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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아빠가 준 핼러윈 사탕에 독이? 지옥은 가까이에 있었다

등록 2020-10-29 08:59수정 2020-10-29 09:49

그림 김태권
그림 김태권

무시무시한 거리의 풍경. 10월이 되면 무서운 차림새의 어린 친구들을 자주 만난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덜한 편이다. 귀여운 마녀, 뱀파이어, 늑대인간, 좀비, 유령과 악마와 마주친다. 이 무서운 친구들이 이승에 나와 있다니, 지옥은 이맘때면 텅텅 비는 걸까?

생각해보니 지옥이 빌 것 같지는 않다. 죽음과 지옥을 연상시키는 존재지만 정작 저 친구들 가운데 지옥에 ‘사는’ 존재는 없다. 악마는 지옥의 거주민이라기보다 관리인이다. 마녀와 늑대인간은 안 죽었고, 유령과 좀비와 뱀파이어는 죽고도 지옥에 안 가는 존재다. 핼러윈 호박 등불을 뜻하는 ‘잭오랜턴’의 유래가 된 ‘구두쇠 잭’은 지옥에라도 가고 싶지만 지옥에서도 거부당한 친구다. 무서운 이들이 모여 있는 무서운 장소는 지옥이 아니라 이승인 셈.

의외로 무서운 의상을 많이 입지는 않는다고 한다. 미국소매협회(NRF)의 2019년 자료를 보니, 어린이들이 제일 즐겨 하는 분장은 공주와 슈퍼히어로라고 한다.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가 2.2%고 그 외의 공주가 7.9%다. 스파이더맨 5.2%, 나머지 어벤져스가 3.9%, 배트맨 3.5%에 기타 슈퍼히어로가 6%다. 어른은 마녀 분장(8.9%)이 많다고 한다.

외국도 점잖은 분들은 ‘핼러윈에 악마 숭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가 보다. 오스트레일리아 매체 <더 컨버세이션>에 실린 신학자 로빈 휘터커의 칼럼에 따르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크리스트교 전통에서 핼러윈은 죽은 사람을 기리는 날이다. 세상을 떠난 크리스트교 신자 이야기다. 결국 누가 이승의 고향에 온다 해도 지옥이 아니라 천국에 있던 사람일 터이다.(저승이건 이승이건 하루하루가 힘든 사람은 고향 방문도 힘들다.)

나는 예전에 핼러윈을 안 좋아했다. 종교적 맥락 없이 외국 명절이 늘어나는 것 같아 불만이었고, 지나친 상업성도 불편했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은 싫지 않다. 아이들이 좋으면 어른도 좋은 거다. 코로나 때문에 외출도 마땅치 않은데, 집에서라도 마녀 망토를 두르고 좋아하니 감사한 일이다. 게다가 핼러윈이 아니라면 싫어만 했을 거미나 상어나 박쥐도 좋아하게 되어 다행이다.

그래도 지독한 상업성이 거슬릴 때는 있다. 미국에서 핼러윈은 상업적으로 두 번째로 큰 명절이라고 한다. 첫 번째는 물론 크리스마스다. 아무려나 핼러윈이 지금처럼 보편적인 명절이 된 것도, 1950년대에 미국 제과업체들이 대목을 노리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라나.

그전에는 아이들에게 직접 구운 쿠키와 케이크를 주었다고 하니, 모든 집이 챙기긴 어려웠겠다. 사탕을 사서 주면서도 한동안은 정성을 보인다며 포장을 까서 주었던 것 같다. 1970년대를 지나며 포장한 채로 주는 풍습이 생겼다. 아니, 포장을 뜯지 않아야 아이들이 안심하고 받아갔다. 아이들 사탕에 어른이 독을 넣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1974년에는 텍사스의 여덟살배기 어린이 티머시 오브라이언이 핼러윈에 사탕을 먹고 숨졌다. 청산가리가 들어있었다. 아버지 로널드 오브라이언이 보험금을 노리고 저지른 범행이었다. 교회 집사였던 그는 큰 빚을 진 후 자기 아들딸의 생명보험을 들었다. 자신의 두 아이와 이웃집 아이들에게 독이 든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사탕을 받고 기뻐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쓰라리다. 이승의 악이 상상 속 지옥보다 끔찍한 또 하나의 예다.

김태권(지옥에 관심 많은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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