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의 편지]
네 할아버지의 야구사랑 덕에
초2때 선수생활을 시작했어
학교 훈련이 끝나면
집 옥상서 비닐하우스서 또 훈련
그리고 2년만에 주전 됐지만
야구가 좋을 수 있었겠니? 효린아, 안녕? 아빠야. 요즘 한창 앉아서 재롱 피우던데 아빠가 매일 못 봐서 아쉽네. 그래도 아빠가 효린이 얼굴 보면서 많이 힘내는 거 알지? 아빠는 요새 정말 미칠 정도로 야구를 잘하고 싶은데 잘 안 풀려서 조금 답답해. 밤에 잠도 잘 못 이룰 정도로. 주위에서 기대를 많이 하는데 거기에 부응을 못 해서 더 그런가봐. 정말 ‘야구’는 정답이 없는 스포츠 같아. 이제부터 우리 효린이에게 아빠 야구 얘기를 해줄게. 아무래도 첫 인연부터 얘기해야겠지? 초등학교 2학년 여름이었어. 집 근처 일봉초등학교를 다니는데 어느날 아빠의 아빠, 즉 할아버지가 나를 끌고 다른 초등학교로 가더구나. 집에서 걸어서 30분, 차로는 10분 남짓 걸리는 남산초등학교였어. 아빠 고향인 천안에서 유일하게 초등학교 야구부가 있던 곳이었지. 전학 간 첫날 교장 선생님을 뵀는데 제일 먼저 내 손을 보시더구나. “손이 크니까 야구 잘하겠다. 나중에 선동열 같은 훌륭한 야구 선수가 되거라” 하고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그때는 선동열이 누군지 몰랐어. 하하하. 그만큼 야구를 몰랐던 거지. 하긴 아홉 살짜리 꼬마애가 파워레인저나 알지 선동열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알았겠니. 그냥 ‘야구 잘하는 선수인가보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지. 할아버지가 왜 아빠한테 야구를 시켰느냐고? 아빠의 두 살 위 사촌형, 그러니까 삼촌 아저씨가 먼저 야구를 했어. 아마 할아버지가 친척 모임에 가실 때마다 삼촌 야구 얘기를 자주 들으셨고, 그게 많이 부러우셨나봐. 할아버지도 야구 엄청 좋아하셨거든. 나중에 효린이 크면 할아버지가 자주 야구장에 데리고 갈지도 몰라. 그런데 정작 사촌형은 중학교 때 기합받는 게 싫어서 야구를 그만뒀어. 아빠 야구 하게 해놓고 자기만 중간에 쏙 빠지고 치사하지? 아빤 처음에 야구가 너무 싫었어. 아홉 살이면 단체운동을 하기보다는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싶은 나이잖아. 야구는 보통 3~4학년 때 시작하거든. 나이가 너무 어리니까 주위 사람들이 배려는 많이 해줬어. 감독님이나 야구 같이 하는 형들이 아주 이뻐해줬지. 감독님은 거의 아빠 손을 붙잡고 돌아다니셨고 경기 때도 감독 옆 의자에 앉게 해주셨어. 그런데도 야구가 싫었어. 왜냐고? 다른 친구들을 보면 머리도 기르고 옷도 예쁘게 입고 자유롭게 운동장에서 뛰어노는데 아빠는 아니었거든. 운동선수니까 머리는 만날 짧게 자르고 옷도 야구 유니폼만 입고 운동장에서는 ‘야구’만 했으니까. 그래서 몇 번이고 연습하다가도 “야구 관둘 거예요!” 소리치고 집으로 도망쳐 왔지. 할아버지 앞에서 야구 안 한다고 떼쓰기도 하고 울기도 했는데 안 되더라. 집까지 찾아오신 감독님에게 이끌려 다시 운동장으로 갔지. 아빠가 야구를 잘해서 할아버지도, 감독님도 포기하기가 아까우셨나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빠 인생은 전부 ‘야구’였어. 학교 단체훈련이 끝나면 운동장에 남아 두 시간 정도 더 훈련했고, 집에 와서도 방망이 휘두르는 연습을 하고 그랬거든. 할아버지가 집 옥상에 천막을 쳐서 별도 간이야구장까지 만드셨단다. 아빠의 아빠지만 참 대단하시지? 덕분에 아빠는 저녁 먹고 옥상에 올라가서 매일 500개씩 스윙을 해야만 잘 수 있었어. 아빠 혼자 옥상에 올려보내 놓고 할아버지가 몰래 감시도 하셨고. ㅎㅎㅎ. 휴일에도 훈련이 계속됐어. 추운 겨울에는 밖에서 훈련을 못 하니까 천안 변두리에 손수 비닐하우스까지 지으셨다니까. 다른 애들보다 3배는 더 훈련한 것 같아. 아빤 겨우 초등학생이었는데. 이러니 야구가 좋았겠니?
그래도 그 덕분인지 5, 6학년 형들을 제치고 4학년 때부터 팀에서 주전으로 뛰었단다. 야구는 싫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주니 경기하는 재미는 있었던 것 같아. 아빠는 초등학교 때 1번 타자 겸 유격수였어. 초등학교는 보통 발이 빠른 선수보다는 잘 치는 선수들이 1번을 맡거든. 그래야 한 번이라도 더 타석에 서서 공격할 수 있으니까. 유격수라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이래 봬도 아빠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덩치가 많이 안 컸어. 그런데 5학년 때부터 엄청 먹었지. 문방구 앞 떡볶이와 튀김이 너무 맛있었거든. 요구르트 30개를 큰 그릇에 다 따라놓고 한꺼번에 마시기도 했고, 우유 1000㎖도 그냥 원샷하곤 했지. 보통 엄마들은 애가 뚱뚱해질까봐 못 먹게 한다는데 우리 엄마, 즉 할머니는 막내아들 운동하느라 힘들다고 마음껏 먹게 놔두셨단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158㎝였는데 몸무게는 70㎏까지 나갔지. 상상이 가니? 중학교 이후에는 운동량이 많아져서인지 1학년 때 163㎝ 60㎏, 2학년 때 172㎝ 68㎏, 3학년 때 177㎝ 72㎏이었단다. 고등학교 때 몸이 좋아져서 졸업할 때 즈음해서 182㎝ 78㎏이 되었어. 그래도 초등학교 6학년 때만큼은 아니었지. OTL... 지금 몸무게? 딱 보면 모르겠니?
초등학교 때 경기를 돌이켜보면, 최희섭 선배(KIA)와 이승호 선배(롯데)가 기억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 장충 리틀야구장에 갔는데, 광주 송정초등학교 왼손잡이 투수인데 공을 던지면 상대가 못 치고, 타석에 서면 홈런 아니면 삼진인 어마어마한 선수가 있다고 하는 거야. 전국 무대에서 ‘놀던’ 선수였던 게지. 그 선수가 희섭 아저씨였어. 군산 남초등학교에 다녔던 이승호 아저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투구 폼이 정말 똑같아. 공도 그때부터 빨랐지. 옛 생각을 떠올리니 참 새롭네.
아빠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 6학년 형들이 경기에 나가고 아빠는 후보 선수였지. 그런데 우익수를 보던 형이 손가락을 다친 거야. 1주일 후가 전국대회 지역예선전인데 말이지. 그래서 나한테도 기회가 오는가 싶어 긴장하고 정말 열심히 훈련했더랬지. 그런데 이게 웬걸. 경기 하루 전날 그 형이 떡하니 야구장에 나타난 거야. 공식경기에 처음 나갈까 싶어 엄청 기대했는데 무산되니까 힘이 쫙 빠지더구나. 며칠 동안 집에서 끙끙 앓아누웠어.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한 타석, 한 타석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단다. 그토록 원하고 원했던 것이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하는 거겠지? 다음에는 더 재미있는 아빠 야구 얘기 해줄게. 안녕~. 한화 이글스 4번 타자이자 효린이 아빠 김태균
정리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초2때 선수생활을 시작했어
학교 훈련이 끝나면
집 옥상서 비닐하우스서 또 훈련
그리고 2년만에 주전 됐지만
야구가 좋을 수 있었겠니? 효린아, 안녕? 아빠야. 요즘 한창 앉아서 재롱 피우던데 아빠가 매일 못 봐서 아쉽네. 그래도 아빠가 효린이 얼굴 보면서 많이 힘내는 거 알지? 아빠는 요새 정말 미칠 정도로 야구를 잘하고 싶은데 잘 안 풀려서 조금 답답해. 밤에 잠도 잘 못 이룰 정도로. 주위에서 기대를 많이 하는데 거기에 부응을 못 해서 더 그런가봐. 정말 ‘야구’는 정답이 없는 스포츠 같아. 이제부터 우리 효린이에게 아빠 야구 얘기를 해줄게. 아무래도 첫 인연부터 얘기해야겠지? 초등학교 2학년 여름이었어. 집 근처 일봉초등학교를 다니는데 어느날 아빠의 아빠, 즉 할아버지가 나를 끌고 다른 초등학교로 가더구나. 집에서 걸어서 30분, 차로는 10분 남짓 걸리는 남산초등학교였어. 아빠 고향인 천안에서 유일하게 초등학교 야구부가 있던 곳이었지. 전학 간 첫날 교장 선생님을 뵀는데 제일 먼저 내 손을 보시더구나. “손이 크니까 야구 잘하겠다. 나중에 선동열 같은 훌륭한 야구 선수가 되거라” 하고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그때는 선동열이 누군지 몰랐어. 하하하. 그만큼 야구를 몰랐던 거지. 하긴 아홉 살짜리 꼬마애가 파워레인저나 알지 선동열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알았겠니. 그냥 ‘야구 잘하는 선수인가보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지. 할아버지가 왜 아빠한테 야구를 시켰느냐고? 아빠의 두 살 위 사촌형, 그러니까 삼촌 아저씨가 먼저 야구를 했어. 아마 할아버지가 친척 모임에 가실 때마다 삼촌 야구 얘기를 자주 들으셨고, 그게 많이 부러우셨나봐. 할아버지도 야구 엄청 좋아하셨거든. 나중에 효린이 크면 할아버지가 자주 야구장에 데리고 갈지도 몰라. 그런데 정작 사촌형은 중학교 때 기합받는 게 싫어서 야구를 그만뒀어. 아빠 야구 하게 해놓고 자기만 중간에 쏙 빠지고 치사하지? 아빤 처음에 야구가 너무 싫었어. 아홉 살이면 단체운동을 하기보다는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싶은 나이잖아. 야구는 보통 3~4학년 때 시작하거든. 나이가 너무 어리니까 주위 사람들이 배려는 많이 해줬어. 감독님이나 야구 같이 하는 형들이 아주 이뻐해줬지. 감독님은 거의 아빠 손을 붙잡고 돌아다니셨고 경기 때도 감독 옆 의자에 앉게 해주셨어. 그런데도 야구가 싫었어. 왜냐고? 다른 친구들을 보면 머리도 기르고 옷도 예쁘게 입고 자유롭게 운동장에서 뛰어노는데 아빠는 아니었거든. 운동선수니까 머리는 만날 짧게 자르고 옷도 야구 유니폼만 입고 운동장에서는 ‘야구’만 했으니까. 그래서 몇 번이고 연습하다가도 “야구 관둘 거예요!” 소리치고 집으로 도망쳐 왔지. 할아버지 앞에서 야구 안 한다고 떼쓰기도 하고 울기도 했는데 안 되더라. 집까지 찾아오신 감독님에게 이끌려 다시 운동장으로 갔지. 아빠가 야구를 잘해서 할아버지도, 감독님도 포기하기가 아까우셨나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빠 인생은 전부 ‘야구’였어. 학교 단체훈련이 끝나면 운동장에 남아 두 시간 정도 더 훈련했고, 집에 와서도 방망이 휘두르는 연습을 하고 그랬거든. 할아버지가 집 옥상에 천막을 쳐서 별도 간이야구장까지 만드셨단다. 아빠의 아빠지만 참 대단하시지? 덕분에 아빠는 저녁 먹고 옥상에 올라가서 매일 500개씩 스윙을 해야만 잘 수 있었어. 아빠 혼자 옥상에 올려보내 놓고 할아버지가 몰래 감시도 하셨고. ㅎㅎㅎ. 휴일에도 훈련이 계속됐어. 추운 겨울에는 밖에서 훈련을 못 하니까 천안 변두리에 손수 비닐하우스까지 지으셨다니까. 다른 애들보다 3배는 더 훈련한 것 같아. 아빤 겨우 초등학생이었는데. 이러니 야구가 좋았겠니?
천안 남산초등학교 시절 지역대회에 나가 우승 트로피를 받는 김태균(오른쪽) 선수. 4학년 때부터 5, 6학년 형들을 제치고 주전으로 뛰었다. 김태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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