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신시내티전 연장 19회에 투입, 필라델피아 5-4 승리 이끌어
26일(한국시각) 필라델피아 시티즌스뱅크파크에서 열린 메이저리그(MLB)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신시내티 레즈의 경기. 4-4의 팽팽한 균형이 이어지던 연장 19회초 필라델피아의 아홉번째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바로 18회초까지 2루수로 뛰던 윌슨 발데스(33)였다. 언제 마감될지 모르는 끝장 싸움으로 필라델피아 불펜에는 이미 투수들이 바닥나 있었다. 새벽 1시가 넘어 졸면서 경기를 지켜보던 일부 팬들은 2루수가 투수로 투입되는 희한한 광경에 모두 잠에서 깨 일어나 “발데스” “발데스”를 연호했다.
전천후인 발데스는 최고 145㎞의 직구를 뿌리면서 당당하게 마운드를 제압했다. 몸 맞는 공을 하나 내줬을 뿐 아웃카운트 3개를 모두 뜬공으로 잡아내며 투수 보직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상대한 신시내티 타자 중에는 지난해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던 강타자 조이 보토도 포함돼 있었다. 투구수는 10개. 직구 위주로 운용하면서 체인지업과 커브를 섞어 던졌다.
필라델피아는 19회말 공격에서, 1사 만루 때 터진 라울 이바녜즈의 끝내기 희생 뜬공으로 5-4의 극적인 승리를 챙겼다. 6시간11분 혈투의 승리투수는 한 이닝을 깔끔하게 소화한 발데스였다. 야수가 승리투수가 된 것은 2000년 8월23일 콜로라도 포수 브렌트 메인에 이어 11년 만이다. 발데스는 그동안 메이저리그는 물론이고 마이너리그에서도 투수로 뛰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는 타석에서도 6타수 3안타 맹타를 휘둘렀다.
2008년 잠깐 한국프로야구 기아(KIA)에서 뛰기도 했던 발데스는 경기 후 동료들이 바른 하얀 면도거품을 잔뜩 얼굴에 묻힌 채 “아마 보토에게 홈런을 맞았더라도 동료들은 내게 별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발데스가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흔들어 신호할 때 미트로 얼굴을 가리고 키득키득 웃었다는 필라델피아 1루수 라이언 하워드는 “발데스가 어떤 공을 던지려고 하는지 참 의아했다. 한편으론 재미있었는데 결국 해냈다”며 기뻐했다.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에스케이 3루수 최정이 2009년 6월25일 광주 기아전 연장 12회말에 마운드에 선 적이 있으며 당시 패전투수가 됐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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