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읽는 성인 독자가 늘고 있다. 하나의 작품이기도 한 그림책들과 그림책 읽기 관련 책들. 사진 각 출판사 제공, 그래픽 김은정 기자 ejkim@hani.co.kr
그림책의 독자층이 넓어지고 있다. 애초에 그림책이 타깃으로 하는 성장발달기의 어린이가 아니라,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그림책 읽기가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 20~30대 여성은 그림책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의 책을 읽는 독자들이기도 하다.
다만, 그들이 관심을 갖고 읽는 책의 범주가 그림책으로 확장되었다고 설명하는 편이 맞겠다. 육아를 하면서 아이를 위한 책을 고르거나, 조카를 위한 책을 찾는 식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림책의 독자가 되고 있으며, 성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모임에는 20~30대 여성뿐 아니라 전 연령대의 성인이 참여한다. 2008년에 TV예능프로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그림책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를 읽어주는 모습이 방영된 뒤 이 책이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에 재진입한 사례가 있었지만, 이제는 특정한 그림책에 대한 반짝 관심에 그치지 않는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라는 부제가 붙은 무루 작가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가 큰 호응을 얻은 것을 비롯, 〈마흔에게 그림책이 들려준 말〉 〈어른의 그림책〉 <좋아서 읽습니다, 그림책〉 등 성인을 위한 그림책 읽기 에세이도 여러 권 출간되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읽기 수업을 오랫동안 꾸려오다가 학생들의 성장과 더불어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모임을 하게 된 무루 작가는 최근 그림책 독자층의 확장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람 중 하나다. “그림책을 읽는 성인 독자가 최근 5~6년 동안 늘고 있다고 느낀다. 몇 가지 현상이 겹쳐있다고 보는데, 다양한 형태의 그림책 강좌들이 늘고, 한국 그림책 작가들이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을 비롯해 큰 상을 받는 사례가 꾸준하다. 성인 독자를 타깃으로 하는 그림책만 만드는 출판사, 그림책만 파는 작은 책방이 생겼고, 그림책을 만들고자 하는 창작자들도 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에 주목하는 분들이 많은 듯하다.”
성인의 그림책 읽기라는 현상은 그림책을 통한 자기 치유와 연계되어 큰 사랑을 받는 중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같은 이미지 중심의 에스엔에스(SNS) 플랫폼을 통해 책 중에서도 이미지가 선명한 읽기 경험 공유, 나아가 그림책 인기 이전에 있었던 컬러링북의 유행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일러스트레이션 수업의 확대 등이 상호 영향을 미친 결과로도 보인다.
더불어, 그림책 읽기는 전자책, 웹소설 등 읽기 플랫폼 자체가 종이에서 화면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종이책의 물성을 떼어놓고는 말할 수 없는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그림책은 작가가 담고자 하는 이야기에 따라 판형, 종이 재질과 표현 양식 등이 제각각이다. 그림책은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뿐 아니라 큰 책을 펼쳐 페이지 사이에 얼굴을 묻고 그림의 요소들을 하나씩 접하며 읽어야 한다.
카슨 엘리스의 그림책 〈홀라홀라 추추추〉의 그림. 웅진주니어 제공
그러니 그림책을 읽는 독법 역시 새로 배워야 한다. 김지은 아동문학 평론가는 “100세까지 그림책”이라고 할 정도로 성인 독자의 증가, 성인 독자를 위한 그림책 창작이 증가세에 있다고 말하며, “글씨가 얼마 없기 때문에 빨리 읽을 수 있다는 점도 그림책 인기에 한몫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미지에 많이 노출된다고 그림책을 잘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인 독자는 글자 중심으로 서사를 파악하는 데 익숙하지만, 그림책에서는 그림이 중요하다. 그림이 서사를 중요하게 담는 그릇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지은 아동문학 평론가와 무루 작가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그림책을 목적 중심의 독서로 활용하기보다 그 하나로 완성된 서사를 가진, 형식의 미학이 응축된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그림책 읽기 경험이 완성된다는 점이다. 자기표현 수단을 글자로 갖지 못한 어린이들은 세계를 상상하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성장기에 그림책을 접한다. 성인 독자들이 그림책 독서를 통해 마음을 위로받는다는 것은 독서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정서적 경험임이 틀림없지만, 그런 목적 중심적인 읽기는 오히려 그림책을 독립적인 창작물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내용을 파악했다고 읽기가 끝나지 않는 점이 그림책 읽기의 묘미다. 예술 작품을 대할 때 직관적으로 작품을 접한 뒤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며 분석적으로도 읽어보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참조하고, 때로는 완벽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작업은 비단 그림책 독서에 국한되는 감상 경험은 아니다. 다만 그림책은 유독 느린 독서에 적합하다. 글을 읽고 내용과 유사한 자기 경험이나 생각을 바로 끌어내는 대신, 책장에 그려진 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 머무르는 법을 익히다 보면 “좋은 그림책을 통해 시각적 경험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좋은 영화와도 비슷한 면이 있지만, 그림책은 정적인 화면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깊게 남아 시각적 환경이 변하게 된다. 그 환경 안에는 좋고 따뜻한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희로애락이 다 있어야 한다.”(김지은)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책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 목요일 제공
무루 작가와 김지은 아동문학 평론가에게 좋아하는, 추천하는 그림책이 있는지 물었다. 무루 작가는 요안나 콘세이요의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를 꼽았다. “작가의 자전적인 부분이 녹아 있는, 깊은 슬픔을 건네는 책이다.” 번역되기를 기다리는 작품들도 함께 언급했는데, 로이크 프루아사르의 〈내 산장〉(Ma Cabane)은 그림과 글이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선함 때문에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건축을 전공한 작가가 그림을 중심으로 인간 욕망을 해석해낸 마리노 아모디오의 〈테라 네오〉(Terra Neo)도 추천했다.
김지은 아동문학 평론가에게도 눈여겨보는 그림책에 관해 물었다. 카슨 엘리스의 작품들, 그중에서도 〈우리집〉〈홀라홀라 추추추〉, 그리고 아직 번역되지 않은 〈반쪽짜리 방〉(In the Halfroom)이다. “카슨 엘리스는 〈우리집〉에서는 집이 안정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을, 〈홀라홀라 추추추〉에서는 들리고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이 언어라는 생각을, 〈반쪽짜리 방〉에서는 결손이나 결핍 개념을 무너뜨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림책이 깊은 함의를 갖고 세계의 변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가다. 한국에서는 김동수 작가의 그림책을 좋아한다.”
이다혜 〈씨네21〉 기자·작가 apple@cin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