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3루수 최정이 마운드에 올라가 있다.
미국프로야구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윌슨 발데스(33)는 26일(한국시각)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진기록을 세웠다. 2루수로 선발출전했다가 연장 19회초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틀어막고 승리투수가 됐다. 야수가 승리투수가 된 것은 2000년 8월23일 콜로라도 로키스 포수 브렌트 메인에 이어 11년 만. 그러나 당일 선발 출전한 야수가 팀의 마지막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승리투수의 영광까지 안은 것은 1921년 베이브 루스 이후 90년 만의 일이다.
찰리 매뉴얼 필라델피아 감독이 발데스를 마운드에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매뉴얼 감독은 생각보다 연장이 길어지자 두가지 선택에서 고민했다. 하나는 선발투수를 당겨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야수를 투수로 돌리는 것이었다. 후자를 선택하면서 감독은 전천후 내야수였던 발데스 카드를 꺼내들었다. 발데스가 낙점된 이유는 어깨가 강해서가 아니었다. 자칫 다른 야수들을 썼다가 어깨 부상이라도 당하면 안됐기 때문. 발데스는 전천후 내야수라서 다치더라도 백업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고육지책이었으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한국프로야구에도 포지션 파괴 사례가 있다. 몇몇 사례들을 뽑아봤다.
■ 야수→투수 2009년 6월25일. 5-5 동점이던 연장 12회말에 에스케이 김성근 감독은 3루수 최정을 마운드에 올렸다. 당시에는 ‘무승부=패’였기 때문에 에스케이는 패가 확정됐던 참이었다. 김 감독은 진 경기에 투수를 투입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투입할 투수도 없었다. 결국 최정 카드를 꺼냈고 최정은 146㎞ 직구를 뿌려댔으나 제구력 난조를 보이면서 끝내기 폭투를 내줬다. 당시 1루수는 투수 윤길현이 맡았다.
1985년 7월27일 잠실 삼성전에서 엠비시(MBC) 청룡 김재박은 유격수로 선발출장했다가 연장 10회초 1사 만루에서 마운드에 올라 2구 만에 이해창에게 3루수 직선타를 유도해 병살로 이닝을 마무리 한적 있다. 10회말 1사 만루 타석에서도 끝내기 중전 안타를 터뜨려 승리투수는 물론 승리 타점의 주인공이 됐다. 당시 김재박은 투수와 타자를 겸직하고 있었다.
■ 투수→타자 지명타자가 수비를 하게 되면 투수가 타석에 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2007년 4월15일 두산-에스케이전. 연장 11회말 7-8로 뒤진 상황에서 두산 김경문 감독은 7번 타순에 대타로 좌완 투수 금민철(현 넥센)을 내세웠다. 경기가 접전이라서 야수를 다 쓴 상황이었기 때문. 금민철은 상대 투수 조웅천으로부터 침착하게 볼넷을 골라 출루했고 1사1·3루에서 3루 땅볼 때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홈으로 파고들어 동점 득점까지 만들어냈다. 8-8 동점 상황에서 금민철은 12회초 마운드에 올랐다. 유니폼은 온통 흙투성이였다. 금민철은 2사 2루에서 실책을 저지르며 점수를 내줬다. 8-9로 뒤진 12회말에는 2사 후에 다시 타석에서 2루 땅볼로 물러났다. 당시 1루로 뛰다가 꽈당 앞으로 넘어지는 장면은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현재 투수 코치로 변신한 한화 송진우는 2001년 6월3일 청주 엘지전에서 7-7로 맞선 9회말 1사 2·3루에서 대타로 등장해 신윤호의 144㎞ 직구를 공략해 끝내기 우전 안타를 친 바 있다. 투수 대타 끝내기 안타는 송진우가 유일하다.
■ 투수→야수→투수 2007년 5월23일. 에스케이 구원 투수 조웅천은 7회말 2사 만루에 등판했다. 하지만 8회말 수비에서는 투수가 아닌 좌익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마운드는 좌완투수 가득염이 이어받았다. 가득염이 왼손타자 양준혁을 처리하자 조웅천은 다시 마운드에 올랐고 9회말 2사까지 책임졌다. 김성근 감독이 오른손투수가 별로 없는 팀 사정상 택한 고육지책이었다. 투수가 잠깐 야수로 변했다가 다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사례는 한차례 더 있었다. 1992년 4월10일 사직 롯데-엘지전에서 이광환 엘지 감독이 투수 정삼흠을 잠깐 1루수로 옮겼다가 다시 마운드로 돌렸다. 두 전략 모두 성공했고 현재 기막힌 용병술로 남아 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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