지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차명석 코치는 “마지막에 마운드에 서는 압박감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야구 전문가들도 마무리 투수의 조건으로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을 가장 먼저 꼽는다. “자주 경기에 나서야 하고,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저돌적인 성격으로 타자를 밀어붙여 삼진이나 땅볼로 득점을 막아야 한다”는 것도 야구 전문서의 일반적인 결론이다. 오승환의 자신감은 어렸을 때부터 단련된 자기 관리에서 나온다. “내 공을 왜 못 치는 것 같냐고요? 글쎄, 전 잘 모르죠.” 웃음 섞인 말 속에 불굴의 집념이 숨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남보다 멀리 던지는 송구능력이 발견돼 야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옮긴 오승환은 어깨뿐 아니라 손아귀의 힘이 강하다. 김태한 삼성 투수코치는 “악력이 높으니 공의 회전수가 다르고 그러다 보니 볼 끝의 힘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악력을 높이기 위해 지금도 노력한다. 오승환은 “중학교 때부터 정구공을 주머니에 갖고 다니며 세 손가락으로 잡아 누르는 운동을 했다”고 한다. 시즌 때나 비시즌 때도 빼먹지 않고 손목 강화운동 등 웨이트를 하며 몸을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악력 테스트에서는 보통 레슬링 선수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야구공의 실밥 궤적 4곳에 걸쳐 공을 잡는 포심(four seam)의 초당 회전수는 최고 57바퀴로 국내 투수 중 1위다.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봉중근은 쫓아가는 입장이지만 여유가 있다. 차명석 엘지 투수코치는 “경험이 많고 큰 대회를 치렀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자기 실력을 충분히 낼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위기가 닥쳐도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마무리 지존인 오승환조차 “공 던지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 견제 능력과 타자와의 수싸움, 기복 없는 자기 피칭, 번트 수비 등 모든 면에서 마무리 투수로서 제격”이라고 높은 점수를 준다.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국내 투수 최고의 주자 견제능력을 갖추고 있다. 올 시즌 실점이나 자책점 관리에서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점수를 내주지 않는다. 엘지의 유산에는 과거 국내 최초로 200세이브를 기록했던 김용수의 전통도 있다. 봉중근은 “과거 엘지는 김용수, 이상훈 선배님의 이미지가 워낙 강했고, 그 이후로는 (마무리가) 없었다는 팬들의 실망감이 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확실한 마무리로 이미지를 굳힐 것이다. 소방수 김용수라고 항상 말하듯이 나도 그런 말 들을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장난 좋아하고 잘 웃는 오승환
“공 하나에 뒤집힐까 긴장돼”
마운드에 오르면 포커페이스
웃음·흥분 감추지 않는 봉중근
“‘괜찮아, 자신 있어’ 생각하며
상대편 두렵게 하는 게 재미” 승리의 조건은 ‘마무리 투수’
클로저 조건은 강심장과 인내
기본 조건 갖춘 두 사람의
마무리 경쟁이 기대된다 돌부처와 흥분남의 스타일은 어떻게 다른가 오승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는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돌부처 사진이 걸려 있다. 마운드에 서면 표정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뿐 그도 은근 재미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저 장난도 잘 치고, 엄청 잘 웃어요.” 그런 사람이 마운드에만 서면 표정을 잘도 감춘다. 타고난 포커페이스다. “저도 긴장해요. 1점차 상황이거나 1점차에 주자가 있는 타이트한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면 긴장되죠. 공 하나에 뒤집힐 수 있으니까. 특별히 어떤 생각을 하진 않지만, 굳이 떠올려보자면 ‘막아야겠다’는 생각은 당연한 거고, ‘저 타자를 내보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으로 던져요. 한 타자 한 타자 안 내보내다 보면 삼진이 되는 거고, 어느새 경기는 끝나는 거니까.” 말본새가 돌직구처럼 묵직하다. 오승환은 돌직구에 안주하지 않고,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 체인지업에 슬라이더도 배웠다. ‘마무리의 지존’으로 불리면서도 더 좋은 마무리 투수가 되려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한다. 지금도 새로운 구종을 테스트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김태한 투수코치는 “오승환도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려고 연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승환은 “몇년간 구질 개발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지금 던지는 직구와 슬라이더를 더 예리하게 던질 수 있어야 그 후에 다른 변화구에 도전할 수 있다”며 발톱을 숨겼다. 오승환은 “선발도 기회가 된다면 하고는 싶지만 어디까지 생각일 뿐이고 지금이 좋다”고 했다. 반면, 봉중근은 감정 표현에 솔직하다. 봉중근은 마운드에 서면 오히려 자신감이 생긴다고 한다. 무표정으로 감정을 숨기는 오승환과 달리 봉중근은 다 드러내며 포커페이스 한다. “오승환처럼 전혀 표정이 없는 게 좋죠. 타자들이 읽을 수 없으니까. 그러나 난 그런 성격이 아니라. 흥분하면 더 흥분한 모습을 보이는 게 더 도움이 돼요. 안타를 맞아도 ‘난 괜찮아. 견제 자신있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게 제겐 포커페이스예요. 웃기도 하고 야수들에게 일부러 얘기도 걸고 그런 제스처를 하면서 긴장을 풀게 되는 것 같아요. 9회에는 ‘아, 봉중근이 나오겠구나’ 하는 팬들에게 기대감을 주고, 상대편이 저를 두렵게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봉중근은 시즌 전 오승환과 세이브 경쟁을 하고 싶다고 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마무리 투수를 잡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따라가다 보면 오승환을 이기진 못하더라도 목표 이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라고 한다. 오승환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 뛰어난 투수가 그런 말을 한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둘의 마무리 경쟁에 올 시즌 야구가 더 재미있어질 거란 기대감이 나온다. 봉중근의 올 시즌 목표는 “30세이브와 믿음감”이다. 그런 “믿음감”은 오승환에게 본받고 싶다고 한다. “마운드에 서면 믿음을 주잖아요. 점수 줄 것 같은 느낌이 전혀 안 들잖아요. 오승환이 9회에 나오면 상대편에서 ‘아, 졌다’ 이런 느낌을 받게 하는 포스가 부러워요. 누구도 따라갈 수 없죠.” 오승환의 직구 구속도 부럽다. “솔직히 직구 구속을 높이려는 생각도 했어요. 마무리 피처인데 스피드가 많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나름 쑥스러울 때도 있어요. 오승환이나 손승락(넥센)이 부러울 때도 있고. 그러나 올해는 다행히 스피드가 나왔어요. 일부러 만든 것도 아니었는데 올해 처음 마무리로 풀타임을 뛴다는 마음가짐으로 던져서 그런지 힘이 났어요. 왼손 투수인데 (130㎞ 후반에서) 145~146㎞까지 나오니 자신감이 생겨요.” 쉬지 못하고 무작정 대기하는 괴로움 봉중근은 “야구도 쇼잖아요. 몸으로 보여주는 팬서비스. 팬이 먼저니까 선수들도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하고 서로 레이스하며 수준 높은 야구를 보여주겠다”고 하고, 오승환은 “마무리 투수가 많아지면서 9회말 역전이 줄어들면 팬들이 재미없어하지 않을까” 농을 친다. 두 사람의 즐거운 레이스를 올 시즌 끝까지 지켜보려면 구단의 관리도 절실하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마무리 투수는 대부분 단명했다. 혹사당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통산 601세이브를 기록한 밀워키 브루어스의 트레버 호프먼(1월 은퇴)은 한 경기 평균 1이닝 정도를 던졌다. 그가 40살을 넘겨서까지 투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절제되고 제한된 투구 이닝이다. 한국은 다르다. 1990년 구원부문 1위였던 송진우(한화)는 그해 50경기에 출장해 128이닝을 던졌다. 평균 투구 이닝 수는 2.55였다. 김용수(엘지)도 1998년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는 ‘노가다 피칭’을 했다. 당시는 대부분 선발을 하다 마무리가 되는 등 보직을 바꾸어 일이 더 많았을 터다. 오승환은 평균 투구 이닝 수가 1~2이닝 정도다. 데뷔 첫해를 제외하고 줄곧 마무리 투수로 9회에 등장했다. 팀에서 오승환을 마무리가 아닌 다른 경우에 등판시킨 적이 없다. 오승환은 그러나 “지금은 마무리 투수가 혹사당하는 일이 없다. 2, 3이닝 가는 경우가 거의 없는 등 좋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오승환이 그에 일조했다. 둘은 마무리 투수로서 가장 힘든 게 “없지만 굳이 꼽자면 대기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선발은 로테이션에 따라 등판날이 정해져 있지만, 마무리 투수는 언제 투입될지 몰라 경기를 지켜보며 타자를 분석하는 등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몸을 풀다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정신적인 부담이 크다. 봉중근은 “지난해 위염까지 걸릴 정도로 부담감이 크다. 뭘 먹으면 체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매 경기를 봐야 하고 언제 나갈지 모르고. 마음 놓고 풀로 쉴 수 있는 경기가 별로 없다.” 그래서 늘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심리적 안정을 취한다고 한다. 그는 “일종의 징크스다. 5회 스트레칭을 해야 하고, 10 대 0이어도 무조건 몸을 푼다. 6회에는 비타민을 먹고 7회에는 운동하고 아무리 속이 안 좋아도 커피를 마셔야 한다. 그런 게 서너가지 되는데 똑같이 하고 나야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오승환은 “야구가 끝날 때까진 경기 없는 월요일 빼고는 나갈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준비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한다. 예전에는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지만, 어느 순간 뛰어넘게 됐다. 프로니 그런 스트레스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조바심 갖고 경기를 지켜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마무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바로미터인 몸값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엿보인다. 2005년 2000만원으로 시작한 오승환의 올 시즌 연봉은 5억5000만원. 지난해 3억8000만원보다 1억7000만원(인상률 44.7%)이 많다. 2007년 구대성이 한화 시절 받은 6억3000만원보단 낮지만 현역 마무리 중에서는 최고 연봉이다. 투수 부문 전체를 따져도 올 시즌 6억원을 받은 김병현(넥센)에 이어 2위다. 봉중근은 지난 시즌과 같은 1억5000만원. 오승환은 “마무리 투수를 목표로 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시즌만 잘해도 고액 연봉자가 되는 선발 투수나 타자들에 견줘 홀대를 받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지만 오승환 때문에 마무리 투수의 가치가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둘은 대표팀도 함께 하면서 평소 친한 사이다. 지난해 마무리로 투입됐을 때 봉중근은 오승환에게 많이 물었다고 한다. “승환이 만나면 물어봐요. 웨이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피칭은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작년에 많이 배웠죠.” 오승환이 “오버페이스”를 조심하라는 걸 가장 강조했다고. “언제 나갈지 모르는데 컨디션 좋다고 몸을 100% 풀어놓거나 이런 걸 조심하라고 했어요. 웨이트도 무겁게 막 하는 것보다는 자주자주 가볍게 하라고. 제가 많이 배워요. 난 아직 배우는 입장이라 승환이 만나면 앞으로도 계속 물어볼 거예요.” 오승환은 멋진 세이브를 끝낸 뒤 포수 진갑용과 하늘을 찌르는 세리머니를 한다. “아직 1년차라 올 시즌 잘해내면 세리머니를 준비할 것”이라는 봉중근은 어떤 세리머니를 펼칠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어느날 갑자기 당신이 검찰에 불려 간다면?
■ 판사님, 그 짓의 위중함에 눈을 뜨시오
■ 현대차 ‘자살소재 광고’ 논란…공개사과
■ 부부는 하나라고? 오늘도 난 혼자 잔다
■ [논쟁] ‘젠틀맨’ 열풍, 문화 애국주의인가…당신의 생각은?
140~150㎞를 넘나드는
빠르고 묵직한 돌직구로 승부
‘라젠카, 세이브 어스’ 나오면
상대편서 “졌다” 탄식 터져 지난해 26세이브 기록하며
변신 성공한 2년차 마무리 봉중근
‘솔저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방수처럼 등장해
부족한 파워직구는 수비로 보완 “둥둥” 강력한 비트의 전자음이 울리면 대구야구장은 둘로 갈라진다. 원정팀 응원석은 “졌다”는 탄식이 흐르고, 안방팀에선 “이겼다”는 안도감에 분위기가 확 뜬다. 그룹 넥스트의 ‘라젠카, 세이브 어스’(라젠카, 우리를 구해줘) 음악과 함께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나이. 삼성의 한국시리즈 2년 연속 우승의 공신인 돌부처 오승환(31·삼성)이다. 팬 공모로 등판 배경음악이 된 노래 제목처럼 오승환은 국내 최고의 ‘세이버’(구원자)다. 오승환은 2005년 데뷔해 지난해까지 249세이브를 기록했고, 7일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250세이브 고지를 밟았다. 22일 현재 251세이브. 매 세이브 때마다 기록을 다시 쓴다. 향후 목표는 300세이브 돌파. 올 시즌에 이루려면 49세이브(22일 기준)가 필요하다. 2006년, 2011년 47세이브로 단일 시즌 아시아 최다를 기록했는데, 그때보다 2세이브를 더 해야 한다. 팀이 앞서 나가야 기회를 잡는 만큼 운도 따라야 한다. 오승환은 “블론 세이브(세이브 기회를 놓치는 것)를 하지 않고 300세이브까지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토종 클로저(마무리 투수)로 우뚝 선 오승환에 맞설 후보는 눈을 씻고 찾아도 쉽지 않다. 마무리 보직이 워낙 특화된 영역인데다,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주무기와 강력한 배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통 3점차 이내의 승부에서 마지막 1이닝을 소화하는 마무리가 ‘불을 지를 경우’ 다 잡았던 승리는 날아간다. 마무리 투수가 느끼는 심리적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삐끗했다간 ‘방화범’ ‘새가슴’ 등 팬들의 온갖 비난도 감내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엘지(LG)의 수호신으로 변신한 봉중근(33)은 그래서 “오승환과 나를 비교하지 말아달라”고 한다. 워낙 걸출한 오승환과의 비교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뜻이다. 하지만 선발에서 마무리로 보직을 바꾼 봉중근도 마무리로서 이름 석자를 각인시키고 있다. 지난해 26세이브에 평균자책점 1.18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변신을 했고, 올 시즌 본격적으로 마무리 보직을 맡은 뒤 에스케이(SK)와의 개막 2연전에서 세이브를 올리는 등 22일 현재 6세이브로 피치를 내고 있다. 봉중근이 뒷문을 책임지면서 엘지의 팀 전력이 안정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엘지는 2007~2011년 블론세이브 71개를 기록하는 등 10년 가까이 뒷문이 허술했다. 당시까지 8개 구단 중 가장 많은 숫자다. 프로구단마다 사정은 다르다. 올 시즌 투수력이 든든한 기아는 마무리 고민이 절실하지 않다. 두산이나 엔씨(NC), 한화는 딱히 마무리 투수로 꼽을 만한 선수는 드물다. 그러나 엘지로선 든든한 마무리가 가을야구를 보장하는 최고의 카드다. 봉중근은 이런 팀 전략을 수행해야 한다. 선발 경험에서 나오는 연륜과 마무리 투수에게 중요한 정신력에서 봉중근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있다. 봉중근의 등장 배경음악은 스스로 선택한 록그룹 드라우닝풀의 ‘솔저스’다. 비상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나타나 불을 끄는 소방수를 연상시킨다. 오승환의 목표는 300세이브 돌파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의 노무라 가쓰야 명예감독은 우승팀의 조건으로 “절대적인 마무리 투수의 존재”를 가장 먼저 꼽는다. 지난해 우승팀 삼성의 류중일 감독도 “현대 야구는 분업화되면서 불펜, 마무리가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선발이 5~6회까지 해결하면, 롱릴리프·쇼트릴리프라 불리는 중간계투진이 점수를 관리해주고, 셋업맨이 우세 상황을 정리해준 뒤 한 이닝 15개 안팎의 공을 던지는 마무리가 등장하는 방식이다. 에이스급 선발투수 자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자원을 최적으로 배분한 셈이다. 국내 프로야구의 경우 선발이 9회까지 책임지는 완투율이 1990년대 33.6%에서 2000년대 8%로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완투율은 5%였다. 메이저리그도 1950년대까지만 해도 완투율이 40%를 넘었지만, 2000년대 12%로 떨어졌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2번 이상 완투한 투수는 전체 30팀 중에서 33명에 불과하다. 오승환은 앞선 상황에 화룡점정을 해 승리를 밀봉할 주무기로 직구를 갖추고 있다. 슬라이더도 예리하지만 직구 구속이 시속 140㎞ 후반~150㎞ 중반이다. 비공식 기록으로는 159㎞를 찍은 적도 있다. 오승환의 공은 빠르면서 묵직한 점이 특징이다. 일명 ‘돌직구’라 불리는 그의 포심패스트볼을 타자들은 들어오는 것을 알면서도 못 친다. 2006 세계야구클래식(WBC)에서 오승환을 경험한 당시 미국 대표팀의 포수 마이클 배럿은 “한국의 마무리가 110마일(시속 176㎞)짜리 직구를 던지는 것 같다”며 엄청난 체감 속도를 고백한 바 있다. 돌 같은 직구에 이어 구속을 대폭 낮춘 슬라이더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은 뒤 다시 직구로 삼진을 잡는다. 배트에 맞아도 범타가 되기 일쑤다. 지난해 홈런왕인 넥센의 박병호는 “오승환의 공은 볼 끝의 힘이 좋다. 초속과 중속의 차이가 크지 않아 포수 미트까지 볼 끝이 살아 움직인다. 직구라는 걸 알면서도 치기가 쉽지 않고, 받아쳤을 때도 묵직하다”고 말했다. 견제 동작과 각 누(베이스) 백업 전환도 빠르다. 봉중근의 필살기도 직구와 수비 능력이다. 선발 출신의 봉중근은 직구뿐 아니라 커브, 체인지업 등 다종다양한 구질을 구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낼 수 있는 좌우 컨트롤이 정교하다. 넥센의 박병호는 “봉중근의 구속은 빠르지 않지만 변화구가 다양하고 예리하게 들어온다”고 말했다. 봉중근은 “선발투수로 5년간 던지면서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마무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직구, 커브, 체인지업 세개만 갖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낙 던지는 공의 절대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병기를 써야 하는 제약 조건 때문이다. 봉중근은 “역시 주무기로는 직구의 비율이 다른 공보다 훨씬 높다. 결정구라면 현재 직구다. 스피드를 떠나 마무리는 공격적으로 가는 게 좋다고 해서 공격적인 피칭으로 직구를 많이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봉중근은 파워직구에서 밀리는 약점을 “수비 능력과 주자 견제”에서 보완하고 있다. 왼손 투수이기 때문에 1루 주자의 베이스러닝을 지켜보고 있어 주자를 묶어놓는 능력이 탁월해 한점차 승부에서 유리하다는 평가다. 특히 발야구가 강조되는 올 시즌 봉중근의 가치는 부각된다. 봉중근은 “뛰는 야구가 대세일수록 나는 자신있다. 첫 타자를 살려 보내도 긴장하지 않고 번트나 도루를 안 주고 주자를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리를 높게 올려 견제하는 습관이나 제스처도 여러가지로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봉중근, 국내 최고의 주자 견제능력 차명석 엘지 투수코치는 “아무나 마무리 투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불펜에서 잘 던져 마무리로 내보내면 원래 던지던 공도 못 던지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차명석 코치는 “마지막에 마운드에 서는 압박감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야구 전문가들도 마무리 투수의 조건으로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을 가장 먼저 꼽는다. “자주 경기에 나서야 하고,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저돌적인 성격으로 타자를 밀어붙여 삼진이나 땅볼로 득점을 막아야 한다”는 것도 야구 전문서의 일반적인 결론이다. 오승환의 자신감은 어렸을 때부터 단련된 자기 관리에서 나온다. “내 공을 왜 못 치는 것 같냐고요? 글쎄, 전 잘 모르죠.” 웃음 섞인 말 속에 불굴의 집념이 숨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남보다 멀리 던지는 송구능력이 발견돼 야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옮긴 오승환은 어깨뿐 아니라 손아귀의 힘이 강하다. 김태한 삼성 투수코치는 “악력이 높으니 공의 회전수가 다르고 그러다 보니 볼 끝의 힘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악력을 높이기 위해 지금도 노력한다. 오승환은 “중학교 때부터 정구공을 주머니에 갖고 다니며 세 손가락으로 잡아 누르는 운동을 했다”고 한다. 시즌 때나 비시즌 때도 빼먹지 않고 손목 강화운동 등 웨이트를 하며 몸을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악력 테스트에서는 보통 레슬링 선수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야구공의 실밥 궤적 4곳에 걸쳐 공을 잡는 포심(four seam)의 초당 회전수는 최고 57바퀴로 국내 투수 중 1위다.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봉중근은 쫓아가는 입장이지만 여유가 있다. 차명석 엘지 투수코치는 “경험이 많고 큰 대회를 치렀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자기 실력을 충분히 낼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위기가 닥쳐도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마무리 지존인 오승환조차 “공 던지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 견제 능력과 타자와의 수싸움, 기복 없는 자기 피칭, 번트 수비 등 모든 면에서 마무리 투수로서 제격”이라고 높은 점수를 준다.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국내 투수 최고의 주자 견제능력을 갖추고 있다. 올 시즌 실점이나 자책점 관리에서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점수를 내주지 않는다. 엘지의 유산에는 과거 국내 최초로 200세이브를 기록했던 김용수의 전통도 있다. 봉중근은 “과거 엘지는 김용수, 이상훈 선배님의 이미지가 워낙 강했고, 그 이후로는 (마무리가) 없었다는 팬들의 실망감이 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확실한 마무리로 이미지를 굳힐 것이다. 소방수 김용수라고 항상 말하듯이 나도 그런 말 들을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장난 좋아하고 잘 웃는 오승환
“공 하나에 뒤집힐까 긴장돼”
마운드에 오르면 포커페이스
웃음·흥분 감추지 않는 봉중근
“‘괜찮아, 자신 있어’ 생각하며
상대편 두렵게 하는 게 재미” 승리의 조건은 ‘마무리 투수’
클로저 조건은 강심장과 인내
기본 조건 갖춘 두 사람의
마무리 경쟁이 기대된다 돌부처와 흥분남의 스타일은 어떻게 다른가 오승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는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돌부처 사진이 걸려 있다. 마운드에 서면 표정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뿐 그도 은근 재미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저 장난도 잘 치고, 엄청 잘 웃어요.” 그런 사람이 마운드에만 서면 표정을 잘도 감춘다. 타고난 포커페이스다. “저도 긴장해요. 1점차 상황이거나 1점차에 주자가 있는 타이트한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면 긴장되죠. 공 하나에 뒤집힐 수 있으니까. 특별히 어떤 생각을 하진 않지만, 굳이 떠올려보자면 ‘막아야겠다’는 생각은 당연한 거고, ‘저 타자를 내보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으로 던져요. 한 타자 한 타자 안 내보내다 보면 삼진이 되는 거고, 어느새 경기는 끝나는 거니까.” 말본새가 돌직구처럼 묵직하다. 오승환은 돌직구에 안주하지 않고,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 체인지업에 슬라이더도 배웠다. ‘마무리의 지존’으로 불리면서도 더 좋은 마무리 투수가 되려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한다. 지금도 새로운 구종을 테스트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김태한 투수코치는 “오승환도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려고 연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승환은 “몇년간 구질 개발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지금 던지는 직구와 슬라이더를 더 예리하게 던질 수 있어야 그 후에 다른 변화구에 도전할 수 있다”며 발톱을 숨겼다. 오승환은 “선발도 기회가 된다면 하고는 싶지만 어디까지 생각일 뿐이고 지금이 좋다”고 했다. 반면, 봉중근은 감정 표현에 솔직하다. 봉중근은 마운드에 서면 오히려 자신감이 생긴다고 한다. 무표정으로 감정을 숨기는 오승환과 달리 봉중근은 다 드러내며 포커페이스 한다. “오승환처럼 전혀 표정이 없는 게 좋죠. 타자들이 읽을 수 없으니까. 그러나 난 그런 성격이 아니라. 흥분하면 더 흥분한 모습을 보이는 게 더 도움이 돼요. 안타를 맞아도 ‘난 괜찮아. 견제 자신있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게 제겐 포커페이스예요. 웃기도 하고 야수들에게 일부러 얘기도 걸고 그런 제스처를 하면서 긴장을 풀게 되는 것 같아요. 9회에는 ‘아, 봉중근이 나오겠구나’ 하는 팬들에게 기대감을 주고, 상대편이 저를 두렵게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봉중근은 시즌 전 오승환과 세이브 경쟁을 하고 싶다고 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마무리 투수를 잡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따라가다 보면 오승환을 이기진 못하더라도 목표 이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라고 한다. 오승환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 뛰어난 투수가 그런 말을 한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둘의 마무리 경쟁에 올 시즌 야구가 더 재미있어질 거란 기대감이 나온다. 봉중근의 올 시즌 목표는 “30세이브와 믿음감”이다. 그런 “믿음감”은 오승환에게 본받고 싶다고 한다. “마운드에 서면 믿음을 주잖아요. 점수 줄 것 같은 느낌이 전혀 안 들잖아요. 오승환이 9회에 나오면 상대편에서 ‘아, 졌다’ 이런 느낌을 받게 하는 포스가 부러워요. 누구도 따라갈 수 없죠.” 오승환의 직구 구속도 부럽다. “솔직히 직구 구속을 높이려는 생각도 했어요. 마무리 피처인데 스피드가 많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나름 쑥스러울 때도 있어요. 오승환이나 손승락(넥센)이 부러울 때도 있고. 그러나 올해는 다행히 스피드가 나왔어요. 일부러 만든 것도 아니었는데 올해 처음 마무리로 풀타임을 뛴다는 마음가짐으로 던져서 그런지 힘이 났어요. 왼손 투수인데 (130㎞ 후반에서) 145~146㎞까지 나오니 자신감이 생겨요.” 쉬지 못하고 무작정 대기하는 괴로움 봉중근은 “야구도 쇼잖아요. 몸으로 보여주는 팬서비스. 팬이 먼저니까 선수들도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하고 서로 레이스하며 수준 높은 야구를 보여주겠다”고 하고, 오승환은 “마무리 투수가 많아지면서 9회말 역전이 줄어들면 팬들이 재미없어하지 않을까” 농을 친다. 두 사람의 즐거운 레이스를 올 시즌 끝까지 지켜보려면 구단의 관리도 절실하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마무리 투수는 대부분 단명했다. 혹사당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통산 601세이브를 기록한 밀워키 브루어스의 트레버 호프먼(1월 은퇴)은 한 경기 평균 1이닝 정도를 던졌다. 그가 40살을 넘겨서까지 투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절제되고 제한된 투구 이닝이다. 한국은 다르다. 1990년 구원부문 1위였던 송진우(한화)는 그해 50경기에 출장해 128이닝을 던졌다. 평균 투구 이닝 수는 2.55였다. 김용수(엘지)도 1998년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는 ‘노가다 피칭’을 했다. 당시는 대부분 선발을 하다 마무리가 되는 등 보직을 바꾸어 일이 더 많았을 터다. 오승환은 평균 투구 이닝 수가 1~2이닝 정도다. 데뷔 첫해를 제외하고 줄곧 마무리 투수로 9회에 등장했다. 팀에서 오승환을 마무리가 아닌 다른 경우에 등판시킨 적이 없다. 오승환은 그러나 “지금은 마무리 투수가 혹사당하는 일이 없다. 2, 3이닝 가는 경우가 거의 없는 등 좋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오승환이 그에 일조했다. 둘은 마무리 투수로서 가장 힘든 게 “없지만 굳이 꼽자면 대기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선발은 로테이션에 따라 등판날이 정해져 있지만, 마무리 투수는 언제 투입될지 몰라 경기를 지켜보며 타자를 분석하는 등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몸을 풀다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정신적인 부담이 크다. 봉중근은 “지난해 위염까지 걸릴 정도로 부담감이 크다. 뭘 먹으면 체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매 경기를 봐야 하고 언제 나갈지 모르고. 마음 놓고 풀로 쉴 수 있는 경기가 별로 없다.” 그래서 늘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심리적 안정을 취한다고 한다. 그는 “일종의 징크스다. 5회 스트레칭을 해야 하고, 10 대 0이어도 무조건 몸을 푼다. 6회에는 비타민을 먹고 7회에는 운동하고 아무리 속이 안 좋아도 커피를 마셔야 한다. 그런 게 서너가지 되는데 똑같이 하고 나야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오승환은 “야구가 끝날 때까진 경기 없는 월요일 빼고는 나갈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준비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한다. 예전에는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지만, 어느 순간 뛰어넘게 됐다. 프로니 그런 스트레스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조바심 갖고 경기를 지켜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마무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바로미터인 몸값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엿보인다. 2005년 2000만원으로 시작한 오승환의 올 시즌 연봉은 5억5000만원. 지난해 3억8000만원보다 1억7000만원(인상률 44.7%)이 많다. 2007년 구대성이 한화 시절 받은 6억3000만원보단 낮지만 현역 마무리 중에서는 최고 연봉이다. 투수 부문 전체를 따져도 올 시즌 6억원을 받은 김병현(넥센)에 이어 2위다. 봉중근은 지난 시즌과 같은 1억5000만원. 오승환은 “마무리 투수를 목표로 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시즌만 잘해도 고액 연봉자가 되는 선발 투수나 타자들에 견줘 홀대를 받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지만 오승환 때문에 마무리 투수의 가치가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둘은 대표팀도 함께 하면서 평소 친한 사이다. 지난해 마무리로 투입됐을 때 봉중근은 오승환에게 많이 물었다고 한다. “승환이 만나면 물어봐요. 웨이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피칭은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작년에 많이 배웠죠.” 오승환이 “오버페이스”를 조심하라는 걸 가장 강조했다고. “언제 나갈지 모르는데 컨디션 좋다고 몸을 100% 풀어놓거나 이런 걸 조심하라고 했어요. 웨이트도 무겁게 막 하는 것보다는 자주자주 가볍게 하라고. 제가 많이 배워요. 난 아직 배우는 입장이라 승환이 만나면 앞으로도 계속 물어볼 거예요.” 오승환은 멋진 세이브를 끝낸 뒤 포수 진갑용과 하늘을 찌르는 세리머니를 한다. “아직 1년차라 올 시즌 잘해내면 세리머니를 준비할 것”이라는 봉중근은 어떤 세리머니를 펼칠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 어느날 갑자기 당신이 검찰에 불려 간다면?
■ 판사님, 그 짓의 위중함에 눈을 뜨시오
■ 현대차 ‘자살소재 광고’ 논란…공개사과
■ 부부는 하나라고? 오늘도 난 혼자 잔다
■ [논쟁] ‘젠틀맨’ 열풍, 문화 애국주의인가…당신의 생각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