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피하려 미국에 진 ‘꼼수’에 스스로 당해
“치지도 못하는 4번타자” 비아냥거리다 완패
“치지도 못하는 4번타자” 비아냥거리다 완패
20일 미국전이 끝난 뒤, 호시노 센이치 일본 대표팀 감독은 웃었다. 11회 승부치기 끝에 2-4로 패했지만, 그의 얼굴은 활짝 펴 있었다. 경기에 앞서 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일본 투수들은 이날 작심한 듯 미국 타자들이 치기 좋게 직구 위주로 공을 뿌렸다. 간간이 호수비가 나오기는 했지만, 경기가 결론없이 후반으로 접어들자 수비마저도 느슨해졌다. 준결승전에서 쿠바를 피하고 한국을 만나려는 의도가 충분히 엿보였다. ‘한국은 언제든 이길 수 있다’는 오만함의 발로였다고 할 수 있다.
호시노 감독은 베이징올림픽이 열리기 전부터 한국을 자극했다. 지난해 12월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올림픽 한일전에서 김경문 대표팀 감독이 예비 오더를 제출했다가 다시 타순을 바꾼 것을 계속 물고 늘어졌다. 한국과의 예선전에 앞서 한국선수들 중 신경쓰이는 선수가 없느냐는 질문에도 “오더나 바꾸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답변할 정도였다. 호시노 감독은 준결승에 앞서서 부진한 이승엽을 두고 “한국 4번타자? 그게 누구냐. 제대로 치지도 못하는 타자를 4번타자에 그대로 두다니 대단하다”며 이승엽과 김경문 감독을 깎아내리는 발언을 했다.
호시노 감독의 끊임없는 도발에, 김경문 대표팀 감독이나 한국 선수단은 꿈쩍도 안했다. 오히려 전의를 불태웠다. 2년 전 열렸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때 스즈키 이치로 가 “한국이 30년 동안 일본을 이기지 못하게 하겠다”는 말을 전해듣고 선수단 전체가 일본타도를 외치며 똘똘 뭉쳤던 것과 비슷하다.
호시노 감독은 22일 준결승전에서 패한 뒤 “다음부터는 한국을 강한 팀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이제부터는 한국이 우리보다 약하다는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강한 팀으로 안 보였기에 준결승 상대로 한국을 골랐지만, 부진했기에 얕봤던 4번타자에게 제대로 완패를 당한 호시노 감독과 일본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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