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지구를 휩쓴 기이한 유행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 사실은 그 유행의 시초를 조사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지. 이렇게 단기간에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인 유행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건 이미 우리의 일상으로 깊이 침투해버렸으니까. 마치 아침에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고 잠들기 전에 유튜브를 보며 낄낄거리는 것처럼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거야. 처음에는 반감도 샀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지. 만약 내 말을 듣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높은 확률로 당신도 이미 그것을 받아들였거나, 최소한 그것을 자연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
‘이상한 유행’에 관해 말하자면 끝도 없겠지.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재미있는 유행들을 말해준 적이 있어. 어떤 유행이 시작될 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일단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할아버지는 보통 후자였다고 해. 친구들이 과격한 춤을 추거나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는 영상을 촬영해서 공유할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대단히 난감했다는 거지. 한 번은 ‘슬라임’이라고 불리는 장난감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는데, 폴리비닐알코올이나 구아검에 붕사를 섞어 만든 점토 형태의 장난감에 색소를 넣거나 온갖 장식물들을 올린 것이었지. 질감에 따라 만지면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나고, 손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떨어지고, 좋은 향이 나기도 하는 물건이었어. 그 무렵에는 슬라임을 만지작거리는 영상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어. 그게 다소 괴상한 유행처럼 보였다고 할아버지는 말했어. 사람들이 반짝이고 물컹거리는 것을 주물 대는 영상을 너도나도 찍어 올리는 그 상황이, 그러면서 ‘마음이 평화로워진다’고 말하는 것이 할아버지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이야. 그건 그냥 물렁물렁하고 뽀드득거리는 장난감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할아버지의 책상 위에도 ‘그것’이 올라와 있었어.
“그러네요. 정말 이상한 유행이었네요. 그런데, 할아버지.”
나는 머뭇거리다 물었지.
“그럼 혹시, ‘코코’는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셨나요? 코코도 그런 것일 수 있잖아요.”
내 질문에 할아버지는 갑자기 차가운 표정을 하더니 “아니,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 하고 싸늘하게 대답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는, 고개를 돌려 코코를 보았어. 그리고 환하고 천진한 웃음을 지었지. 나는 할아버지가 그런 웃음을 짓는 것을 본 적이 없었어. 그 행복감이 가득 담겨 있는 웃음, 사람들이 코코를 볼 때 짓는 웃음이야말로, 깨어난 이후에 내가 가장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었지.
*
나는 3년의 시간을 건너뛰었어. 내가 무슨 시간여행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3년의 시간을 잃어버렸다는 말이야. 스물네살, 첫 출근길에 트럭에 치였고,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어. 가족들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지. 처음 깨어났을 때, 나는 내가 여전히 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어. 잠에서 깨어난 꿈을 꾸고 있다고. 깨어난 이후에도 나는 일주일을 헛소리만 해댔어. 그러다가 겨우 정신이 들었을 때, 내 옆에는 언니가 내 손을 잡고 있었어.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지.
“언니, 대체 이게 다 뭐야? 내가 뭘 잘못 보고 있는 거야? 눈이 이상해졌나? 나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언니는 처음에는 내가 제대로 된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고, 다음에는 내가 왜 그러는지 알고 싶어 했어.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보고는 언니가 속상한 표정을 했지.
“왜? 뭐가 그렇게 이상해, 유나야. 다 말해줄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네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는데.”
“아니, 언니, 그게 아니라…. 저거 말이야. 저것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병실 선반을 가득 채운 ‘그것’들을 가리켰어. 언니는 아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것들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지.
그것들의 이상함을 쉽게 눈치챘던 건 대부분 사람들과 달리 내가 시간을 건너 뛰어왔기 때문인지도 몰라. 그리고 깨어난 이후에도 한참 동안 아직 내가 이상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어. 잠들기 전의 세계와 잠들었다 깨어난 이후의 세계에는 결정적으로 달라진 한 가지 요소가 있었는데,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 그게 괴이하다고 생각하는 건 오직 나뿐인 것 같았거든.
퇴원 절차를 밟고 집에 오는 길에도, 현관문을 열었을 때도 내 시선이 닿는 곳 어디에나 그것들이 있었지. 내가 너무나 경악했던 탓에 가족들은 나를 걱정했지만, 그것을 절대로 치우지는 않았어. 나는 적어도 내 생활 반경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내 방에서는 제발 치워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어.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주인이 없던 내 방은 이제 빈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빼곡히 그것들로 채워져 있었거든.
코코. 인간과 가장 친밀한 반려동물들의 이름을 빼앗고 그 자리를 차지한, 외계에서 온 식물들.
*
뉴-스카이랩이 외계 생명체가 산다는 세개의 후보 행성을 선정하고 그곳으로 출발했을 때, 전 세계의 사람들이 열광했어. 두개의 행성에서는 결국 약간의 아미노산과 유사 단백질 분자만을 발견했을 뿐 생명으로 보이는 것은 없다는 관찰 결과가 지구로 전송되었을 때, 사람들은 조금 실망했지. 그 분자들은 이미 화성이나 목성의 위성에서도 발견된 적 있었던 것이었으니까. 남은 건 하나의 행성뿐이었는데, 이상하게 그쪽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어. 탐사대가 사고를 당했거나 혹은 통신 문제가 생겼으리라고 다들 추정했지. 그게 내가 스무살 때의 일이었어.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첫 취업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길에 서둘렀다가 트럭에 치여 날아갈 때까지만 해도, 세 번째 행성으로 향한 탐사대에게서는 소식이 없었어.
그들이 코코를 데리고 돌아온 건 내가 잠들어 있을 때였어. 엄마와 아빠는 딸을 영원히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우고, 언니는 그런 부모님의 유일한 딸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놓고 울지도 못하던 그 시기에, 병실 텔레비전을 통해 긴급 속보가 전해졌지. 뉴-스카이랩 3호선과의 극적인 통신 재개, 그리고 지구로의 귀환. 구조대가 먼저 바다 한가운데 떨어진 탈출포드를 구해 탐사대원들의 생존을 확인했고, 그들은 쏟아지는 조명과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구조선에서 육지로 걸어왔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눈이 그들을 향하고 있을 때, 구조선에 있던 탈출포드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어. 열 몇 명의 헤실거리는 과학자들과 ‘그것’들로 가득한 포드가 생중계로 전 세계에 방송되는 동시에, 너무나 행복하다는 듯이 활짝 웃는 과학자 한 명이 그것을 기자들 앞에 내밀었지.
“여러분. 우리는 지구를 바꿀 위대한 발견을 했습니다.”
그 생물의 모습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축축한 이끼가 뭉쳐진 거대한 모스볼 같기도 하고, 초록색 털실이나 눈 없는 햄스터 같기도 하고, 진녹색의 촉수를 사방으로 뻗친 말미잘 같기도 하고, 거대한 녹색 공벌레 같기도 해. 분명한 건 지구의 생물에는 그것을 완전히 빗댈 이름이 없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 그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환각을 유발한다는 것이지. 처음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간 방송을 통해 그것을 본 사람들은 다들 비명을 질렀어. 잠시 뒤에 생중계 송출이 뚝 끊겼지.
뉴-스카이랩 탐사대원들은 외계에서 무엇을 발견하더라도 그것을 인류 공동의 합의 없이는 지구 궤도 안쪽으로 절대 들이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출발했어. 비록 가져오는 것이 단지 미생물 하나여도 인류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지키지 않는다면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지. 그런데 모든 탐사대원들이, 그리고 심지어 그들을 처음 발견한 구조대들마저 그것의 반입을 묵인한 거야. 탐사대원들은 순식간에 경찰들에게 체포되었고, 대원들을 구조한 구조대도 함께 격리되었어. 처음에는 대원들이 입었던 옷, 가져온 물건, 탈출 포드는 물론이고 그리고 그 우주선에 득시글거리는 징그럽고 괴이한 녹색 덩어리들을 태워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이틀이 지나자 어떤 사람들은 차분히 이성을 되찾기 시작했어. 과학자들은 ‘학술적 목적’으로 철저히 제한하여 탐사대원들이 가져온 외계 식물들을 연구할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했지. 인류 지식의 최전선에 나섰던 사람들마저 속절없이 매료되는 이 식물의 정체는 무엇인지, 다들 알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3년이 흐른 지금, 이제 코코를 기르지 않는 사람은 없지. 나처럼 과거에서 온 사람들이나, 갓 태어난 아기들을 제외하고는.
*
톡소플라즈마 포자충은 쥐의 뇌를 영구적으로 변화시키지. 톡소플라즈마증이 나타난 쥐들은 겁을 잃고 고양이에게 매료되고, 고양이의 냄새를 두려워하지 않게 돼. 쥐는 자발적으로 먹이가 되고, 기생충을 전파하는 매개로 복무하게 되는 거야.
코코들이 발산하는 물질이 단지 우리의 뇌를 교란하는 화학물질에 불과한지, 아니면 그보다 더 정교한 무언가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이어지고 있어. 과학자들은 그것들이 자신을 퍼뜨리는 생존 전략이자 번식 전략의 일부라고 추정하고 있어. 그 중대한 발표가 세계로 중계되던 날, 사람들이 코코를 끌어안은 사진을 올리며 했던 말들을 나는 기억해.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린 예전보다 행복해요. 이 작은 친구들이 우리의 옆에 머물러 주기에, 인류는 더 이상 우주의 외로운 먼지 조각들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코코를 쓰다듬고 만지고 껴안으며 행복감을 느끼지. 이제 모든 사람이 코코를 사랑해. 코코는 가장 인기 있는 반려종이 되었지. 그것들은 움직이지 않는 식물에 가깝지만 그것을 사랑하는 인간들에 의해 아주 멀리 가고 있어. 열대우림 한가운데에서, 화산 분화구에서, 소금 호수에서도 그것들의 종자가 발견되지. 그것들은 섣불리 싹을 틔우는 대신 숨을 죽이고 지구를 점령해가고 있어. 인간의 주머니 속에 숨어서, 어디로 도망가지도 않은 채, 슬그머니 종자들만을 물과 땅에 숨기며.
가족들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나를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던 건 어느 정도는 코코 덕분이었어.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이 괴이한 동반자들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 코코를 내 옆에 두면서, 만지고 입을 맞추면서, 그것들이 가진 외계의 물질들이 나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지. 그리고 기쁨이 나를 가득 채우는 감각을 느꼈어.
코코들이 지구에 가져온 건 그들 자신만이 아니라, 그 축축한 녹색 털 안에 감춘 생태계였어. 아직 다 분석되지도 않은 수많은 미생물들은 꾸물거리며 지구의 토양을 뒤덮고 있지. 토륨을 먹어치우면서, 우리가 속하지 않은 다른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과학자들은 어쩌면 앞으로 지구상에 두 종류의 생태계가 공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추정하지. 우리는 이미 외계세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이제는 어느 토양에서든 외계 생물들이 남긴 독특한 부산물들을, 혹은 외계 미생물 그 자체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전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지질시대가 도래했다는 거야. 그래서 어떤 이들은 아직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지구의 영역을 늦기 전에 지켜야 한다고, 지구 보존구역을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이미 늦은 걸까? 지구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된 걸까? 아니면, 그게 정말로 ‘오염’이긴 한 걸까?
그래, 나는 상관없어. 그것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으니까. 그 오염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니까.
이제 이런 삶이라면 수십 년이든 수백 년이든 이어져도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코코를 쓰다듬으며 말해.
오랫동안 살아줘. 제발 내 옆을 떠나지 말아줘.
그때 웃을 수 없는 코코가 나를 향해 웃어주고, 나는 코코에게 마주 웃어 보이지.
김초엽(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