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0일 청주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삼성 라이온즈 경기에서 한화 김태균(왼쪽)과 삼성 이승엽(오른쪽)이 타격을 하고 있다. 청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승부 / 김태균 vs 이승엽
▶ 일부 프로야구 선수들은 까칠하다. ‘대스타’나 ‘반짝스타’일수록 심하다. 하지만 이승엽과 김태균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인간성까지 최고”라는 평가가 늘 뒤따른다. 20~22일 청주구장에서 둘이 한국 복귀 첫 방망이 맞대결을 벌였다. 주말 비 예보 때문에 20일 경기 승부에 초점을 맞췄다. 결과적으로 청주구장을 완전히 덮은 방수막 덕에 22일 ‘나홀로’ 경기를 펼쳐 둘의 동반 홈런이 터졌으나 원망은 안 하련다. 둘의 대결은 한동안 계속될 테니까.
■ 1회초 1사 1루. 이승엽 첫 타석
등번호 36번 이승엽은 초구를 노렸다. 한화 우완투수 안승민이 던진 공은 시속 140㎞ 바깥쪽 낮은 직구였다. 타구는 하늘 높게 긴 포물선을 그렸다. 하지만 담장을 넘어가기에는 조금 짧았다. 좌익수 연경흠이 뒤로 주춤주춤하면서 낚아챘다. 결정적인 힘의 세기가 부족했다. 이승엽이 한국 최초로 40홈런 시대를 연 장종훈(전 한화 이글스 35번)을 넘어서기 위해 프로 입단 후 36번을 달았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다. 이승엽은 원래 투수로 프로에 입단했다. 1993년 청룡기 때는 2학년인데도 혼자 3승을 책임지며 우수 투수상을 받았다. 세계 고교야구 선수권대회도 좌완투수로 참가했다. 입단 첫해 전지훈련지인 미국 플로리다주 비로비치(Vero Beach)에서 한동안 투수조에 속해 투구 훈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고교 때의 혹사로 어깨, 팔꿈치가 좋지 못했다. 당시 삼성 박승호 타격코치는 이승엽의 타격 소질을 알아보고 끈질기게 타자 전향을 권유했다. 그러나 이승엽은 “타자를 하기에는 달리기가 너무 느리다”며 한동안 박 코치를 피해 도망다녔다. 구단과 투수코치 또한 당시 왼손투수가 없는 삼성 마운드 사정상 “이승엽을 중간계투로 써야 한다”며 싫어했다. 하지만 박 코치는 틈나는 대로 이승엽을 방으로 불러서 “넌 할 수 있다”며 꼬드겼다. 현재 엔씨(NC) 다이노스 수석코치로 있는 박승호 코치는 “처음에는 한 달만 해보자고 하고, 다음에는 석 달만 더 해보자고 달랬다”며 “한번 마음먹고 열심히 하니까 타격 기술이 금방금방 늘었다”면서 웃었다. ■ 1회말 2사 주자 없음. 김태균 첫 타석
삼성 우완투수 브라이언 고든의 1, 2구를 그냥 흘려보냈다. 높은 코스의 직구로 때리기 좋은 공이었다. 3구는 1구와 비슷한 코스로 날아왔다. 시속 143㎞ 직구였다. 하지만 공 끝이 좋아 방망이가 밀렸다. 2루 땅볼이었다. 1루 더그아웃으로 향할 때 등번호 52번이 꽉 차 보였다. 김태균은 두 살 위 ‘사촌형’ 따라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 선수가 됐다. 젊은 시절 고교야구가 좋아서 동대문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한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정작 사촌형은 선배들에게 맞는 게 싫어 중학교 때 야구를 접었다. 김태균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었다. 충청도 씨름판을 평정했던 할아버지를 닮아 힘이 좋았고, 덩치도 2~3살 많은 형들과 비슷했다. 중학교 때는 포수를 봤다. 고등학교 때는 포지션이 겹쳐 3루수도 봤고, 우익수도 봤다. 그래도 항상 중심 타선에 있었다. 아버지 김종대씨는 “태균이는 어릴 때부터 신체 조건도 아주 좋았고 타격 소질이 꽤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4번 타자였고 중·고등학교 때도 대부분 4번 타자로 출전했다”고 밝혔다. 그의 등번호 52번도 아버지가 골라준 것이다. “태균이 골격이 워낙 크니까 1번이나 11번 같은 번호를 달면 등이 좀 허해 보였어요. 52번은 등에 새겼을 때 꽉 차 보이고 둥글둥글해서 복도 안 빠져나가는 숫자라서 권했지요.”
일본서 각각 8년, 2년
삼성 이승엽과 한화 김태균
한국프로야구 10번째 시즌같은 출발점에 섰다 외다리타법 이승엽은
아시아 최다홈런 기록 보유
김태균은 두다리를 짚고
정교한 타격을 하는 게 강점 ■ 2회초 2사 주자 없음. 이승엽 두번째 타석
1, 2구 직구가 모두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이었다. 볼카운트(0-2)상 노려볼 만했다. 3구는 한복판으로 날아든 시속 132㎞의 슬라이더. 예의 왼다리로 무게중심을 잡고 오른다리를 내디디면서 방망이를 휘두르는 외다리타법으로 방망이를 휘둘렀다. 우전 안타로 이어졌다. 이승엽은 1996년 여름 올스타 휴식기 동안 잠깐 삼성 인스트럭터로 와 있던 왕정치(일본명 오 사다하루) 현 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의 스승으로부터 외다리타법을 전수받았다. 왕정치 회장은 외다리타법으로 세계 최다 홈런(통산 868개)을 쏘아올린 일본 야구의 전설이다. 1997년 전지훈련 동안 백인천 당시 삼성 감독, 박흥식 타격코치의 도움을 받아 제 것으로 만들어갔고, 그해부터 30개 이상의 홈런을 쏘아올리기 시작했다. 박흥식 현 넥센 타격코치는 “처음 이승엽을 봤을 때는 상당히 교타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방망이를 길게 잡고 외다리타법으로 바꾸면서 장거리 타자로 변모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승엽은 부드럽고 유연한 허리를 이용한 원심력으로 타격할 때 방망이 끝에 힘을 실을 줄 안다. 배트 스피드나 손목 힘도 탁월하다”고 했다. 김태균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도 이 점이다. 김태균은 “승엽이 형은 타격 순간 방망이에 모든 힘을 전달할 줄 안다.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실어 공을 넘기는 게 대단하다”고 했다. 외다리타법은 이승엽에게 한 시즌 아시아 최다 홈런(56개·2003년)의 영광을 안겼다. 그러나 단점이 있다. 몸쪽 공과 변화구이다. 변화구 제구가 좋은 투수가 많은 일본에서도 한동안 고생했다. 박 코치는 “외다리타법은 타격 밸런스가 흐트러지면 중심 이동을 할 때 변화구에 상당히 약해진다. 이 때문에 승엽이도 공이 안 맞으면 다리를 안 들기도 하고, 스스로 응용력을 키워 타격 자세를 바꾸기도 하면서 어려운 상황을 뚫어왔다”고 했다.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몸쪽 공이 약하면 그냥 다른 공을 노리고 치면 된다. 몸쪽 공은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 4회초 1사 2루. 이승엽 세번째 타석
투수는 왼손투수 마일영으로 바뀌었다. 볼카운트 2-0. 관중석에서 “3구 삼진! 3구 삼진” 구호가 터져 나왔다. 3구는 2구와 비슷한 코스의 슬라이더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더 가운데로 몰렸다. 이승엽은 방망이를 툭 갖다댔다. 빗맞은 듯한 타구는 큰 포물선을 그리면서 가운데 담장 끝까지 날아갔다. 중월 2루타였다. 지켜보던 홍보 관계자는 “옛날 같으면 넘어갔을 공인데…”라며 아쉬움을 토해냈다. ■ 4회말 1사 주자 없음. 김태균 두번째 타석
첫 맞대결에서 직구로 김태균을 몰아세운 고든은 두번째 대결에서 변화구만 던졌다. 1, 2구 모두 커브였다. 3구도 커브를 던졌지만 한가운데로 몰렸다. ‘땅’ 하는 파열음과 함께 타구는 라인드라이브성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라운드를 한번 퉁기고 담장을 맞혔다. 2루타성 타구였지만 김태균은 1루밖에 가지 못했다. 110㎏을 넘나드는 육중한 체구의 비애였다. 다음 타자 연경흠의 팀 복귀 첫 홈런(연경흠은 작년까지 경찰청 소속으로 2년 동안 군 복무를 했다)으로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한국 복귀 첫 득점. 이승엽과 김태균은 4회초·4회말 비슷한 코스로 타구를 보냈다. 하지만 궤적은 달랐다. 이승엽의 타구는 높게 뜬 상태로 뻗어갔고, 김태균의 타구는 총알처럼 직선타로 쭉쭉 날아갔다. 둘의 타격 방법 차이가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이효봉 <엑스티엠>(XTM) 해설위원은 “이승엽은 전형적인 거포지만 김태균은 안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공이 뜨면 홈런이 된다”고 분석했다. ■ 5회말 2사 1·2루. 김태균 세번째 타석
고든의 컷패스트볼은 계속 위력을 더했다. 2-6까지 한화가 따라간 상황. 김태균의 ‘한방’이 필요했다. 볼카운트 2-1. 고든의 4구째 바깥쪽 꽉 찬 시속 145㎞ 직구에 방망이가 허공을 갈랐다. 헛스윙 삼진이었다. 2000년 한화의 남해 가을 캠프였다. 천안북일고 졸업예정자로 한화에 1차 지명돼 캠프에 참가한 김태균은 19타석에서 삼진만 14차례 당했다. 안타는 2개에 불과했다. 당시 타격코치였던 이정훈 현 천안북일고 감독은 “프로 선수들의 변화구를 상대하면서도 타격 밸런스가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로 풀스윙을 하면서 삼진을 당하더라. 그때 ‘저놈 참 키워볼 만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김태균은 신인 시절 뒤늦게 1군에 올라왔지만 짧은 기간 20개 홈런을 쳐내면서 시즌 풀타임을 소화한 박한이(삼성)를 제치고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이정훈 감독은 “신인 시절 김태균의 별명은 ‘단수 8단’이었다. 겉보기에는 ‘만만디’ 같은 스타일인데 내면적으로는 야구에 대한 집념이나 욕심이 많은 선수였다”고 말했다. 김태균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이어온 타격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타격할 때 몸을 앞으로 살짝 이동했다가 뒤로 중심 이동을 할 때는 왼쪽 발을 찍어놓고 공을 기다린다. 이런 타격폼은 투수의 공을 끝까지 길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태균이 홈런을 많이 치면서도 삼진이 적은 이유다. 이정훈 감독은 “태균이는 모든 공을 때려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신인 시절에는 도저히 칠 수 없는 바깥쪽 낮은 공을 쳐서 폴대를 맞히는 홈런도 쳤다”고 했다. 이승엽이 김태균의 최대 장점으로 꼽은 것도 하체 밸런스다. 이승엽은 “태균이는 타격폼에 안정감이 있다. 하체 밸런스가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다. 통산 삼진 수를 비교하면, 이승엽은 6.1타석에 한 번꼴로, 김태균은 5.6타석에 한 번꼴로 삼진을 당했다. ■ 클리닝 타임(5회말 직후 휴식시간)
이승엽과 김태균이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한솥밥을 먹은 것은 2006년 세계야구클래식(WBC)이 유일하다. 이승엽은 3번 타자로 선발 출전하며 7경기 24타수 8안타(타율 0.333) 5홈런 10타점으로 맹활약했다. 홈런왕, 타점왕도 거머쥐었다. 한국은 4강에 올랐다. 하지만 김태균은 미국전에만 선발로 나섰을 뿐 주로 대타로만 출전했다. 김태균은 이승엽이 참가하지 않은 2009년 세계야구클래식에서 ‘대표팀 4번 타자’로 스스로를 증명해 보였다. 9경기 29타수 11안타(타율 0.345) 3홈런 11타점을 올렸다. 이승엽과 똑같이 대회 홈런왕, 타점왕이 됐다. 한국은 준우승을 했다. 1, 2회 대회 모두 대표팀 감독을 지낸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칙위원장은 “이승엽이나 김태균 모두 대표팀 동료들과 잘 어울리고, 맡은 바 역할을 잘 해내는 선수였다”고 기억했다. 2013년 3회 세계야구클래식이 열린다. 이승엽이나 김태균 모두 참가 욕심이 있다. 이승엽은 “대표팀에 뽑힌다는 것은 ‘실력이 된다’는 의미가 된다. 생각만 해도 떨린다”고 했다. 김태균은 “승엽이 형은 한국 최고 타자다. 대표팀 중심 타자 역시 승엽이 형 몫”이라며 “둘 다 잘하면 당연히 우승하지 않겠느냐”는 각오를 드러냈다. ■ 6회초 2사 주자 없음. 이승엽 네번째 타석
앞선 타자 박석민이 장외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흔들린 한화의 세번째 투수 송창식은 1, 2구 연속 볼을 던졌다. 3구는 스트라이크존으로 올 것이 뻔했다. 수싸움에 능한 이승엽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시속 134㎞ 포크볼이 가운데로 날아오자 방망이를 휘둘렀다. 타구는 오른쪽으로 쭉쭉 뻗어갔으나 우익수 강동우에게 잡혔다. 20일 현재 이승엽의 타구 방향을 분석하면, 14개 안타(홈런 포함) 중 10개가 오른쪽으로 날아갔다. 홈런도 모두 당겨쳐서 나온 우월 홈런이었다. 김정준 <에스비에스 이에스피엔>(SBS ESPN) 해설위원은 “지금 이승엽은 타격할 때 보면 예전처럼 공을 찍어치는 게 아니라 올려치는 듯한 느낌”이라며 “공의 회전이 덜 생기고 있다. 지금은 당겨치기로밖에 장타가 나오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승엽은 현재 900g의 방망이를 쓴다. 지난해까지는 920~930g 방망이를 사용했다. 2003년까지 국내에서 뛸 때는 960g 무게의 방망이를 쓰고는 했다. 일반적으로 홈런은 방망이 무게에 스윙 스피드가 더해져서 나온다. 이승엽은 “방망이 무게를 줄인 대신 스윙 스피드에 더 신경쓰겠다”고 했다.
“태균이는 타격폼 좋아
하체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죠”
“승엽이 형은 방망이가 폭발적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요” 올시즌 장타에 목마른 김태균
밀어치기가 약해진 이승엽
전문가들은 둘 모두
20~30개 홈런을 예측한다 ■ 7회말 1사 1·2루. 김태균 네번째 타석
삼성 좌완투수 권혁은 빠른 공으로 승부했다. 1구(몸쪽), 2구(몸쪽), 3구(바깥쪽) 연속 직구로 윽박질렀다. 볼카운트 2-1에서 4구는 시속 134㎞ 슬라이더였다. 김태균 몸쪽으로 좀더 붙였어야 하는데 가운데로 몰렸다. 김태균의 방망이가 돌아갔고 우익수 우동균의 글러브로 들어갔다. 김태균의 현재 방망이 무게는 1㎏이다. 꽤 무거운 방망이를 휘두른다. 원래 시즌이 되면 방망이 무게를 낮추려고 했다. 하지만 타율 5할을 넘나들 정도로 타격감이 좋아서 굳이 바꾸지 않고 있다. 김정준 해설위원은 “투수들이 김태균과 상대하면서 몸쪽 승부를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몸쪽 공도 힘으로 밀고 나오면서 버티고 있다. 타격감이 좋다는 얘기”라며 “히팅 포인트를 조금 더 앞에 두고 치면 장타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고 조언했다. 김태균은 “팀 분위기상 홈런을 쳐야 할 것도 같은데 홈런 욕심은 그다지 많지 않다.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리다 보면 저절로 홈런이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태균은 국내 9시즌 동안 평균 20.89개(최다 31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이승엽의 9시즌 평균 홈런수는 36개(최다 56개)였다. ■ 9회초 무사 1루. 이승엽 다섯번째 타석
고졸 신인 오른손투수 최우석은 데이터를 충실히 따라갔다. 공 6개 중 3개가 몸쪽 낮은 공이었다. 5구는 이승엽의 몸쪽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였다. 볼카운트 2-3. 최우석은 또다시 같은 코스로 공을 던졌다. 직구를 예상했던 듯 이승엽의 방망이는 헛돌았다. 이승엽은 4구째 시속 130㎞ 슬라이더에도 헛스윙을 했었다. ■ 9회말 2사 1루. 김태균 다섯번째 타석
초구부터 방망이가 나갔다. 한복판으로 몰린 직구를 놓칠 리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오른쪽 폴대를 살짝 벗어났다. 이후 삼성 우완투수 정현욱은 계속 몸쪽 공으로 승부했다. 스트라이크존에서 공 반 개 정도 빠지는 코스였으나 김태균은 속지 않았다. 대형 파울 이후 공 4개를 잘 골라낸 김태균은 볼넷으로 출루했다. 김태균은 통산 출루율에서 역대 3위(0.411·3500타석 이상 선수 대상)에 올라 있다. 이승엽은 공동 5위(0.407). 한국 복귀 첫 맞대결 성적은 이승엽 5타수 2안타(2루타 1개) 1삼진, 김태균 4타수 1안타 1득점 1볼넷 1삼진. 이승엽은 국내 통산 1300안타(역대 34번째)도 이날 채웠다. 삼성의 9-4 승리. 삼성은 4연패에서 벗어났고, 한화는 4연패에 빠졌다. 이승엽과 김태균은 22일 두번째 맞대결에서 나란히 홈런을 기록했다. 김태균이 8회말 추격의 홈런포(시즌 1호)를 쏘아올리자, 곧바로 이승엽이 9회초 쐐기 홈런포(시즌 3호)를 터뜨렸다. 통산 최다 홈런(351개)을 향해 나아가는 이승엽은 “태균이와 상관없이 난 내 갈 길을 갈 뿐”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폰 메시지창에 ‘4할’ 문구를 올려놓은 김태균은 “승엽이 형과 나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통산 홈런수 등에서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고 강조한다. 그래도 둘이 함께 현역으로 뛰는 한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야구 전문가들은 두 선수 모두 올 시즌 20~30개 홈런을 때려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승엽과 김태균은 5월4일부터 6일까지 대구에서 시즌 두번째 맞대결을 벌인다. 청주/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내 인생 최고 홈런은 가족”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이승엽(36·삼성)도, 김태균(30·한화)도 경기장 밖에서는 ‘아버지’로 돌아간다. 이승엽은 은혁(2005년), 은엽(2011년) 두 아들이 태어날 때 직접 탯줄을 잘랐다. 그 순간이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까지 흘렸단다. 이승엽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순간은 정말 감동의 도가니였다. 가족을 일군 것이 내 인생의 최고 홈런”이라고 했다. 그의 1루수 글러브 안쪽에는 두 아들의 이름이 색실로 곱게 새겨져 있다. 그가 일본에서 복귀한 첫째 이유도, 아이들에게 ‘국민타자 이승엽’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두 아이는 이승엽이 한국에서 뛰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1 시즌 중반 국내로 돌아오기로 했을 때는 아내 이송정씨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다. “처음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아내가 반대했다.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그런데 나중에 최종 복귀 결심을 했을 때는 아내가 정말 좋아했다. ‘처음에 왜 반대했느냐’ 물었더니 내 결정에 누가 될까 속마음을 숨겼다고 하더라. 그때 ‘아내가 속이 참 깊구나’ 싶었다.” 김태균은 지난해 10월 첫딸 효린이를 얻었다. “아이가 다칠까봐서” 탯줄을 직접 자르지는 못했다. 효린이와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부터 한눈에 반했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어떻게 태어났을까’ 신기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나를 많이 닮아서 속상했는데, 100일 전후로 엄마(김석류 전 KBS 아나운서) 얼굴이 나오고 있다. 보고 또 봐도 계속 보고 싶다.” 김태균은 아이 욕심이 참 많다. “힘 닿는 데까지” 다섯쯤 낳고 싶단다. 하지만 스포츠 아나운서 출신 김석류씨는 “셋만 낳자”고 한단다. 김석류씨는 김태균이 시즌 초반 홈런이 안 터지자 직접 김태균의 홈런 동영상을 편집해주는 등 살뜰하게 남편을 내조하고 있다. 김태균은 “올해는 아내와 딸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가족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양희 기자
등번호 36번 이승엽은 초구를 노렸다. 한화 우완투수 안승민이 던진 공은 시속 140㎞ 바깥쪽 낮은 직구였다. 타구는 하늘 높게 긴 포물선을 그렸다. 하지만 담장을 넘어가기에는 조금 짧았다. 좌익수 연경흠이 뒤로 주춤주춤하면서 낚아챘다. 결정적인 힘의 세기가 부족했다. 이승엽이 한국 최초로 40홈런 시대를 연 장종훈(전 한화 이글스 35번)을 넘어서기 위해 프로 입단 후 36번을 달았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다. 이승엽은 원래 투수로 프로에 입단했다. 1993년 청룡기 때는 2학년인데도 혼자 3승을 책임지며 우수 투수상을 받았다. 세계 고교야구 선수권대회도 좌완투수로 참가했다. 입단 첫해 전지훈련지인 미국 플로리다주 비로비치(Vero Beach)에서 한동안 투수조에 속해 투구 훈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고교 때의 혹사로 어깨, 팔꿈치가 좋지 못했다. 당시 삼성 박승호 타격코치는 이승엽의 타격 소질을 알아보고 끈질기게 타자 전향을 권유했다. 그러나 이승엽은 “타자를 하기에는 달리기가 너무 느리다”며 한동안 박 코치를 피해 도망다녔다. 구단과 투수코치 또한 당시 왼손투수가 없는 삼성 마운드 사정상 “이승엽을 중간계투로 써야 한다”며 싫어했다. 하지만 박 코치는 틈나는 대로 이승엽을 방으로 불러서 “넌 할 수 있다”며 꼬드겼다. 현재 엔씨(NC) 다이노스 수석코치로 있는 박승호 코치는 “처음에는 한 달만 해보자고 하고, 다음에는 석 달만 더 해보자고 달랬다”며 “한번 마음먹고 열심히 하니까 타격 기술이 금방금방 늘었다”면서 웃었다. ■ 1회말 2사 주자 없음. 김태균 첫 타석
삼성 우완투수 브라이언 고든의 1, 2구를 그냥 흘려보냈다. 높은 코스의 직구로 때리기 좋은 공이었다. 3구는 1구와 비슷한 코스로 날아왔다. 시속 143㎞ 직구였다. 하지만 공 끝이 좋아 방망이가 밀렸다. 2루 땅볼이었다. 1루 더그아웃으로 향할 때 등번호 52번이 꽉 차 보였다. 김태균은 두 살 위 ‘사촌형’ 따라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 선수가 됐다. 젊은 시절 고교야구가 좋아서 동대문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한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정작 사촌형은 선배들에게 맞는 게 싫어 중학교 때 야구를 접었다. 김태균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었다. 충청도 씨름판을 평정했던 할아버지를 닮아 힘이 좋았고, 덩치도 2~3살 많은 형들과 비슷했다. 중학교 때는 포수를 봤다. 고등학교 때는 포지션이 겹쳐 3루수도 봤고, 우익수도 봤다. 그래도 항상 중심 타선에 있었다. 아버지 김종대씨는 “태균이는 어릴 때부터 신체 조건도 아주 좋았고 타격 소질이 꽤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4번 타자였고 중·고등학교 때도 대부분 4번 타자로 출전했다”고 밝혔다. 그의 등번호 52번도 아버지가 골라준 것이다. “태균이 골격이 워낙 크니까 1번이나 11번 같은 번호를 달면 등이 좀 허해 보였어요. 52번은 등에 새겼을 때 꽉 차 보이고 둥글둥글해서 복도 안 빠져나가는 숫자라서 권했지요.”
삼성 이승엽과 한화 김태균
한국프로야구 10번째 시즌같은 출발점에 섰다 외다리타법 이승엽은
아시아 최다홈런 기록 보유
김태균은 두다리를 짚고
정교한 타격을 하는 게 강점 ■ 2회초 2사 주자 없음. 이승엽 두번째 타석
1, 2구 직구가 모두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이었다. 볼카운트(0-2)상 노려볼 만했다. 3구는 한복판으로 날아든 시속 132㎞의 슬라이더. 예의 왼다리로 무게중심을 잡고 오른다리를 내디디면서 방망이를 휘두르는 외다리타법으로 방망이를 휘둘렀다. 우전 안타로 이어졌다. 이승엽은 1996년 여름 올스타 휴식기 동안 잠깐 삼성 인스트럭터로 와 있던 왕정치(일본명 오 사다하루) 현 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의 스승으로부터 외다리타법을 전수받았다. 왕정치 회장은 외다리타법으로 세계 최다 홈런(통산 868개)을 쏘아올린 일본 야구의 전설이다. 1997년 전지훈련 동안 백인천 당시 삼성 감독, 박흥식 타격코치의 도움을 받아 제 것으로 만들어갔고, 그해부터 30개 이상의 홈런을 쏘아올리기 시작했다. 박흥식 현 넥센 타격코치는 “처음 이승엽을 봤을 때는 상당히 교타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방망이를 길게 잡고 외다리타법으로 바꾸면서 장거리 타자로 변모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승엽은 부드럽고 유연한 허리를 이용한 원심력으로 타격할 때 방망이 끝에 힘을 실을 줄 안다. 배트 스피드나 손목 힘도 탁월하다”고 했다. 김태균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도 이 점이다. 김태균은 “승엽이 형은 타격 순간 방망이에 모든 힘을 전달할 줄 안다.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실어 공을 넘기는 게 대단하다”고 했다. 외다리타법은 이승엽에게 한 시즌 아시아 최다 홈런(56개·2003년)의 영광을 안겼다. 그러나 단점이 있다. 몸쪽 공과 변화구이다. 변화구 제구가 좋은 투수가 많은 일본에서도 한동안 고생했다. 박 코치는 “외다리타법은 타격 밸런스가 흐트러지면 중심 이동을 할 때 변화구에 상당히 약해진다. 이 때문에 승엽이도 공이 안 맞으면 다리를 안 들기도 하고, 스스로 응용력을 키워 타격 자세를 바꾸기도 하면서 어려운 상황을 뚫어왔다”고 했다.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몸쪽 공이 약하면 그냥 다른 공을 노리고 치면 된다. 몸쪽 공은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 4회초 1사 2루. 이승엽 세번째 타석
투수는 왼손투수 마일영으로 바뀌었다. 볼카운트 2-0. 관중석에서 “3구 삼진! 3구 삼진” 구호가 터져 나왔다. 3구는 2구와 비슷한 코스의 슬라이더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더 가운데로 몰렸다. 이승엽은 방망이를 툭 갖다댔다. 빗맞은 듯한 타구는 큰 포물선을 그리면서 가운데 담장 끝까지 날아갔다. 중월 2루타였다. 지켜보던 홍보 관계자는 “옛날 같으면 넘어갔을 공인데…”라며 아쉬움을 토해냈다. ■ 4회말 1사 주자 없음. 김태균 두번째 타석
첫 맞대결에서 직구로 김태균을 몰아세운 고든은 두번째 대결에서 변화구만 던졌다. 1, 2구 모두 커브였다. 3구도 커브를 던졌지만 한가운데로 몰렸다. ‘땅’ 하는 파열음과 함께 타구는 라인드라이브성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라운드를 한번 퉁기고 담장을 맞혔다. 2루타성 타구였지만 김태균은 1루밖에 가지 못했다. 110㎏을 넘나드는 육중한 체구의 비애였다. 다음 타자 연경흠의 팀 복귀 첫 홈런(연경흠은 작년까지 경찰청 소속으로 2년 동안 군 복무를 했다)으로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한국 복귀 첫 득점. 이승엽과 김태균은 4회초·4회말 비슷한 코스로 타구를 보냈다. 하지만 궤적은 달랐다. 이승엽의 타구는 높게 뜬 상태로 뻗어갔고, 김태균의 타구는 총알처럼 직선타로 쭉쭉 날아갔다. 둘의 타격 방법 차이가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이효봉 <엑스티엠>(XTM) 해설위원은 “이승엽은 전형적인 거포지만 김태균은 안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공이 뜨면 홈런이 된다”고 분석했다. ■ 5회말 2사 1·2루. 김태균 세번째 타석
고든의 컷패스트볼은 계속 위력을 더했다. 2-6까지 한화가 따라간 상황. 김태균의 ‘한방’이 필요했다. 볼카운트 2-1. 고든의 4구째 바깥쪽 꽉 찬 시속 145㎞ 직구에 방망이가 허공을 갈랐다. 헛스윙 삼진이었다. 2000년 한화의 남해 가을 캠프였다. 천안북일고 졸업예정자로 한화에 1차 지명돼 캠프에 참가한 김태균은 19타석에서 삼진만 14차례 당했다. 안타는 2개에 불과했다. 당시 타격코치였던 이정훈 현 천안북일고 감독은 “프로 선수들의 변화구를 상대하면서도 타격 밸런스가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로 풀스윙을 하면서 삼진을 당하더라. 그때 ‘저놈 참 키워볼 만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김태균은 신인 시절 뒤늦게 1군에 올라왔지만 짧은 기간 20개 홈런을 쳐내면서 시즌 풀타임을 소화한 박한이(삼성)를 제치고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이정훈 감독은 “신인 시절 김태균의 별명은 ‘단수 8단’이었다. 겉보기에는 ‘만만디’ 같은 스타일인데 내면적으로는 야구에 대한 집념이나 욕심이 많은 선수였다”고 말했다. 김태균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이어온 타격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타격할 때 몸을 앞으로 살짝 이동했다가 뒤로 중심 이동을 할 때는 왼쪽 발을 찍어놓고 공을 기다린다. 이런 타격폼은 투수의 공을 끝까지 길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태균이 홈런을 많이 치면서도 삼진이 적은 이유다. 이정훈 감독은 “태균이는 모든 공을 때려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신인 시절에는 도저히 칠 수 없는 바깥쪽 낮은 공을 쳐서 폴대를 맞히는 홈런도 쳤다”고 했다. 이승엽이 김태균의 최대 장점으로 꼽은 것도 하체 밸런스다. 이승엽은 “태균이는 타격폼에 안정감이 있다. 하체 밸런스가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다. 통산 삼진 수를 비교하면, 이승엽은 6.1타석에 한 번꼴로, 김태균은 5.6타석에 한 번꼴로 삼진을 당했다. ■ 클리닝 타임(5회말 직후 휴식시간)
이승엽과 김태균이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한솥밥을 먹은 것은 2006년 세계야구클래식(WBC)이 유일하다. 이승엽은 3번 타자로 선발 출전하며 7경기 24타수 8안타(타율 0.333) 5홈런 10타점으로 맹활약했다. 홈런왕, 타점왕도 거머쥐었다. 한국은 4강에 올랐다. 하지만 김태균은 미국전에만 선발로 나섰을 뿐 주로 대타로만 출전했다. 김태균은 이승엽이 참가하지 않은 2009년 세계야구클래식에서 ‘대표팀 4번 타자’로 스스로를 증명해 보였다. 9경기 29타수 11안타(타율 0.345) 3홈런 11타점을 올렸다. 이승엽과 똑같이 대회 홈런왕, 타점왕이 됐다. 한국은 준우승을 했다. 1, 2회 대회 모두 대표팀 감독을 지낸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칙위원장은 “이승엽이나 김태균 모두 대표팀 동료들과 잘 어울리고, 맡은 바 역할을 잘 해내는 선수였다”고 기억했다. 2013년 3회 세계야구클래식이 열린다. 이승엽이나 김태균 모두 참가 욕심이 있다. 이승엽은 “대표팀에 뽑힌다는 것은 ‘실력이 된다’는 의미가 된다. 생각만 해도 떨린다”고 했다. 김태균은 “승엽이 형은 한국 최고 타자다. 대표팀 중심 타자 역시 승엽이 형 몫”이라며 “둘 다 잘하면 당연히 우승하지 않겠느냐”는 각오를 드러냈다. ■ 6회초 2사 주자 없음. 이승엽 네번째 타석
앞선 타자 박석민이 장외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흔들린 한화의 세번째 투수 송창식은 1, 2구 연속 볼을 던졌다. 3구는 스트라이크존으로 올 것이 뻔했다. 수싸움에 능한 이승엽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시속 134㎞ 포크볼이 가운데로 날아오자 방망이를 휘둘렀다. 타구는 오른쪽으로 쭉쭉 뻗어갔으나 우익수 강동우에게 잡혔다. 20일 현재 이승엽의 타구 방향을 분석하면, 14개 안타(홈런 포함) 중 10개가 오른쪽으로 날아갔다. 홈런도 모두 당겨쳐서 나온 우월 홈런이었다. 김정준 <에스비에스 이에스피엔>(SBS ESPN) 해설위원은 “지금 이승엽은 타격할 때 보면 예전처럼 공을 찍어치는 게 아니라 올려치는 듯한 느낌”이라며 “공의 회전이 덜 생기고 있다. 지금은 당겨치기로밖에 장타가 나오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승엽은 현재 900g의 방망이를 쓴다. 지난해까지는 920~930g 방망이를 사용했다. 2003년까지 국내에서 뛸 때는 960g 무게의 방망이를 쓰고는 했다. 일반적으로 홈런은 방망이 무게에 스윙 스피드가 더해져서 나온다. 이승엽은 “방망이 무게를 줄인 대신 스윙 스피드에 더 신경쓰겠다”고 했다.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오른쪽)이 20일 청주야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경기에서 안타를 치고 나가 1루에서 한화 김태균(왼쪽)과 함께 서 있다. 청주/강재훈 선임기자
하체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죠”
“승엽이 형은 방망이가 폭발적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요” 올시즌 장타에 목마른 김태균
밀어치기가 약해진 이승엽
전문가들은 둘 모두
20~30개 홈런을 예측한다 ■ 7회말 1사 1·2루. 김태균 네번째 타석
삼성 좌완투수 권혁은 빠른 공으로 승부했다. 1구(몸쪽), 2구(몸쪽), 3구(바깥쪽) 연속 직구로 윽박질렀다. 볼카운트 2-1에서 4구는 시속 134㎞ 슬라이더였다. 김태균 몸쪽으로 좀더 붙였어야 하는데 가운데로 몰렸다. 김태균의 방망이가 돌아갔고 우익수 우동균의 글러브로 들어갔다. 김태균의 현재 방망이 무게는 1㎏이다. 꽤 무거운 방망이를 휘두른다. 원래 시즌이 되면 방망이 무게를 낮추려고 했다. 하지만 타율 5할을 넘나들 정도로 타격감이 좋아서 굳이 바꾸지 않고 있다. 김정준 해설위원은 “투수들이 김태균과 상대하면서 몸쪽 승부를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몸쪽 공도 힘으로 밀고 나오면서 버티고 있다. 타격감이 좋다는 얘기”라며 “히팅 포인트를 조금 더 앞에 두고 치면 장타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고 조언했다. 김태균은 “팀 분위기상 홈런을 쳐야 할 것도 같은데 홈런 욕심은 그다지 많지 않다.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리다 보면 저절로 홈런이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태균은 국내 9시즌 동안 평균 20.89개(최다 31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이승엽의 9시즌 평균 홈런수는 36개(최다 56개)였다. ■ 9회초 무사 1루. 이승엽 다섯번째 타석
고졸 신인 오른손투수 최우석은 데이터를 충실히 따라갔다. 공 6개 중 3개가 몸쪽 낮은 공이었다. 5구는 이승엽의 몸쪽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였다. 볼카운트 2-3. 최우석은 또다시 같은 코스로 공을 던졌다. 직구를 예상했던 듯 이승엽의 방망이는 헛돌았다. 이승엽은 4구째 시속 130㎞ 슬라이더에도 헛스윙을 했었다. ■ 9회말 2사 1루. 김태균 다섯번째 타석
초구부터 방망이가 나갔다. 한복판으로 몰린 직구를 놓칠 리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오른쪽 폴대를 살짝 벗어났다. 이후 삼성 우완투수 정현욱은 계속 몸쪽 공으로 승부했다. 스트라이크존에서 공 반 개 정도 빠지는 코스였으나 김태균은 속지 않았다. 대형 파울 이후 공 4개를 잘 골라낸 김태균은 볼넷으로 출루했다. 김태균은 통산 출루율에서 역대 3위(0.411·3500타석 이상 선수 대상)에 올라 있다. 이승엽은 공동 5위(0.407). 한국 복귀 첫 맞대결 성적은 이승엽 5타수 2안타(2루타 1개) 1삼진, 김태균 4타수 1안타 1득점 1볼넷 1삼진. 이승엽은 국내 통산 1300안타(역대 34번째)도 이날 채웠다. 삼성의 9-4 승리. 삼성은 4연패에서 벗어났고, 한화는 4연패에 빠졌다. 이승엽과 김태균은 22일 두번째 맞대결에서 나란히 홈런을 기록했다. 김태균이 8회말 추격의 홈런포(시즌 1호)를 쏘아올리자, 곧바로 이승엽이 9회초 쐐기 홈런포(시즌 3호)를 터뜨렸다. 통산 최다 홈런(351개)을 향해 나아가는 이승엽은 “태균이와 상관없이 난 내 갈 길을 갈 뿐”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폰 메시지창에 ‘4할’ 문구를 올려놓은 김태균은 “승엽이 형과 나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통산 홈런수 등에서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고 강조한다. 그래도 둘이 함께 현역으로 뛰는 한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야구 전문가들은 두 선수 모두 올 시즌 20~30개 홈런을 때려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승엽과 김태균은 5월4일부터 6일까지 대구에서 시즌 두번째 맞대결을 벌인다. 청주/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내 인생 최고 홈런은 가족”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이승엽(36·삼성)도, 김태균(30·한화)도 경기장 밖에서는 ‘아버지’로 돌아간다. 이승엽은 은혁(2005년), 은엽(2011년) 두 아들이 태어날 때 직접 탯줄을 잘랐다. 그 순간이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까지 흘렸단다. 이승엽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순간은 정말 감동의 도가니였다. 가족을 일군 것이 내 인생의 최고 홈런”이라고 했다. 그의 1루수 글러브 안쪽에는 두 아들의 이름이 색실로 곱게 새겨져 있다. 그가 일본에서 복귀한 첫째 이유도, 아이들에게 ‘국민타자 이승엽’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두 아이는 이승엽이 한국에서 뛰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1 시즌 중반 국내로 돌아오기로 했을 때는 아내 이송정씨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다. “처음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아내가 반대했다.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그런데 나중에 최종 복귀 결심을 했을 때는 아내가 정말 좋아했다. ‘처음에 왜 반대했느냐’ 물었더니 내 결정에 누가 될까 속마음을 숨겼다고 하더라. 그때 ‘아내가 속이 참 깊구나’ 싶었다.” 김태균은 지난해 10월 첫딸 효린이를 얻었다. “아이가 다칠까봐서” 탯줄을 직접 자르지는 못했다. 효린이와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부터 한눈에 반했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어떻게 태어났을까’ 신기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나를 많이 닮아서 속상했는데, 100일 전후로 엄마(김석류 전 KBS 아나운서) 얼굴이 나오고 있다. 보고 또 봐도 계속 보고 싶다.” 김태균은 아이 욕심이 참 많다. “힘 닿는 데까지” 다섯쯤 낳고 싶단다. 하지만 스포츠 아나운서 출신 김석류씨는 “셋만 낳자”고 한단다. 김석류씨는 김태균이 시즌 초반 홈런이 안 터지자 직접 김태균의 홈런 동영상을 편집해주는 등 살뜰하게 남편을 내조하고 있다. 김태균은 “올해는 아내와 딸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가족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양희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