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커머스는 판매자와 소비자가 실시간 댓글로 소통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휴대전화 화면 가득 빨간 사과가 채워졌다. 화면 속 배경은 경기도 가평 북면에 위치한 한 사과농장. 현장은 곧 시작한 라이브커머스(인터넷 생방송을 통해 판매자와 소비자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물건을 사고파는 방식의 전자 상거래) 진행 준비로 분주했다. 지난 2일 오후 , 네이버 라이브커머스 채널인 ‘쇼핑라이브’와 서울시 ‘상생상회’가 공동 기획한 ‘수해농가 응원 라이브 가평 사과 기획전’ 생방송 촬영 현장을 찾았다. 행여 잡음이 들어갈까, 모두 숨죽인 가운데 시계가 오후 3시 정각을 알리자 총 5명 스태프 중 한명이 수신호를 했다. 사과밭 가운데 선 쇼호스트가 정적을 깨고 방송을 시작했다.
“여러분, 어서 오세요! 지금 구매하시면 산지에서 그대로 보내드리는 농산물을 받아보시는 겁니다. 구매하시면서 저랑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어요!” 판매자와 소비자는 실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휴대전화 화면에는 “고고”, “시작하나요”, “사과가 맛있어 보이네요, ‘라방’(라이브방송) 가나요” 등 소비자의 댓글이 쏟아졌다.
라이브커머스는 티브이(TV) 홈쇼핑의 인터넷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점은 홈쇼핑에 견줘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물리적 공간만 온라인일 뿐, 정서는 묘하게 아날로그적이다. 사람들이 랜선을 타고 북적였다. “크기는 좀 어떤가요?” “당도는 어떻게 되나요?”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가 하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사과예요”, “사과 깎기는 귀찮지만 정말 좋아해요” 등의 때아닌 수다도 쏟아졌다.
지난 2일 네이버 ‘쇼핑라이브’ 생방송을 진행 중인 김채윤 쇼호스트.
소비자와 판매자의 실시간 소통은 기존의 홈쇼핑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이날 방송을 진행한 김채윤 쇼호스트는 티브이 홈쇼핑과 라이브커머스를 비교해 “라이브커머스는 댓글로 소통이 가능하다 보니 준비된 내용과 다르게 진행이 되기도 하고, 진행자 입장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맥락을 이해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들이 친근하게 느끼고, 구매를 하든 안 하든 콘텐츠로 재밌게 보는 분도 많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명철 네이버 푸드 사업 매니저 또한 “판매자가 소비자의 질문을 듣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다 보니 기존의 홈쇼핑 형식보다 생동감 있고 재미가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방송 진행만 지켜봐도 마실 삼아 쇼핑을 나온 듯 재미가 있었다. 귀에 착착 감기는 달변의 진행은 어릴 적 시장 구경 온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사과의 당도를 확인해달라는 댓글 요청에, 앞에 놓여 있던 사과를 즉석에서 집어 들어 쪼갤 때는 긴장감마저 들었다. 쇼호스트가 “14.3브릭스입니다. 여러분!”이라고 외치자 댓글에 환호성이 쏟아졌다. 동시에 판매 그래프도 더 급하게 치솟기 시작했다. 티브이 홈쇼핑이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쇼라면, 라이브커머스는 오프라인 매장을 모바일 등의 화면 속으로 끌어다 놓은 느낌이다.
이와 관련해 기존 티브이 홈쇼핑 채널인 씨제이(CJ)오쇼핑 관계자는 “티브이 홈쇼핑은 방송 심의 규제도 강하고, 방송 진행 방식, 쓸 수 있는 멘트도 정해져 있는 편인데, 라이브커머스는 규제에서 자유롭다 보니 비(B)급 감성이 더해지기도 하고, 잘 아는 친구가 상품을 써보고 알려주는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비교했다. 예를 들어 화장품 등의 경우 티브이 홈쇼핑에서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결과에 관해서만 설명해야 하지만, 라이브커머스의 경우 “이 제품 사용하고 피부 좋아졌다는 말 정말 많이 듣는다. 여드름이 쏙 들어갔다” 등 개인 경험에 비춘 설명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TV홈쇼핑과 다르게 휴대폰 한 대로 촬영 중인 라이브커머스 현장.
언제,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는, ‘온택트’(Ontact, 비대면 시대에 온라인으로 대면한다는 뜻의 신조어)가 가능하다는 것도 라이브커머스의 특징이다. 이날 사과밭 한가운데서 방송을 진행한 김채윤 쇼호스트는 “전국에 물건을 팔러 다니는 보부상이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케이(K)홈쇼핑 채널 소속으로 일하다 2017년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라이브커머스 방송을 시작한 그는 경기 북부 산골부터 울릉도까지, 전국 각지 특산물을 팔러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다. 그는 “산지의 현장감은 스튜디오 방송과 비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명철 네이버 매니저는 “산간 오지부터 자기 집 주방까지, 어디서든 장을 열 수 있는 게 라이브커머스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판매자에게는 그동안 닿은 적 없던 소비자와 연결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이날 현장에는 올여름 긴 장마로 미처 여물지 못한 사과가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30% 정도 덜 큰 크기에 상품성이 떨어졌다. 새콤달콤한 맛이나 아삭한 식감은 여느 해에 뒤지지 않았는데, 판로가 여의치 않아 농장주 김근재씨는 답답했다. 김씨는 매년 사과를 소매점에 넘기지 않고, 단골들에게 택배로 부치거나 차를 가지고 길가에서 직거래로 판매해왔다. 수해 피해 이후 답답해하던 와중에 지역 중∙소농 판로를 지원하는 서울시 ‘상생상회’와 연결됐다. 최근 상생상회는 네이버 쇼핑라이브, 씨제이(CJ)올리브네트웍스 등과 손잡고 수해 피해를 당한 지역 농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시도를 하던 터였다.
김씨는 “직거래를 할 때는 창고에서 사과 꺼내 택배용으로 포장하고, 배송하느라 매일 너무 바빴는데, 이렇게 하루에 왕창 팔아버리면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고 말했다. 1시간 동안 약 500박스가 팔렸다. 예고편을 통해 접수된 수량도 200박스 있었다. 한 박스당 5kg이니 사과 3500kg을 몇 시간 만에 판 것이다.
이렇게 농장주가 얻은 여유는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혜택으로 돌아간다. 김근재씨는 이날 사과를 평소에 견줘 20% 정도 저렴한 가격에 팔았다.
언제, 어디서든 다음은 ‘누구나’다. 김씨의 경우 라이브커머스와 농장주를 중계하는 상생상회가 있었지만, 온라인 환경에 익숙한 판매자라면 직접 판매에 나설 수도 있다. 거창한 장비도 필요 없다. 소비자도 간편하다. 그저 휴대전화를 켜고 판매자가 방송을 시작한 각종 에스엔에스 라이브 채널에 접속하면 된다.
라이브커머스는 산지에서 판매자가 직접 판매를 하기도 한다.
20년 홈쇼핑 방송 경력을 가진 이현숙 쇼호스트는 자신의 책 <라이브커머스 성공 전략>에서 “요즘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등의 에스엔에스뿐만 아니라 플랫폼 회사가 잘 만들어 놓은 툴을 이용하면 휴대전화 하나로 방송을 하며 얼마든지 내가 팔고 싶은 상품을 마음껏 판매할 수 있다”며 ‘1인 판매 방송 셀러(판매자)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고 설명한다.
손바닥 안에서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작은 장터, 언제,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고,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이 시장의 물결은 어디까지 가닿을까.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라이브커머스 시장이 팽창하고 있고, 국내 시장 또한 넓어지는 추세라고 한다. 그립, 잼라이브 등 라이브커머스 전용 앱부터 기존의 유통 플랫폼 등도 하나같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라이브커머스 인플루언서 아카데미’를 열고 지난 7월 수강생을 모집하기도 했고, 쿠팡은 지난 9월 라이브커머스 관련 경력자를 대규모 채용했다. 씨제이(CJ)오쇼핑은 최근 쇼호스트 아카데미 교육 과정 가운데 라이브커머스에 특화한 쇼호스트 수업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