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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맛도, 가격도 변하지 않는 식당은 …있다!

등록 2020-12-03 07:59수정 2020-12-03 09:55

감태로 감싼 ‘송로버섯 관자 구이’. 사진 백문영 제공
감태로 감싼 ‘송로버섯 관자 구이’. 사진 백문영 제공

“이곳의 음식은 늘 변하지 않아서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식당 목록을 가지고 있는 이가 늘 부러웠다. 사람도, 사랑도 계속 같을 수는 없다는 진리를 알고부터 ‘맛도, 가격도 변하지 않는 식당은 없다’고 단언했다. ‘요수정’을 알게 되면서 이런 생각은 가차 없이 깨졌다.

‘나만 빼고 모두 아는 맛집’이라고 불리는 요수정은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 건너편 골목에 있다. 마음먹고 찾아가지 않으면 좀체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있다. 지하철 타고 1시간, 마을버스 타고 10여분, 도보로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마주치는 이 가게에 무에 특별한 것이 있어서 친구들이 그렇게 칭찬하는지 궁금했다. ‘어디 얼마나 맛있는지 두고 보자’는 쓸데없는 승리욕까지 생겼다.

작은 테라스 석을 지나 들어간 레스토랑 내부는 소담하고 단출했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주방 안에는 이곳의 오너 셰프와 수셰프가 조용히, 그리고 잽싸게 움직이고 있었다. 메뉴를 주문할 필요도 없었다. 요수정의 저녁 메뉴는 당일 주인장이 구한 식재료로 구성한 ‘요수정 맡김 코스’이다. 요즘 고급 정찬 업계에서 유행하는 오마카세(주인이 알아서 음식을 주는 방식)라 생각하면 하수다. 식재료에서만은 유난히 엄격한 주인장이 매일매일 다르게 구성하는 코스다. “이러다가 나만 죽어나겠다”는 수셰프의 웃음 섞인 고단한 불만은 어차피 남의 일이다. 손님 입장에서야 이런 유난스러운 성격이 오히려 고맙다. 멜론과 프로슈토로 시작해 물오른 대방어, 감태로 감싼 ‘송로버섯 관자 구이’, 양갈비구이 등. 쉼 없이 휘몰아치는 9가지 코스에 마음도 위장도 쉴 새 없이 흩날렸다. 실컷 먹고 3만원을 내미는 손이 못내 부끄러웠다.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중식 노포(오래된 가게) ‘안동반점’ 역시 변치 않는 맛으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40여년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낡은 간판과 실내 인테리어만으로도 고량주 한 병은 거뜬히 마셔버리게 된다. 볶음밥을 함께 주는 잡채밥과 해물이 가득 들어간 삼선짬뽕, 5000원이라는 가격에 빛나는 짜장면 등 정겹고 익숙한 메뉴가 가득하다. 불 맛 가득 밴 잡채밥도, 달곰하고 고소한 짜장면과 새콤하고 바삭한 탕수육도 맛있다. 그 옛날 맛 그대로 예상한 대로라서 반갑고 든든하다.

사실, 변한 것은 나였을 거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식당은 늘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마음가짐과 변하지 않는 맛으로 날 기다렸을 테다. 갑자기 차가워진 바람을 맞으며 오늘도 오매불망 양갈비구이와 잡채밥과 짜장면을 그리워한다.

백문영 전 <럭셔리> 리빙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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