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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도무지 모르겠어서 하는 일, 식물 기르기

등록 2020-08-28 08:17수정 2020-08-28 08:35

소설가 김금희의 ‘식물 하는 마음’ 연재 ①
무름병으로 처참한 내 선인장
‘식물 집사’로 체념 배워가는 중일지도
과거 식물에 빠진 때와 마음이 힘들던 때 같아
두 번의 퇴사 ‘상하지 않고 자라는 것 없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세상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폭우, 태풍 등 자연은 이제 무분별하게 환경을 파괴한 우리를 단죄하는 것인지 옥죄고 있군요. 엄혹한 현실이지만, 한 줄기 빛 같은 글은 희망이자 행복에 이르는 마지막 열차표일지 모릅니다. 2009년 등단해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경애의 마음> 등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우리 문단의 부조리도 결코 방관하지 않았던 김금희 소설가가 매달 한 번 식물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그는 최근 단편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로 ‘2020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글이 선사하는 초록빛이 독자님들에게 격려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원고를 쓰기 전 발코니로 가서 물을 주었다. 지금 발코니의 상태를 말하자면 다소의 곤란함이 있다. 여름이 지나면서 식물들에게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오늘 아침만 해도 나가보니 선인장의 일종인 핑크 고스트가 완전히 ‘구겨져’ 있었다. 내 쪽으로 보이는 편 말고 반대편에 무름병이 생겨난 걸 이틀 전에야 알아챘고, 혹시 회복될까 최근에 구입한 식물등을 비춰주었더니 단 하루 만에 아예 무너져 내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화분에서 꺼내 뿌리를 살폈다. 아직 상태가 최악은 아닌 듯 보인다. 무른 부분을 잘라내니 15㎝가량 되었던 핑크 고스트는 엄지손가락만큼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뿌리가 있으니 희망은 있다. 나는 어느 면에서는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아픈 식물에 있어서는 끝까지 매달리게 된다. 핑크 고스트도 사흘 정도 공기 중에 뒀다가 심어볼 작정이다. 지난겨울 우리 집에 처음 왔던 아름다운 자태, 마치 물감이 은은히 번지듯 분홍빛과 푸른색과 베이지색이 혼합되어 있던 그 몸체를 기억하는 사람이니까 포기는 이르다. 그런 건 풀 한 포기, 김치 한 포기 셀 때나 필요한 말일 뿐이다. 하지만 여태껏 내가 가드닝(정원이 아니라 발코니라 할지라도)을 하면서 겪어야 했던 잦은 실패를 떠올려보면 어쩌면 핑크 고스트의 회복도 요원할지 모른다. 비보를 듣고 발코니로 나온 가족에게 아직 뿌리가 있으니 괜찮다고 장담했지만 아닐지도,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안되면 하는 수 없다는 은근한 체념도. ‘식물 집사’로서 어느새 나는 그 은근한 체념을 배워가는 중이다.

올해의 길고 긴 장마가 남긴 상흔들, 텅 빈 표정으로 강물에 떠내려가는 고라니와 가축들, 가족과 터전을 잃은 많은 분들, 여름을 통과하는 일이 이토록 어려웠던 적이 또 있을까 싶은 시간들이다. 재확산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폭염, 태풍까지 겹치면서 이제는 오히려 ‘힘들다’는 얘기는 입 밖으로 내기 힘들게 되었다. 다들 힘이 드니까, 그렇게 말을 꺼내 어떤 마음을 해소하기에도 미안할 정도가 되는 것이다.

비가 길어지자 발코니의 식물들도 상해갔다. 잎이 늘어지고 말라가고 썩는 것이 매일 눈에 들어왔다. 몇몇 다육식물들은 몸 전체가 까맣고 축축해져 말 그대로 ‘녹아버렸다’. 나는 지난봄 6000원짜리 도기 접시와 두 종의 다육식물을 샀는데, 어떤 녀석들을 배치할지 망설이자 화원의 아주머니가 같이 고민해주었고 대가를 받지 않고 직접 심어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육이들이 넓게 퍼지듯이 해서 접시를 다 채우리라는 축복의 말과 함께. 하지만 여름이 지나 하나는 속까지 썩어서 사라졌고 이제는 아주머니와의 그 다정한 일별만 기억에 남아 있다. 아니, 아니다, 그래도 나머지 다육이 하나가 살아 있으니까 그 말의 유효기간이 완전히 종료되지는 않았다.

그날 화원에서 내가 마음에 들어 한 식물은 또 있었다. 말발도리였다. 작은 흰꽃송이들이 싱그러운 말발도리 분재가 화원 입구에 기품 있게 놓여 있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꽤 비싸서 구입하기는 망설여졌고 그러자 아주머니가 분재가 아니라 작은 포트에 심어진 말발도리도 있다고 추천했다. 결국 나는 그 말발도리 포트를 샀다. 말발도리 분재에 자부를 느끼던 주인아저씨는 뿌리며 튼튼한 몸체며 가지며 다 갖춘 분재를 거듭 권하며 포트는 영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그건 정말이지, 하며 깎아내렸다. 그때 남편을 툭 치며 “이것도 예쁘고 얼마든지 괜찮아” 하며 내 선택을 지지해주던 주인아주머니.

살면서 나는 식물 취미를 가졌다가 접었다 했다. 돌아보면 식물에 빠져든 시기와 마음이 힘들어진 시기는 대개 일치했다. 처음으로 식물 기르기에 의욕을 보인 건 오래전, 직장 생활을 할 때였다. 회사 화분들이 죽어가고 있어서 하나둘 발코니로 옮기고 물을 주다 보니 어느덧 내 몫의 일이 되었다. 나는 근무를 하다가도 뭔가 스트레스가 쌓인다 싶으면 나가서 화분들을 돌봤다. 어쩌면 화분에 물을 준다는 빌미로 딴짓을 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내게 쌓여 있던 울분과 세상에 대한 미움과 실망을 씻어보는 일이 회사에서의 중요한 루틴이었다.

회사 속 식물들에게도 따지자면 직급이 있어 어떤 것은 상사의 방에서 안온하게 자라고 어떤 것은 회사 복도나 책장 옆에서 반은 마른 잎들을 단 채 견디다가 눈에 띄면 내 손에 들려 발코니로 나갔다. 하지만 나 역시 마음이 한결같은 사람은 아닌지라 곧잘 챙길 여력을 잃었고 그러면 자기들에게 왔던 어떤 보살핌이야 가끔 있는 행운으로 여기고 화분들은 다시 제힘으로 버티기 시작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가끔 그 화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산세베리아나 청페페나 하는 흔하디흔했던 그 실내식물들은 퇴사 무렵 가졌던 어떤 열패감과 함께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한 나는 두 번의 퇴사를 경험했다. 마지막 날 짐을 쓸어 담아 차에 싣고 눈물을 흘리며 귀가하는 것이 그 두 번의 퇴사 의식의 마지막이었다. 잘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던, 포기하거나 떠밀리고 싶지 않은데도 자꾸 손을 놓아야 했던 시간들. 그런 이삼십대 시절을 발코니에 조르륵 놓인 화분들이 오롯이 대신하고 있다. 상한 잎을 달고도 더러는 웃자라고도 자리를 지킨 채 기억 속에 놓여 있다.

지금의 나라면 그때의 나에게 상하지 않고 자라는 것은 없다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더 나가면 상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처음 화원에서 데려온 화분들이 그 모습 그대로 커나가는 일이 없는 것처럼. 잎들은 인간적 기준에서의 미와 상관없이 자라고 싶은 대로 자라고 꽃은 피었다가도 시들며 이번 여름처럼 환경이 좋지 않으면 아예 썩기도 한다. 식물을 기를수록 알게 되는 것은 성장이란 생명이 가진 제멋대로의 모험, 진딧물의 습격을 받고도, 가지의 어느 한 편이 썩고 있더라도 다른 한쪽에서는 새잎이 나기도 하는 무람한 에너지의 발산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떠올리는 가드닝의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상상에 가깝고 오히려 성장의 개념을 곡해하는 측면이 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그렇게 누군가의 주재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가드닝 초기에 빠져들었던 발코니 주인으로서의 자부는 식물을 키우면 키울수록 자연스레 깨져나갔다.

새롭게 연재할 코너, ‘식물 하는 마음’은 이런 생각과 마음들로 채워나갈 예정이다. 가드닝에 대한 노하우나 정보도 때로 등장하겠지만 주가 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여름을 통과하면서 기르던 식물의 20% 정도를 ‘숲별’로 보내고만 나는 솜씨 없는 가드너일 뿐이기 때문이다. 언제고 정식으로 가드닝 수업을 받고 싶다는 소망은 팬데믹으로 외출이 제한되면서 이룰 수 없는 희망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굳이 식물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건 발코니에 나가 있을 때 내 안에서 은은하게 일렁이는 마음의 정체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식물들은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자기 생장을 도모할 뿐인데도 그 앞에 선 나는 자꾸 어떤 기억에 붙들려 회상해보고 느껴보고 때론 웃고 슬퍼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식물들에게는 마치 거울처럼 그 사람의 마음을 비춰내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걸까. 감정의 즉각적인 발생을 만들어내는, 어떤 것보다 일견 무감하고 차가운 존재라서 더 심연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적 같은 힘이 있는 게 아닐까. 그걸 알고 싶어서 하는 일이 가드닝이고 결국 이 글일 것 같다.

김금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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