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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MZ세대는 왜 추억의 캐릭터 ‘홀맨’에 빠졌을까

등록 2021-04-22 04:59수정 2021-04-22 09:33

세계관 가진 상업 캐릭터 눈길
‘빙그레우스’·‘건강수’ 등도 인기
경험과 재미 추구하는 MZ세대가
‘과몰입’ 부르는 서사에 매력 느껴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생계형 연예인’ 홀맨. 홀맨 제공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생계형 연예인’ 홀맨. 홀맨 제공

“지금은 감성 따윈 없잖아.” 지난해, 18년 전 유행한 캐릭터 홀맨이 홀연히 세상에 다시 나왔다. 최근 서울 강남구 강남역엔 삭막한 시절을 안타까워하는 홀맨의 광고가 걸렸다. 2000년대 초반 과거 엘지(LG)텔레콤의 광고 캐릭터로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던 홀맨은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6만명에 이른다. 팬들은 돌아온 홀맨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자신의 고민이나 오래전 추억담을 메시지로 보내곤 한다. 강남역 인근에 내건 광고판은 홀맨이 팬들의 환대에 고마운 마음을 담아 ‘역조공’한 것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홀맨의 팬들은 왜 가상의 캐릭터에 속내를 털어놓거나 공감을 보내며 열광하는 걸까. 홀맨 외에도 제과회사 빙그레의 ‘빙그레우스’, 동원샘물의 ‘건강수’등 ‘인플루언서’급 캐릭터들의 행보가 최근 눈에 띈다. 이들의 인기는 엠제트(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 태어난 이들)의 소비 특성에 기인한다. 새로운 경험과 재미를 추구하는 MZ세대는 특정 브랜드에 팬덤을 형성하며 놀이하듯 브랜드를 소비한다. 〈트렌드 코리아 2021〉는 이를 ‘씨엑스 유니버스’(Customer eXperience Universe)라고 명명하기도 했는데, “마치 마블 유니버스처럼 특정 브랜드의 세계관을 (소비자와) 함께 공유”하며 확장해나간다는 것이다.

제과회사 빙그레 인스타그램 계정의 주인공 ‘빙그레우스’. 빙그레 제공
제과회사 빙그레 인스타그램 계정의 주인공 ‘빙그레우스’. 빙그레 제공

실재하는 누군가의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치밀하게 구성된 서사는 사람들을 그 세계관으로 빠져들게 한다. 우리가 그동안 사랑했던 캐릭터들을 돌아보자. 스누피, 미키 마우스, 니모 등 자신만의 역사와 이야기를 가진 캐릭터들이었다. 홀맨의 재등장과 인기의 배경에도 촘촘한 서사가 뒷받침된다.

홀맨은 눈, 코, 입이 없는 둥글고 큰 머리가 포인트다. 어쩐지 우주인 같은 모습이 미래적이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둥근 체형은 귀엽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문구, 휴대폰 액세서리 등 각종 굿즈로도 활용됐던 홀맨은 10대들 사이에서 현재의 펭수, 카카오프렌즈 급으로 인기가 많았으나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팬들을 홀린 홀맨의 모험담을 계속 따라가 보자. 실종(?) 당시 지하철 구석에서 고장 난 24핀 충전기로 충전하다 방전된 홀맨은 이런저런 물건 사이에 휩쓸려 서울에서 가장 큰 벼룩시장인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까지 흘러갔다. 그곳에서 친구 ‘충저니’의 도움으로 20년 만에 긴 잠에서 깨어났다. 홀맨은 스마트폰의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부흥시키기 위해 인플루언서가 되기로 결심하고 에스앤에스(SNS) 계정을 만든다. 그렇게 그의 팬인 ‘홀짝’들과 소통하며 ‘생계형 연예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홀맨의 팬들은 추억을 회상하며 일상을 공유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홀맨아 나 기억하니? 나 19살에 네가 롯데리아 불고기 버거 세트 교환권 100장을 줘서, 수능치고 애들이랑 만날 롯데리아 갔어. 그때 정말 고마웠어!”

동원샘물의 신입 사원으로 설정된 ‘건강수’. 동원샘물 제공
동원샘물의 신입 사원으로 설정된 ‘건강수’. 동원샘물 제공

이렇게 하나의 세계 안에서 서로 소통하며 팬덤을 형성하는 사례는 홀맨 뿐만 아니다. 지난해 공전의 히트를 하며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15만명을 넘어선 빙그레 인스타그램 계정의 주인공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가 있다. 메로나, 와일드바디 등 빙과류가 강세인 ‘왕국’ 소속인 만큼 썰렁한 농담을 좋아한다는 게 그의 콘셉트다. 빙그레우스 외에도 촘촘하게 설정한 캐릭터가 사람들을 이 세계관에 빠져들게 한다. 낙농업자 ‘요맘때’, 야망 있는 ‘요플레 백작’, 오랜 세월 왕실을 보필해온 ‘투게더 리고리 경’ 등의 인물이 등장한다. 최근 시작한 시즌2에서는 왕위를 계승해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짐’으로 호칭을 바꾸고, 새로 등장한 악당 캐릭터인 9개 목숨을 가진 ‘빙9레’와 대결을 펼쳐나간다.

빙그레 SNS 담당자에 따르면 “시즌2 시작 직후 팔로워가 2천 명 증가하고, 새로운 캐릭터 등장 포스팅에 ‘좋아요’가 1만개 가까이 달리는 등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빙그레 계정을 방문한 팬들은 제품 문의를 할 때도 빙그레우스의 콘셉트에 따라 극존칭과 경어를 쓰고, 연예인에게 그러듯 팬아트를 만들어 사진을 찍어 보내주기도 한단다.

이달 초 등장한 동원샘물의 ‘건강수’ 캐릭터 또한 비슷한 경향으로 읽을 수 있다. 건강수는 조선 시대에서 2021년 서울 한복판으로 타입슬립한 인물로, 조선에서 팔도의 샘물을 맛보고 평가하는 물 감별사인 ‘품천가’로 활동했다. 그는 인간이 물의 정령이 지키는 샘터를 건드린 죄를 모두 짊어지고 미래로 날아왔다. 조선 시대 샘터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동원샘물 본사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인간계를 대표해 ‘열일’을 한다는 콘셉트다.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지미유. 유튜브 엠비씨엔터테인먼트 갈무리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지미유. 유튜브 엠비씨엔터테인먼트 갈무리

동원에프앤비 박세영 전략사업부 팀장은 “MZ세대는 자기가 만족하고 흥미를 느끼는 브랜드가 있으면 자발적으로 메시지를 전파하고, 공유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매력적인 화자를 통해 건강하고 좋은 물의 가치를 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건강수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실제 동원 본사 사무실 실제 사진을 배경으로 직접 회사에 출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사원증과 명함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MZ세대를 사로잡는 ‘○○ 유니버스’식의 세계관은 대중문화 콘텐츠를 중심으로 유행한 ‘부캐’(부 캐릭터) 바람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문화방송(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의 부캐가 미국 출신 연예기획사 대표 지미유라면, 최근 같은 프로그램에서 등장한 ‘유야호’는 유재석의 또 다른 부캐다. 한쪽 볼에 점을 찍고 등장한 유야호는 지미유의 다섯 쌍둥이 중 한명으로 ‘MSG 워너비’의 프로듀서로 데뷔한 인물로 설정했다. 코미디언 강유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강유미의 좋아서 하는 채널’에서 강유미는 가상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정해 1인극을 선보이며 자신이 연기한 인물들로 ‘유미 유니버스’를 구축한다.

이처럼, 흥미로운 세계관을 가진 가상의 캐릭터들은 산업, 문화 전 영역에서 세를 형성하고 있다. 다양한 세계관이 각축을 벌이며 공존하는 오늘을 언젠가 돌아본다면 대략 ‘캐릭터 우주 대전쟁의 시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홀맨에게 추억담을 보내는 누군가처럼, 나중에 우리는 어떤 우주에서 무슨 캐릭터를 추억하며 웃을 수 있을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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