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 43승7패. 갈수록 치열해지는 한국 바둑계에서 승률과 다승부문 1위를 달리며 지는 법을 잊어버린 스무살 청년이 있다. 바로 김지석 5단이다. 지석이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 바둑계의 각별한 관심을 받아왔다. 광주의 바둑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고, 8살 때 바둑 잡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 무렵 조훈현 9단의 관심을 받으며 지도기 시험 끝에 내 제자로 들어갔는데, 바둑보다 놀기를 좋아하던 지석이는 불과 1주일 만에 쫓겨나게 된다. “예전에 창호(이창호 9단)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기보를 놓아보며 공부하고 있었는데, 지석이는 시켜도 공부를 하지 않으니 내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었어.” 지난해 바둑리그에서 나와 같은 팀이었던 조훈현 9단이 한 말이다. 그만큼 놀기를 좋아하던 지석이었지만 2003년 14살의 나이로 입단에 성공한다. 하지만 지석이는 입단 뒤 노력이 부족했고, 재능만으로 버틸 수 있을 만큼 프로 바둑계는 만만하지 않았다. 입단 3년이 지나도록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석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요즘 들어 갑자기 정말 강해지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그 전엔 시합에 져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그 뒤 지석이는 정말 열심히 바둑을 했고, 차츰차츰 성적이 좋아졌다. 입단했을 무렵 이미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던 부분전투와 수읽기는 점점 더 날카로워졌고, 저돌적인 공격만을 즐기던 그의 바둑은 유연하게 변해갔다. 부족한 기보 공부로 형태에 대한 이해가 약해 복기 때는 “원래 이런 수가 있어요?”라는 말을 자주 하던 약점이 있었지만 극복해 나갔다. 바둑에 대한 센스와 재능이라면 일찍이 이세돌 9단이 알아보았다. 이 9단은 자주 연구실에 들러 지석이와 연습대국을 하곤 했다. 그런 재능에 노력이 더해지면서 지석은 점차 바둑계에 이름을 알려 나갔다. 2007년 바둑리그에서 소속팀 영남일보를 우승으로 이끌어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었고, 2008년엔 월드마인드스포츠 바둑 단체전 금메달 획득에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2009년. 드디어 그 재능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1월엔 19위에 지나지 않던 한국랭킹은 현재 8위까지 치솟았고, 엘지(LG)배와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을 통과해 한국대표로 세계무대에 출전하며, 물가정보배에서 결승까지 진격해 이창호 9단과의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지석이의 가장 큰 무기는 강인한 중반력과 자신감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중반에 뒤집을 수 있단 생각에 포석을 경시하고 좀 손해를 보더라도 개의치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런 점만 고친다면 지금보다도 더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 지석이는 8일 삼성화재배 통합예선 결승에서 상대 전적이 많이 뒤지고, 매우 껄끄러워하던 상대인 후야오위를 누르고 본선에 진출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극복해 나가면 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원하는 것을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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