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은 대기자가 많았다. 난 시간이 없었다. 불현듯 동네 골목 ‘이발소 싸인볼’(원통형 회전 간판)이 떠올랐다. 즉흥적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난달 7일 생전 처음 이발소에 갔다. 나도 모르게 강렬한 기분 전환을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앞 면도는 안 됩니다.’ 정면 거울, 에이포(A4) 종이에 고딕체로 쓴 문장에 압도당했다. 주인장의 고집이 느껴졌다. “옆머리 허옇게만 밀지 마시고요. 그냥 짧고 깔끔하게 깎아 주세요.” 미용실 의자에 앉으면 늘 하던 말을 기계적으로 읊었다. 미용실에선 그 뒤로 일사천리였다. 이발사는 달랐다. “옆머리를 자르긴 자르라는 말이죠? 옆머리 숱이 거의 없는데….” “아 그럼 조금만 잘라 주세요.” “아 근데 옆머리 숱이 거의 없는데….” 이발사가 고집을 부렸다. 난 결국 “옆머리 많이 안 남기셔도 돼요. 너무 흉하지만 않게 해주세요”라고 한발 물러섰다. 이어 그의 한 마디. “확 잘라부러?”
‘서걱서걱’. 가위질 소리가 유난히 컸다. 거울에 비친 그의 손은 확연히 떨렸다. ‘설마 귀를 자르진 않겠지.’ 난 눈을 질끈 감고 마음을 다스렸다. 미용실에선 보통 뒷머리부터 다듬었다. 이발사는 앞머리부터 잘랐다. 앞머리 두 뭉텅이가 잘려나갔다. 20분쯤 지났을까? “너무 짧아요?” 그 말에 눈을 떴다. 깜짝 놀랐다. ‘대만족’이었다. 난 숱을 좀 더 쳐달라고 했다. 그가 응수했다. “지금 머리에 붙어있는 털보다 바닥에 떨어진 털이 더 많아요.” “그런가요? 하하하.” 우린 동시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자외선 소독기에서 면도칼을 꺼냈다. 돈가스 전문점 나이프를 닮은 칼이었다. 칼이 닿기도 전에 모공이 솟아올랐다. 떨리는 손으로 잔털 손질을 마친 그가 말했다. “깔끔하고 예쁘네.” 난 그제야 맘이 놓였다.
이발소엔 카드 결제기가 없었다. “집이 바로 앞인데 금방 갔다 올게요!” 난 기분 좋게 말했다. 이발사는 경계했다. “그냥 가면 안 되지. 뭐라도 놓고 갔다 와야지.” 내가 당황한 듯 망설이자 그가 한마디 보탰다. “그렇게 말하고 다시 안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난 반팔 티셔츠만 입고 한겨울 집으로 달려야 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