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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달리기’의 날들…게임 속에서라도 달리고 싶어! [ESC]

등록 2022-10-22 11:00수정 2022-10-22 11:36

스스로도 믿기 힘든 천일의 달리기
어떤 효과 바라며 뛰는 것 아니라
‘어떻게든 달린다’는 자체가 목표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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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일 넘게 매일 (명상과) 달리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스스로도 조금 믿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매일’의 정의는 24시간에만 구속받지 않는다. 뜻하지 않게 ‘마감’이 겹치는 직업 특성상, 오늘 시작된 하루가 (귀가와 적당한 수면 시간을 건너뛴) 다음날, 혹은 그 다음날 끝나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침 6시에 출근한 뒤 종일 일하다 잠깐씩 쪽잠을 자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마감을 쳐내고 귀가하는 식이다. 이렇게 ‘그레고리력’과 ‘매일 달리기력’이 하루씩 차이 나는 현상은 다행히도 아주 가끔 일어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2020년 3월부터 2022년 10월 현재까지, 그레고리력 기준의 날짜와 매일 달리기 기록에 쓰인 날짜를 비교해보니 40일가량 차이가 난다. 즉, 22.5일에 한번 정도 원치 않는 밤샘 작업이 있어 이틀을 하루로 셈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밤샘과 쪽잠 사이 잠시 가볍게 뛰는 경우도 있었으니, 실제로 마감에 치여 밤을 샌 빈도는 약 3주에 한번 혹은 그보다 좀 더 자주라고 보아도 되겠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이 사실을 깨달아 조금 충격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 ‘매일’ 달리기를 해내고 있는 스스로를 칭찬하는 데 더 집중하고 싶다.

가상으로 달리기

그레고리력(하루는 24시간)과는 조금 다른 논리로 작동하는 매일 달리기력(‘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일을 마무리해야 비로소 하루를 종료)을 도입한 덕분에 어떻게든 ‘매일’ 달리기를 지속 중이지만,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병원에서 간단한 복부 수술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난 뒤 의사 선생님께 이렇게 물었을 때였다. “선생님, 이따 퇴원하고 집에 가서 가볍게 뛰어도 되나요?”

그때, 노련한 의사 선생님은 몸소 우문현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다. 적어도 일주일은 걷기조차 조심해야 수술 자리를 꿰맨 실밥이 아물 거라는 말을 적확한 동시에 상냥하고 날카로운 말투로 알려주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를 했다가 실밥이 터지면 재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덤이었다. “명상하는 건 괜찮죠?” 이 질문엔 호흡할 때 너무 깊이 숨을 들이쉬지 말라는 답변을 받았다. 실밥이 터질 수 있으니까.

그리하여, 수술 후 집에 돌아가자마자 검색 엔진을 켜고 달리기를 하는 게임을 찾았다. ‘달리기를 게임으로 만드는 게 가능한 일일까?’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육상 경기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었다. 소규모 게임 제작사인 탱그램스리디(Tangram3D)에서 발매한 ‘운동: 여름 스포츠’ 시리즈에선 단거리·장거리 달리기뿐 아니라 투포환이나 창던지기 등 갖가지 여름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게임 조작은 엄지손가락 둘이면 충분하다. 화면상의 두 버튼을 열심히 누르면, 가상의 달리기 선수가 손가락의 리듬에 맞춰 바삐 두 다리를 놀린다.

혹은, 2008년에 공개되어 컬트 게임의 반열에 들어선 ‘큐더블유오피’(QWOP)에 접속해 100미터 가상 달리기에 도전할 수도 있다. 키보드 자판 Q, W, O, P로만 조작하는 이 게임은 네개의 자판으로 두 다리의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을 움직인다. 달리기는커녕 한발짝 떼기도 어려운 이 게임이 지금도 종종 회자되는 이유는 공략 요령을 따로 배워야 할 정도로 난도가 높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900일이 넘게 달리기를 하는 동안 유일하게 몸을 조심히 움직여야 했던 약 일주일 동안에는 도무지 있을 법하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달리기 게임들 덕분에 화면 속 캐릭터를 통해서라도 달리기를 이어나갈 수 있어 큰 위안을 얻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자가격리를 하던 중에도 달리기는 멈추지 않았다. 다행히 실밥이 터질 염려가 없어 실제로 뛸 수도 있었다. 집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지만, 방 안에서 1~2킬로미터가량 제자리뛰기를 해보았다.)

탱그램스리디(Tangram3D)에서 발매한 ‘운동: 여름 스포츠’ 시리즈 중 달리기 게임. 게임 화면 갈무리
탱그램스리디(Tangram3D)에서 발매한 ‘운동: 여름 스포츠’ 시리즈 중 달리기 게임. 게임 화면 갈무리

효과도 목적도 필요 없어

이렇게나 매일 달리게 될 거라고는 몇년 전에는 꿈에서조차 생각지 못했다. 어쩌다 보니 매일 달리기 중이라는 내 소식을 전해 들은 지인들은 걱정 어린 ‘고나리질’(아는 체하며 지적하는 일)을 아끼지 않았다. ‘너 갑자기 왜 이러니’, ‘비라도 내리거나 부상이라도 당해서 하루라도 달리기를 쉬면 달리기의 동력을 잃지는 않겠니’, 무엇보다 ‘딱히 달리기 목표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언제까지 매일 뛸 수 있겠니’ 등.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우리 생활에선 어떤 방식으로든 목적 없이 이뤄지는 걸 찾기조차 어렵다. 거의 모든 게 목표나 기능, 심지어 효과나 효능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여겨진다. 구글에 ‘달리기 효과’를 검색해보라. 220만개가 넘는 웹페이지가 출력된다.

그런데, 운동을 딱 싫어하던 내가 900일이 넘게 달리기를 이어오고 있는 이유는 별다른 목적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900여일 달리기를 하는 동안 배우자가 된 나의 동거인은 매일 달리기가 코로나19로 갇혀 있던 시간 속에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의 표현처럼 보였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달리기를 어떻게 시작했든,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는 이유는 좀 다른 것 같다. 매일의 달리기에선 어떻게든 달려보겠다는 것, 달리기 자체가 목표로 존재한다. 종종 24시간을 넘어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하루는 온통 목적과 목표투성이다. 그 안에서 거의 모든 행동은 도구가 된다. 길게든 짧게든 어떻게든 매일 이어지는 달리기는 좀 다르다. 달리기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다. 어쩌면 이제 달리기가 목적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숨을 쉬듯, 달리기는 내 일부가 되고 말았다. 내 존재의 목적 한 부분이 달리기로 변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박재용 프리랜스 통번역가·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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