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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그런 나무가 되었다

등록 2021-04-30 10:59수정 2021-04-30 11:03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날 선배가 한 얘기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다 힘이 있다”라는 말이었다. 그러니 어른들이 뭔가를 더 하기 위해 부러 애쓰지 않고 기다려도 된다고. 그 말을 떠올리면 내가 왜 유년의 아픈 기억을 그 자리에서 털어놓았는지 짐작이 간다.

이사한 뒤 첫봄을 맞았다. 이상기온으로 벚꽃은 이미 이주 전에 피었다 지고 지금은 철쭉의 계절, 색감이 진해서 어딘가 잘 접은 색종이를 연상시키는 그 꽃들은 거리에도 아파트 단지 안에도 환하게 피어 있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저층이라 망설이는 내게 부동산 사장은 봄이 되면 여기에 나무 들이 말도 못하게 푸르다고 열심히 설득했다.

“봄만 되어 봐요, 아주 말도 못해요.”

3월이 지나자 정말 나무들은 잎을 틔웠고 일상을 정신없이 보내는 사이 어느덧 작은 숲을 이루어놓고 있었다. 외출이 어려운 요즘, 그렇게 창으로 보이는 나무들은 그 자체로 위안이 된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하니까, 괜찮을 거라고.

나무들 중에서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버드나무였다. 어른 둘이 팔을 벌려야 할 만큼 둥치가 크고 아파트 4층 높이만큼 높기 때문이다. 아파트 앞에는 조성한 지 몇 해 되지 않은 작은 공원이 있는데, 그곳의 다른 나무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버드나무의 존재감은 뚜렷했다. 오랜 세월 한 자리에서 버틴 묵직한 아우라가 있었다. 마침 공원길이 그 버드나무에서 끊겼다 다시 이어져 나는 혹시 나무를 베어낼 수 없어서 길이 그렇게 되었나 싶기도 했다. 이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무들이야 말로 장소들의 오롯한 주인일지도 몰랐다.

어려서 나는 아파트 발코니로 나가 나무들을 내려다보는 일을 좋아했다. 열 살 때 처음 옮겨가 한집에서 대학생이 될 때까지 살았는데 그동안 아파트 조경수들은 키를 높여 나중에는 5층인 우리집에서도 제법 가까이 느낄 정도가 되었다. 그 나무들에는 내 유년의 많은 순간들이 담겨 있었다. 일단 병아리들,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놀라겠지만 그때는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병아리들을 팔았다. 그 노랗고 작고 포근해 보이는 작은 동물에 눈길 주지 않고 지나가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들에게는 그런 친구가 늘 필요한 법이니까. 특히 나는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누가 말린다고 말을 듣는 애도 아니었고 일단 데려오면 부모님도 키우는 데만은 열심히 동참했으므로 나는 병아리를 자주 사들고 오곤 했다. 하지만 병아리들은 대개 짧게 머물다 내 곁을 떠났고 나는 엉엉 울면서 아파트 나무 아래 묻어주었다. 그 역시 지금이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요즘 나는 유년 시절을 자주 생각하고 꿈도 꾼다. 어린 시절이 생생해진다고 하자 어떤 지인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간은 원체험에 가까워진다고,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건가 싶었다. 하지만 내 나이가 그 정도의 인지변화가 일어날 만큼 많은 나이인가,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짚어보니 이사 온 동네가 내가 어려서 살았던 곳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90년대에 지은 아파트들이기 때문이었다. 90년대식 아파트에 대한 건축학적 특징이 있겠지만 내게는 별다른 장식재 없이 우직하게 쌓아 올린 콘크리트 건물과 크고 우람한 나무들로 특정된다. 동네 아파트들도 다들 그렇게 터줏대감이 분명한 커다란 나무들을 끼고 있었다.

우리집 앞에도 거실 창까지 가지를 뻗어올린 층층나무가 있다. 층층나무는 말 그대로 가지를 층층이 올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렇게 보면 아파트에 아주 잘 어울리는 나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층층나무가 맨 가지로 겨울을 통과하고 새 눈을 올리고 지금처럼 분분한 흰꽃들과 잎을 틔우기까지, 나무와 나는 서로의 상태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시야에 살짝살짝 들어올 만큼 가지를 뻗어올려 나무는 내 시선을 끌곤 했는데 창으로 다가가 내려다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잎들의 물결에 아득해지곤 했다.

발코니에서 가드닝을 하다 보면 외부의 식물과 내부의 식물이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울 때가 있다. 대체로는 발코니 식물들에게 약간의 미안함이 든다.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었을 뿐이지만 안팎의 환경 조건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빛이나 통풍, 물 공급에 있어 당연히 내부가 더 어려운 환경이다.

우리집에서 진정한 ‘노지 생활’을 경험한 식물은 자엽안개나무 하나로 겨울을 밖에서 지냈다.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하게 있을 때는 얼어 죽은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봄이 오자 싱싱하게 되살아났다. 추운 곳에서 버티면서 봄을 지나고 여름을 견딜 건강한 에너지를 축적해온 것이다. 마치 사람들이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면서 단단해지듯이 .

며칠 전 작가 선배와 동료와 대화할 일이 있었는데 학교에서 아이들이 입을지도 모를 상처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동료는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가 있었고 선배는 자녀들이 다 자라 독립을 한 상황이었다. 얘기를 듣다 보니 나 역시 유년을 통과하던 90년대에 겪었던 상처 하나가 생각났다. 좀 엉뚱하지만 이순신 장군 동상에 관한 것이었다. 학교에 동상을 세우기 위해 임원을 맡고 있는 아이들 학부모들이 돈을 걷었는데 우리 부모는 낼 수 없는 금액이었고 그러자 사람들이 엄마가 일하고 있던 마트까지 찾아와 돈 내기를 종용했다는 이야기. 이후 나는 학교 행사에서 내가 맡았어야 할 역할에서 제외되는 일까지 있었는데 엄마는 그때 그 돈을 내지 못해서 그랬으리라고 지금까지 분을 삭이곤 했다. 그 얘기는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것이라서 나는 집에 와서도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약간은 시원하기도 하고 뭔가가 걱정되기도 하고 어딘가 마음이 풀리면서도 무거워지는. 그건 아마 상처를 ‘시인’했기 때문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만 지켜보던 주변 아파트들을 직접 걸어 산책하기로 한 건 그 이튿날이었다. 같은 아파트 1층이라도 나무를 완전히 전정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데, 가지가 다 잘려나간 나무에도 어떻든 잎들이 푸르게 나 있어서 웃음이 났다. 어떻게 해도 말릴 수 없는 나무의 에너지가 미덥고 좋아서. 그런가 하면 바로 옆라인인데도 나무를 그대로 둔 경우도 있었다. 관리사무소에서 선별적으로 가지치기를 해주었을 리는 없고 그건 집주인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외부 노출을 나무가 어느 정도 가려준다는 현실적인 이유였을 수도 있고, 낭만적인 생각이지만 그 나무가 정말 좋았을 수도 있겠지. 나는 그 집에는 어떤 사람이 사는지 조금 궁금했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또 다른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게 됐는데 그곳은 내가 유년 시절 살았던 곳처럼 언덕을 꽤 올라가야 했다. 헉헉대며 올라 모퉁이를 돌았는데 나도 모르게 아, 하고 경탄을 내뱉었다. 초등학교 담장 너머로 등나무 꽃이 쏟아질 듯 피어 봄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선배가 한 얘기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다 힘이 있다”라는 말이었다. 그러니 어른들이 뭔가를 더 하기 위해 부러 애쓰지 않고 기다려도 된다고. 그 말을 떠올리면 내가 왜 유년의 아픈 기억을 그 자리에서 털어놓았는지 짐작이 간다. 나는 어떤 깊은 동의를 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 같다. 발코니로 나가 내려다보면 늘 그 자리에서 나를 올려다보던 나무들에게서 받았던 것과 같은, 내가 세세히 울며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전해지던 그 선선한 동의 말이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매 계절을 함께 앓았던 그 시절 나무들은 이제 없다. 내가 그곳을 떠나와서가 아니라 동네를 밀고 신도시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때 그 아파트 나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발코니의 자엽안개나무는 어쩌면 겨울 한 철 동안 경험해본 추위를 다시는 겪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마당이 있는 곳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는 가능하지 않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부디 자엽안개나무가 추위가 몰려왔을 때의 그 차가운 밤공기, 성장을 멈추고 숨죽이고 있을 때의 그 위축감, 혹은 다시 봄이 와서 마음껏 생장할 때의 눈부신 활력 모두를 오래오래 에너지원으로 썼으면 좋겠다.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각자 모두에게는 각자의 힘이 있는 법이니까. 이제 그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 봄에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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