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 집에는 해가 더 길게 들어온다. 늦게까지 햇볕이 그윽하게 들어차 있는 풍경을 어제 오후 의자에 앉아 지켜보았다. 발코니 문을 열면 더위도 없고 화살처럼 꽂히는 햇살도 사라진 11월을 맞아 식물들이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잎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와 다르지 않은 듯하지만 모든 식물들에게 변화는 조금씩 있었다.
그중 무늬싱고니움이 가장 크게 변했다. 옅은 노란색과 푸른색 그리고 흰색으로 마치 누군가 개성 있게 칠한 유화 같은 잎들을 보여주는 무늬싱고니움은 그간 빨래 건조대에 걸려 있었다. 그러다 건조대가 망가지는 바람에 바닥 생활을 시작했는데 전보다 훨씬 더 잘 자라고 있었다. 잎도 많아지고 무엇보다 이 식물의 가장 큰 특징인 변이 잎들이 늘었다. 그래서 건조대를 고치고 나서도 그냥 바닥에 둔 채로 기르고 있는 것이다. 좁은 발코니라 걸을 때 혹시 잎을 밟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아직은 무늬싱고니움도 나도 서로 잘 피하고 있었다. 햇볕을 잘 받으라고, 공기 중에 있으면 통풍이 잘될 거라고 걸어두었더니 그게 오히려 더딘 성장의 원인이었다니.
식물을 기르다 보면 세상의 많은 일이 내 지각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좋고 아름답고 생장이 계속될 수 있는 이유를 내가 다 알지 못한다는 것. 때로 그것은 나를 왜소하게 만들고 때로 그것은 어려운 순간들을 넘기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아침에는 물꽂이 해두었던 필로덴드론 베멜하(필로덴드론 스플렌디드) 삽수들을 살펴보았다. 세 개체인데 다들 넓고 짙은 녹색의 잎을 싱싱하게 피워 올렸다. 뿌리도 꽤 난 상태였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이제 흙으로 옮겨 심어도 될 것 같았다. 식물을 심거나 분갈이할 때 꽃집에 의뢰한 적이 없지만 이번에는 전문가의 손길을 빌리기로 했다. 지난여름 친구 쩡아에게 베멜하가 뿌리를 잘 내리면 심어서 선물하겠다고 했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그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개체들을 꼼꼼히 살펴보며 가장 버젓한 것을 골랐다. 큰 잎이 예뻐도 줄기가 기우뚱하게 뻗어 나간 것들은 도로 병에 꽂아두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고른 베멜하의 뿌리를 물에 적신 키친타월로 감싸고 보온을 위해 에어캡이 있는 책 봉투에 담았다. 집에서 마음에 둔 꽃집까지는 십 분 거리도 안 되지만 혹시 시들지도 모르니까 비가 오고 기온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으니까 나름 대비를 한 것이다.
집에 있는 식물을 밖으로 데리고 나간 적이 거의 없어서 몰랐는데, 마치 반려동물처럼 아끼고 보호하는 마음이 들어 놀랐다. 혹시 잎이 다칠까 가는 동안 바람이 불면 쭈뼛한 긴장이 들 정도였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겁을 내나, 집에 두 개나 더 있는데, 하면서도 조심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점심시간 즈음 찾아 들어간 꽃집은 꽤 바빴다. 사장님은 장미 다발을 만들고 있다가 내가 식물을 심어달라고 하자 봉투를 열어 확인했다. 순간 아직 심을 때가 안 됐다거나 뭔가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사장님은 “꽤 크네” 하더니 이만 하면 작은 화분은 안 되겠다고 말했다. 베멜하는 넝쿨을 만들며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에 나중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두는 편이 나았다. 나는 큰 토분을 골랐고 사장님은 먼저 들어온 주문을 처리해야 하니까 한 시간 후에 찾으러 오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럴게요, 그런데 작업하실 때 저한테 연락 주실 수 있을까요? 심는 걸 보고 싶어서요.”
“심는 걸 보고 싶다고요?”
이런 경우가 별로 없는지 사장님은 약간 놀랐다. 그러고 보면 식물 집사 생활을 수년째 하면서도 다른 이들이 식물을 다루는 건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은 책을 통해 읽었고 머릿속으로 상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그 과정이 궁금했다. 사장님은 그러면 먼저 분갈이를 해주겠다고 했다. 작업을 방해한 듯해 미안했지만 그냥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분갈이 과정은 집에서 내가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배수를 돕기 위한 망을 넣고 큰 마사를 밑에 깔고 흙을 넣고 다시 입자가 작은 마사로 마감했다. 사장님은 내가 초보 집사라고 생각했는지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분갈이를 했다. 가만히 지켜보니 마사를 나보다 많이 쓰는 점이 달랐는데 사장님은 “마사를 많이 쓰면 이렇게 포근해”라고 표현했다. 마사는 다들 아는 것처럼 돌이고 포근함은 돌의 물성과는 상관없는 듯한데 누군가 그렇게 말하니 정말 그렇구나 하며 마음이 갔다. 어느덧 이불처럼 보드랍고 따뜻한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잘 키웠다.”
사장님은 분갈이를 마친 뒤 화산석 두 개를 장식으로 놔주며 감탄했다. 며칠 동안 충충하게 흐려져 있던 내 얼굴도 그 말에는 어쩔 수 없이 환해졌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큼 위로가 되는 건 없기 때문이다. 지난주 이 꽃집 앞에는 10월 29일의 참사를 애도하는 흰 국화가 놓여 있었고 무료 나눔 한다는 안내가 적혀 있었다. 이곳은 내가 오래 기른 반려견을 잃었을 때 마지막으로 품에 넣어줄 꽃을 산 곳이기도 했다.
사장님은 집이 가까우면 이 채로 잘 안고 가라고 화분을 내게 안겼다. 그 가까운 길을 돌아오는데 아까와 똑같은 긴장이 다시 들었다. 쏟는 것 아닌가, 떨어뜨리는 것 아닌가, 이 찬바람은 괜찮은가. 그렇게 화분을 바싹 안고 걷는데 뭐가 걱정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포근한 마사로 뿌리를 잘 덮어두었는데, 정작 베멜하는 이제 흙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발가락 같은 뿌리를 꼼지락꼼지락하고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풀렸고 언젠가 봄의 등장으로 끝이 날 이 겨울이 마냥 막막하지만은 않았다.
김금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