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을 못 가는 대신 호텔 스파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반얀트리 서울 클럽 앤 스파 제공
풍경 소리 아스라이,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적당히 어두운 조명 아래 깨끗하게 정돈한 침대가 놓여 있다. 그 위로 몸을 누이면 어깨 위 잔뜩 쌓였던 피로와 얼굴을 퉁퉁 붓게 한 스트레스는 이제 안녕. 직장인 이영지 씨(가명·38)는 마사지 마니아다. 1~2시간 남짓 잠시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 같은 평온함 때문에 마사지를 끊을 수 없단다. “20대 때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을 갔는데, 다들 마사지는 꼭 받는다기에 별생각 없이 받았다가 피로가 한순간에 녹는 경험을 하고 빠져들었다”고 한다.
1년이 넘도록 여행을 하지 못하는 지금, 그는 아쉬운 마음을 국내 스파숍에서 달래고 있다. 그러던 중 최근엔 호텔 스파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호텔 스파는 ‘넘사벽’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화장품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로드숍과 비슷한 가격대의 프로그램도 있더라”는 게 그의 전언. 실제로 러쉬, 이솝 등 인기 화장품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스파 프로그램의 가격대는 9만~20만원대. 호텔 스파에도 10~20만원대 입문용 프로그램이 있다. 물론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리해주는, 호사스러운 프로그램 또한 많다.
파라다이스 부산 순다리 리트리트 스파 시설. 파라다이스 부산 제공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요즘 ‘호캉스’(호텔에서 즐기는 바캉스)를 넘어 호텔 스파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동남아 여행을 가서 스파를 즐기던 여행객들이 국내 호텔 스파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 스파를 받는 공간이 호텔이다 보니 여행 온 기분을 누리는 것은 덤이다.
확인해보니 서울 장충동에 있는 반얀트리 서울 클럽 앤 스파는 지난해 1~5월 대비 스파 고객 수가 약 20% 증가하고 비교적 고가인 스파 패키지 매출 또한 80%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의 스파는 요즘 평일에도 오전에 그날 예약이 모두 마감될 정도로 인기란다. 코로나 보복 소비, 포미족(For me, 나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소비하는 이들)의 영향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사로잡기 위해 호텔들도 합리적인 가격대의 다양한 스파 상품들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콘래드 서울 스파 내 1인실. 콘래드 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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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발리야, 푸켓이야?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반얀트리 호텔에 묵은 경험이 있다면, 서울에서도 그 분위기 그대로 추억을 소환할 수 있다. 타이, 인도네시아, 몰디브 등 세계적인 휴양지마다 자리한 반얀트리 스파는 ‘타이 차마나드’ 라고 이름을 붙인 아로마 오일, 샴푸, 로션 등의 제품을 쓰는데, 세계 어느 지점에 가도 이 향을 맡을 수 있다. 반얀트리 호텔 유하나 스파 매니저에 따르면 “해외 반얀트리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커플들은 스파에 들어서자마자 ‘이 향기!’라며 향으로 공간을 기억한다”고 한다.
반얀트리는 서울 시내에서도 비교적 숙박 비용이 비싸 스파 프로그램 또한 가격 허들이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가성비’ 좋은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타이 전통 마사지부터 마사지 기술에 따라 5개의 프로그램이 마련된 전신 마사지의 경우 1시간 21만원, 1시간30분 28만원에 이용할 수 있다. 등, 발, 손, 머리와 어깨 등 부위별 마사지인 ‘퓨전 포커스’의 경우 30분 12만원, 45분 15만원에 받을 수 있다. 가장 고가인 ‘반얀 데이’(75만원)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로 ‘플렉스’를 택한 이들에게 인기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호텔에서 6시간 이상 머무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사지와 스크럽을 받고, 코스 요리도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반얀트리 호텔의 인도네시아 전통 스파. 사진 반얀트리 서울 클럽 앤 스파 제공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직접 운영하는 콘래드 스파는 동양의 전통 치유법에 기반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콘래드 시그니처 바디 마사지’로 평일에는 좀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주중 1시간 프로그램 18만7천원, 1시간30분 26만4천원에 이용할 수 있다. 주말엔 이용 가격이 평일 대비 5~6% 정도 올라간다. 현재 투숙객 대상으로 10% 특별 할인도 진행하고 있어 특히 평일이라면 10만원 중반대에 호텔 스파를 여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60분 이상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족욕 서비스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그루밍족을 위한 남성 전용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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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럭셔리, 합리적 가격…취향대로 고르자
하얏트 체인의 라이프스타일 호텔 안다즈 서울 강남은 최근 건강과 휴식을 주제로 한 ‘힐링 앳 안다즈’ 패키지를 출시했다. 2인 스파 프로그램이 포함된 이 패키지는 호텔 내 오셀라스 스파의 40분짜리 스파 트리트먼트 코스를 제공한다. 뭉친 목과 등 근육을 중점적으로 관리한다. 스파만 이용할 경우, 10만원대부터 30만원대 선에서 휴식, 활력, 에너지, 회복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발과 다리의 피로를 풀어주는 ‘풋앤레그’ 프로그램은 12만원(40분), 올리브, 쌀, 코코넛 등의 자연 재료 스크럽을 포함해 시그니처 트리트먼트가 포함된 60분짜리 ‘아로마 바디 리츄얼’ 코스는 17만원 선에 이용할 수 있다. 가장 가격대가 높은 ‘라스톤 페이스 앤 바디’ 프로그램(2시간, 39만원)의 경우 유기농 오일을 이용한 스톤 테라피로 얼굴을 포함해 전신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안다즈 서울 강남 호텔의 오셀라스 스파. 안다즈 서울 강남 제공
고급 화장품 브랜드인 겔랑을 스파로도 즐길 수 있다. 파리, 뉴욕, 홍콩 등에서 영업 중인 겔랑 스파는 국내에는 신라호텔 서울과 제주 두 곳만 매장을 두고 있다. 겔랑 스파 관계자는 입문용 프로그램으로 얼굴 마사지 프로그램인 ‘컴플리트 페이셜 트리트먼트’(1시간30분, 29만1500원)와 몸 관리를 하는 ‘겔랑 터치 바디 트리트먼트’(19만8천원부터)를 추천했다. 겔랑의 대표적인 스파 프로그램과 숙박, 야외 수영장인 ‘어반 아일랜드’ 입장권 등을 포함한 ‘신라 스파’ 패키지 또한 최근 휴양지 여행 대신 호캉스를 선택한 이들에게 인기라고 한다.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 내 더 스파는 지난해 4월과 비교해 동기간 방문 고객 수가 243% 증가할 정도로 인기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 위치한 특성상 직장인들의 이용률도 높다. 가장 인기가 많은 시간대가 저녁 7~10시라고 한다. 28층 스파룸에서 서울 야경을 내려다보며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스크럽 프로그램인 ‘마린 바디 럽’(1시간, 13만2천원)부터 목과 어깨의 뭉친 근육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딥 티슈 릴리스’(1시간, 16만5천원) 등 10만원대에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최근에는 마스크 착용과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피부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얼굴과 몸 모두 관리받을 수 있는 ‘코지 라이프 스타일’(2시간, 32만원)도 인기라고 한다.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 내의 더 스파.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제공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의 ‘순다리 리트리트 스파’ 또한 올 3~5월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약 30% 매출이 증가했다. 특히 부부 고객이 최근 20~30% 늘었다고 한다. 요즘 이 호텔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전신 피로를 풀어주는 ‘시그니처 바디 트리트먼트’(90분, 25만원). ‘커플 스파 트리트먼트’(2시간30분, 2인 78만원)의 경우 가격이 비교적 높은데도 이용객이 증가하는 추세다.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기, 개인적인 공간에서 1인 히노키탕, 여성 전용 한방 스팀 기기 등도 이용할 수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