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 2006년 7월3일. 내가 중국의 저우허양을 꺾고 후지쓰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날이다. 내 생애 최고의 기쁨이었던 날이고, 바둑계에서 가장 오랜 전통의 세계대회 후지쓰배에서 한국 바둑이 9년 연속 우승을 달성한 날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7월4·6일 벌어지는 준결승과 결승을 기다리고 있는 최후의 4인은 한국의 이창호 9단, 박영훈 9단, 강동윤 9단과 중국의 창하오 9단이다. 지난해 후지쓰배에서 중국의 구리 9단에게 우승컵을 내주며 후지쓰배 11연패를 좌절당했던 한국. 올해 들어 엘지(LG)배, 비씨카드배, 춘란배에서 우승을 중국에 내줬기에 이번 대회 우승이 절실하다. 4강전의 이창호-창하오전은 어떨까. 두 기사는 지난 10여년의 양국 바둑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오랜 친구이자 라이벌이다. 초창기 대결에선 이창호 사범의 압도적 우세였다. 1997~2000년 한-중 천원전에서 4년 연속 만나 모두 승리를 거두었고, 1998년 후지쓰배 결승, 2001년 잉창치(응창기)배 결승, 2003년 도요타배 결승에서도 이창호 9단이 모두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12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6년을 기점으로 전세는 역전됐다. 2006년 삼성화재배 결승, 6월 춘란배 결승에서 이창호 9단은 창하오에 모두 지고 말았다. 상대전적은 21승10패로 앞서 있지만, 최근 3년은 2승6패로 열세다. 하지만 나는 이창호 9단이 승리하리라 예상해 본다. 다른 모든 것은 지워버리고 내가 두 기사를 상대로 두어봤을 때 받은 느낌이 그렇다. 창하오와는 5판, 이창호 국수와는 8판 대국을 해보았다. 이 가운데 창하오에게는 3승2패, 이창호 사범에게는 1승7패를 기록했다. 창하오와의 대국에서 느낀 약점은 중반에 한 번 실수하면 뒤이어 계속 실수가 나온다는 점과 초읽기 대처 능력이다. 그래서 집요하게 실수를 파고드는 한국 신예들과의 전적이 그리 좋지 못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창호 9단이다. 실력이 최고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단지 예전보다 잔 실수가 많이 나온다. 집중력 문제로 보이는데, 그 문제만 극복한다면 이창호 9단이 결승에 진출하리라 본다. 또다른 4강전은 박영훈 9단과 강동윤 9단의 ‘형제 대결’이다. 한국랭킹은 강동윤이, 세계대회 업적과 성적은 박영훈이 앞선다. 국내 기전에서 3차례 붙어 속기전에서 강동윤이 2승, 세계대회 선발전에서 박영훈이 1승을 거두었다. 동윤이는 승부감각이 좋고, 타개가 강하고 버티기에 능하다. 영훈이는 두텁게 판을 두어가며 후반 계산력과 끝내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번 후지쓰배 4강 역시 누가 자신의 스타일대로 판을 꾸려 나가느냐가 관건으로, 5 대 5 알 수 없는 승부가 예상된다. 최근 기세가 오른 중국 바둑의 흐름을 막아내며 필승의 각오로 이번 후지쓰배 우승컵을 한국에 가져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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