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잡고 날 세운 식당의 정돈된 맛을 좋아할 때도 있었다. 지금도 물론 좋아하지만 안정된 서비스, 기대한 만큼의 맛, 일말의 여지없이 완벽한 홀 세팅을 볼 때 느끼는 희열도 분명히 있다. ‘외식해야지’ 작정하고 나온 날이라면 이런 곳에서 느낄 수 있는 평안함과 안온함에 기댈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늘 그렇지는 않고, 잠 줄여가며 술 마시는 사람 입장에서는 취해서 부은 얼굴과 숙취의 나른함이 부끄러울 때가 많다. 편안하게 슬리퍼 끌고 갈 수 있는 ‘좋은 식당’이 많지 않은 것이 늘 속상하다. 분식집이나 중국집은 어딘지 모르게 늘 아쉽다. 여의도와 목동 사이, 선유도역으로 향했다. ‘꽤 괜찮은 비스트로가 문을 열었다’는 첩보를 받아 들은 터였다. 어제 마신 소주와 맥주, 와인이 식도에서 춤을 추는 상태, ‘오늘은 뭔가 마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지하철 9호선 선유도역 바로 앞 골목 건물 2층에 자리잡은 ‘선유용숙’은 문 연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새 식당이다. ‘지금 문 연 식당의 음식 맛을 믿을 수 있을까’ 의심하며 식당으로 들어섰다.
길게 뻗은 주방,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 여유로운 홀의 정경까지 첫 인상이 참 좋았다. 금태 솥밥, 오늘의 생선회, 초밥과 생선 구이 같은 메뉴 역시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솥밥과 회, 참치와 성게 알을 주문하고 나니 여지없이 구석의 와인 셀러에 눈길이 갔다.
다른 곳에서 흔히 만날 수 없는 불가리아 와인과 그리스 와인을 취급한다는 오너 셰프의 설명이 유난히 믿음직했다. 불가리아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있을 때 나온 회의 자태는 정통 일식당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집을 너무 저평가했구나’ 반성하고 있을 때쯤 등장한 금태 솥밥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쇠 솥에 지금 바로 한 밥, 그리고 그 달고 기름지다는 금태를 얹었으니 맛이 없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밥알 사이사이 제대로 밴 짭조름한 소금 간이 절묘했다.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메뉴 구성이니 뭐 어쩔 수 있나, 그리스 와인을 주문하고 맥주로, 소주로 넘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오너 셰프의 칼 솜씨, 군더더기 없는 플레이팅과 완벽한 접객 태도가 아무래도 지금 막 문을 연 식당이라기엔 너무 프로의 것이었다. 오너 셰프가 그 유명한 일식당 ‘갓포 아키’, 그리고 서강대 인근의 맛집으로 명성 높은 양식당 ‘요수정’ 출신이라는 일행의 설명이 유난히 와닿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제대로 된 정통 음식을 맛보고 싶다는 이율배반적인 마음을 충족시켜주는, 요즘 보기 드문 식당을 의외의 동네 선유도에서 만났다. 백문영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