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 가면 우리는 세입자가 되리라. 그 관리인 또는 건물주는 사탄이다. “지옥 원룸에 입주한 나, 어느 날 집을 나서다 차가운 인상의 미남 건물주를 만난다. 그 이름은 사탄.”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정이다. 그런데 사탄은 과연 미남일까?
서양미술 전통에서 악마는 대개 못생겼다. 히에로니무스 보스(보슈)가 16세기 초에 그린 <건초수레 제단화> 귀퉁이에 보면 추락하는 악마들이 나오는데, 볼품없는 몸매에 날벌레의 날개가 달려있다. 피터르 브뤼헐이 1562년에 그린 <반역한 천사의 추락>을 보면 악마는 벌레며, 물고기며, 개구리며, 사람이 뒤죽박죽 섞인 모습이다. 개성 있고 재미있다. 예쁘지는 않다.
옛날에는 달랐다. 이탈리아 라벤나에 있는 산타 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의 모자이크 벽화 연작은 6세기에 제작되었다고 알려졌다. <최후의 심판>이란 작품이 있다. 신이 가운데 앉고 두 ‘천사’가 뒤에 섰다. 신 오른쪽에는 붉은 천사와 양이, 왼쪽에는 푸른 천사와 염소가 있다. <신약성서>를 보면 최후의 심판 날에 신이 “천사와 함께 와…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둘 것”이라고 했다.(마르코복음 25장 31-33절) 양은 천국이고 염소는 지옥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염소와 함께 선 천사는 사탄이 아닐까? 이 푸른 천사가 서양미술 최초로 그려진 악마라는 이야기가 있다. 붉은 천사보다 얼굴이 곱다. 미남이다.
사탄은 추남일까? 미남일까? 못생겼다고 보는 근거는 이렇다. 악마는 나쁘고 불쾌한 존재다. 옛날 사람들은 ‘악’(惡)과 ‘추’(醜)를 애써 구별하지 않았다. 반대로, 잘생겼을지도 모른다. 신한테 대들다가 지옥으로 쫓겨나기 전까지, 악마의 전직은 천사였다. 천사가 미남이라면 악마 역시 (적어도 한때는) 미남이었을 터다. 또 유혹은 악마의 현재 직업이다. 미남미녀가 추남보다 유혹하는 일을 더 잘할 것 같다. 프랑스 화가 알렉상드르 카바넬은 1868년에 “타락천사”를 근육이 예쁘게 잡힌 꽃미남으로 그렸다.
이 문제에 관해 17세기 밀턴의 <실낙원>은 흥미로운 텍스트다. 작품 뒷부분을 보면,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게 만든 다음 사탄과 악마들이 모여 잔치를 연다. 그러다가 바닥에 엎어져 못생긴 모습이 된다. “얼굴이 오그라져 야위고 모가 나고 팔은 갈비뼈에 달라붙고 다리는 서로 꼬이고 드디어는…기괴한 뱀이 됨을 느끼고 반항했지만 헛된 일이었다.”(10권 509행 이하) 인간을 타락시킨 일에 대해 신이 벌을 내린 것이다. 아무려나 이 작품 앞부분에서 사탄은 멋있고 매력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카바넬의 그림도 <실낙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실낙원>은 고대의 서사시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 주인공인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와 같은 고전적 영웅에 가장 가까운 면모를 사탄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고 경북대 최재헌 교수는 <다시 읽는 존 밀턴의 실낙원>에 썼다. 비록 뒤에 가면 사탄 역시 성격도, 외모도 못난 존재가 되지만 말이다.
21세기에는 악마도 죄다 미남미녀다. 뱀파이어도 미남미녀다. 좀비도 언젠가부터 ‘훈남’으로 바뀌나 보다. <해리포터>의 악역 볼드모트도 새 영화에서 꽃미남으로 나온다나. 다만 좀비도 잘생겨야 주목받는 이 외모지상주의 세상은 왠지 지옥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네가 못생겨서 그러는 것”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하신다면, 별수 없다, “그러는 독자님은!”이라고 나도 받아칠 수밖에.
김태권(지옥에 관심 많은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