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사는 ‘경북상회(별명이다)’는 식물 집사는 아니지만 내가 식물 취미를 붙이는 데 꽤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보통 화원들은 도심보다는 외곽에 있기 마련이므로 경북상회가 운전을 나눠서 해주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포장, 식물을 사서 집까지 데려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지나 잎이 상하지 않아야 하는데 나보다 꼼꼼한 경북상회는 그 면에 있어 확실히 소질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어느 봄에 철쭉나무와 소형 코코넛나무까지 무사히 운반해왔다. 철쭉나무는 일산의 농원에서 사서 들였다. 1m가 조금 넘는 높이였다. 원래는 다른 나무가 사고 싶어 간 것이었는데 여의치 않았고 흰 꽃을 풍성히 달고 있는 철쭉나무를 경북상회가 마음에 들어 해 들이기로 한 것이었다. 방문하기 전 가본 농원 블로그에는 이런 자신감 넘치는 안내가 쓰여 있었다. ‘매장 방문 시 큰 나무들도 안전하게 실어드립니다. 일반 자가용에 2미터짜리 나무들도 다 실립니다!’ 자가용에 2m짜리 나무가 들어갈 수 있다는 건 상상이 잘 안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차창 밖으로 잎이나 가지가 혹은 둥걸(등치)이 빠져나와 있을 듯했다. 하지만 그런 장면 역시 그리 나쁘게만 상상되지는 않았는데, 옆 차선에서 창밖 풍경을 보고 있는 강아지들과 우연히 마주칠 때처럼 어떤 유쾌함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농원에서 만난 주인은 블로그 글처럼 활기찬 분이었다. 철쭉나무 가격을 물어보자 파는 건 아닌데 하다가 2만5000원을 불렀고 그러면서도 “얘가 어디가 빠져서 그 가격이 아니에요. 제가 오랫동안 다듬어 키운 녀석이에요!” 하고 강조했다. 철쭉나무는 수형이 숫자 8을 닮아 있었는데 자신이 손봐서 그처럼 만들었다고 했다. 주인이 철쭉나무를 판 건 자신이 미처 블로그에 ‘판매 완료’라고 알리지 못한 식물을 사기 위해 내가 먼 길을 왔기 때문인 듯했다.
그 철쭉나무가 우리 집에 와서 보여준 장면은 그해 발코니의 가장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분갈이는 반드시 스스로 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어느 밤, 철쭉의 화분 속을 꽃삽으로 헤집었는데 거기서 고요히 자고 있는 굼벵이들을 발견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소리를 지르며 놀랐지만 정작 굼벵이들은 그렇게 해서 자신을 덮고 있던 두툼한 ‘흙 이불’이 들춰진 걸 인지조차 못 하고 있었다. 몸을 말아 가만히 웅크리고 미래를 위해 지속되어야 할 단꿈을 꾸고 있었다.
굼벵이를 실제로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어둑한 발코니와 흰 꽃을 무성하게 달고 있는 철쭉, 그 철쭉의 발치에서 희고 희게 빛나는 굼벵이들. 나는 분갈이를 어떻게 계속해야 할지 갈등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적요로운 풍경에서 아주 특별한 감격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기관의 분화가 시작되기 전 최소한의 형태만을 갖추고 철쭉나무 뿌리 부근에서 계속되고 있는 굼벵이들의 깊은 잠이, 그 시간들이, 내 삶의 어떤 속도에 ‘잠시 정지’를 사뿐히 눌러준 기분이었다.
식물을 사러 간다는 건 보통의 다른 물건보다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준다. 대체로 가게에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한 자리를 차지했던 존재들이고, 식물을 파는 사람들 역시 그냥 진열만 해놓은 것이 아니라 힘과 에너지를 들여 돌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식물 가게 중에는 지독한 ‘식물 덕후’ 분이 하시는 곳도 있다. 몇 번을 가도 딱 필요한 만큼만 대화가 이어지던 시크한 인상의 사장님이었는데, 어느 날 내가 식물을 구입하면서 선물할 거라고 말을 흘리자 평소와 달리 열렬한 반응이 돌아왔다. 간단히 말해 그런 식물을 선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였다. 그전에도 식물을 샀고 심지어 그때보다 더 큰 식물을 들인 적도 있었는데, 그날의 반응이 단연 뜨거웠다.
처음에는 자신이 정성을 쏟은 식물이 누군가에 대한 감사 선물로 나가는 게 기뻐서 그러는 걸까, 싶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받는 사람이 부러워서였다. 와, 선물, 와 좋겠다, 하다가 함께 있던 자신의 가족에게 내게도 그런 식물 선물을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 하고 장난스럽게 압력을 넣을 정도로.
“이렇게 식물이 많으시면서 식물 선물을 받고 싶으세요?” 나는 약간 어리둥절해져 물었다. 그러자 그 가족은 “말도 마세요. 여기 매장에 있는 게 다가 아니에요”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일했던 사람인데, 어느 날 식물에 빠졌고 지독한 식물 덕후로서의 삶을 살다가 가게까지 열었다고 했다.
그렇게 마켓에 식물을 놓고 팔아야 하는 ‘오너’가 된 뒤에도 여전히 식물은 그에게는 애정과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선물’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것을 받을 사람에 감정이입했던 것이었다. 식물을 처음 받아 안고 집 안으로 가져가 기르며 잎 하나하나에 기뻐하는, 자신에게 익숙한 감격의 순간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에 떠오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상상의 끝은 얼마나 좋을까! 였고. 그제야 나는 매장에 나와 있는 식물 중 상당수가 어떻게 보면 그가 하는 수 없이 내놓은 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윽고 포장까지 끝내고 가져가야 할 때, 그는 식물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며 물주기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 식물은 정말 특별하게도 물이 필요하면 구근에 확연한 주름들이 생겨난다고, 그리고 사실 그 화분도 자기가 그 식물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을 고심하며 골랐다고.
“네, 선물 받을 사람이 구근 식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분이세요. 분명 잘 기를 테니 염려 마세요.”
나는 그의 상심을 덜어주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지금 내가 당신이 아꼈던 식물을 고사의 위험에 처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돌볼 만한 사람에게 가져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러니까 나 역시 식물의 경우 ‘식물값’을 치르고 상점에서 가져간다고 해서 거기서 끝나는 문제가 아님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전언이었다. 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은 그래도 9개월쯤 함께 지내봤으니 괜찮다고 아쉬움을 거뒀다. 그다음부터는 그의 가게에 있는 식물들이 그냥 허투루 보이지가 않았다. 모두 다 곁에 두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어 하나하나 내놓는 그의 고심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의 가게는 마켓이라기보다는 그가 식물을 기르고 ‘애정’하는 마음의 연장선이나 마찬가지였다.
경북상회와 내가 식물을 사러 가장 멀리까지 가본 건 집으로부터 차로 두 시간 반 거리였다. 각자 집에서 기르던 식물들을 내놓는 일종의 ‘플리 마켓’이 열려서 간 것이었다. 그날을 기다린 건 세상 어딘가에 있는 식물 집사들을 직접 만날 수 있겠구나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식물을 판매한다는 점에서는 여느 마켓과 다르지 않았지만 스스럼없이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현장이라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거기서는 “이게 뭐예요?”라는 질문이 전혀 부끄럽지 않게 나왔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모두 거쳐 왔을 시간들이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식물 집사라고는 나밖에 알지 못하던 경북상회는 그날의 마켓을 두고두고 신기해했다. 무엇보다 행운권 추첨 장면이 놀라웠다고 했다. 경품에는 심지어 고가의 커피 그라인더까지 있었는데 아크릴로 만든 미니 온실만 반응이 못했고, 열화와 같은 박수가 터져 고개를 돌려보니 자기가 보기에는 그저 예쁜 깻잎 정도로 보이는 식물의 당첨자를 향해 환호가 쏟아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중에는 진심을 담아 부러워했던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오늘 또 놀란 게 있어.” 주말이라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경북상회가 말했다.
“우리가 점심도 못 먹고 거기를 들어갔는데 네가 아랑곳하지 않고 식물들을 구경한 거. 원래 끼니를 절대 거르지 않잖아.”
“그렇지, 그런 일은 거의 없지.”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 나는 네가 진즉에 나와 밥을 먹자고 할 줄 알았어.”
그제야 4시가 다 되도록 허기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식물들을 구경하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고 즐기는 사람들 곁에 있느라. 그 말을 듣자 정말 내가 ‘마켓’을 다녀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몇 포트의 화분뿐 아니라 흠뻑 빠져들 만한 순간들을 누리고 왔구나 하는. 지금은 비록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시간, 봄을 잘 맞이하기 위해 관계를 잠시 멈추고 겨울을 버텨내야 하는 시절이지만 괜찮은 날이 오면 나는 다시 마켓에 갈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람을 만나고 무언가를 돌보고 아끼는 법을 확인하고 돌아와 나 역시 그 마음으로 식물을 심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바로 그 힘을 서로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마켓’에서 만나는지도 모르겠다.
김금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