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이 22일 일본과 준결승전 8회말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친 뒤 양 팔을 번쩍들고 1루를 돌고있다. 1루 코치로 들어간 박진만도 두 손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야구 일본 격파 ‘대반전 드라마’
헛방망이 돌던 이승엽 “너무 미안해서…”
대타 등 지략대결 완승…토종야구 진가
헛방망이 돌던 이승엽 “너무 미안해서…”
대타 등 지략대결 완승…토종야구 진가
일본전 ‘대반전 드라마’는 김경문 감독의 용병술과 이승엽의 ‘한방’이 결합돼 폭발한 ‘빅뱅’이었다.
한국 야구는 그동안 중요한 고비마다 일본이나 대만에 발목이 잡혀 왔다. 그래서 ‘평범한 아시아 수준의 야구’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2년 전 세계야구클래식(WBC)에서 일본의 천재 타자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는 “30년간 한국이 일본을 이기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말로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이때 한국은 예선전에서 일본을 두 번 이겼다. 그러나 정작 4강전에서 패해 일본의 우승 장면을 씁쓸히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한국 야구는 이번 올림픽에서 일본에 연거푸 승리하며 콧대를 꺾었다. 기존의 한국 야구에 대한 저평가도 날렸다.
일본전에서 보여준 ‘매운 야구’의 힘은 김경문 감독의 믿음과 뚝심이었다. 김 감독의 역전 드라마 주인공은 이승엽이었다. 그는 예선 6경기 타율 0.136(22타수3안타) 2타점, 2득점으로 부진했던 이승엽을 끝까지 4번타자로 기용했다. 선발투수로 기용한 김광현을 끝까지 믿고 맡긴 것도 김경문표 뚝심의 일면이다. 김 감독은 “어린 김광현을 아직 젊은 강민호가 제대로 리드해줄까 걱정도 했지만, 초반 이후 둘의 호흡이 살아나면서 이대로 가도 되겠다는 확신이 섰다”고 말했다.
세밀한 기술야구의 일본을 상대로 ‘빅볼’ 강공으로 승운을 한국 쪽으로 돌린 것도 눈부셨다. 김 감독은 7회 말 1사 1, 2루 기회에서 ‘국민 우익수’ 이진영의 대타 작전으로 2-2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8회 터진 대량득점은 김 감독 특유의 감각과 바람 타면 무서운 선수들의 응집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김 감독의 역전 드라마 주인공은 이승엽이었다. 믿고 밀어준 김 감독에 그는 ‘한방’으로 화답했다. 올림픽 첫 금메달에 도전할 기회가 눈앞에 있었고, 이승엽이 “너무 예쁘다”던 후배 14명의 병역 특례 혜택도 걸려 있었다. 앞선 세 타석에서 두 차례 삼진과 병살타로 물러났다. 게다가 상대는 ‘주니치 수호신’으로 불리며 지난 3년간 40세이브 이상(통산 184세) 등 일본 프로야구 역대 세이브 순위 5위에 올라 있는 이와세 히토키(34). 볼카운트 마저 2-1에 몰렸다. 이승엽은 “삼진만큼은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방망이를 돌렸다. 그런데 공이 까마득히 110m쯤 날아가더니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었다. 역전 2점 홈런이 터져나왔고, 한국 선수들조차 “말도 안 된다”며 탄성을 질렀다.
이승엽은 타격 부진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극복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큰 선수’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었다. 그는 경기 후 눈물을 글썽이면서 “경기 전 후배들이 ‘오늘은 잘 될 거라’고 얘기해 주는데, 너무 미안했다”며 “직구 하나만 기다렸다. 처음에는 홈런인지 잘 몰라 한참을 쳐다봤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은 한번 균형이 깨지자 주체할 수 없이 무너졌다. ‘220억원짜리 마운드’라는 일본의 투수진은 고영민, 강민호에게 큰 타구를 허용하며 잇따라 실점했다. 외야진도 역전을 바라볼 수 있던 2점 차 상황에서 평범한 뜬공을 어이없이 떨어뜨려 쐐기 실점을 허용했다.
베이징/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이승엽 홈런상황
한-일전 스코어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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