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 바닷가에선 선크림을 바르는 이들을 자주 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가수 ‘비’처럼 선글라스로만 태양을 피하는 깡이 있다면 좋으련만, 여름철 자외선 차단제는 피부 노화와 피부암을 예방하기 위해 여름철 필수품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알려져 있다시피 자외선 차단제의 일부 성분은 산호를 죽이고 바다 생물에 유해하다고 한다. 그래서 2021년 1월부터 하와이에서는 옥시벤존과 옥티녹세이트가 들어간 자외선 차단제의 판매와 유통이 금지된다. 미국 플로리다 남부와 멕시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서태평양 팔라우 등 또한 유사한 조처를 하고 있다.
자외선 차단제의 옥시벤존과 옥티녹세이트 성분은 산호가 하얗게 변하는 백화현상을 일으키고 물고기의 성별을 바꾸는 등 생식 관련 질환을 초래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바다에서만 바르지 않으면 될까? 하와이가 아닌 제주도 등 우리 앞바다에서는 관련 제한이 없으니 발라도 될까? 문제 성분이 없는 자외선 차단제는 효과가 떨어질까? 태양을 피해야 하는 계절, 자외선 차단제를 앞에 두고 여러 물음표가 떠오른다.
여름철 필수품처럼 여겨지는 자외선 차단제의 일부 성분은 산호를 죽이고 바다 생물에 유해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환경을 고려한 제품을 고를 필요가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자외선 차단제가 바다 생물을 해치니 바다에서만 바르지 않으면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수도를 통해 흘러간 물이 결국 바다로 향한다. 일상생활에서 바른 자외선 차단제가 샤워 등을 통해 하수에 섞여 흘러가고, 정화 시설을 통과해도 일부 성분은 결국 바닷물에 녹아들어 간다. 하와이 섬 전역에서 자외선 차단제 판매와 유통이 금지된 이유다.
국내에서는 얼마나 논의되고 있을까. 언급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2018년 식품의약품 안전처 대상 국정감사 당시 국회 보건복지 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이 자외선 차단제의 유해 성분에 대해 질의한 것이 전부다. 정부가 아닌 시민 차원에서는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다. 꾸준히 '옥시벤존, 옥티녹세이트 제로 캠페인'을 진행해온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2018년 당시 식약처에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파악한 두 성분이 들어간 제품은 2만2000여종에 이른다고 한다. 자외선 차단제뿐만 아니라 비비크림, 시시크림 등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 화장품에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옥시벤존 함량을 5% 이내로 해야 한다는 기준을 설정해두었는데, 이것은 제품을 사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피부 발진 등 인체 영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신수연 녹색연합 정책팀장은 “한국의 경우 화장품 제조 때 인체 미치는 영향 기준으로 만든다”며 “씻어내는 종류일 경우 식약처 허가 기준에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도 포함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여름철 필수품처럼 여겨지는 자외선 차단제의 일부 성분은 산호를 죽이고 바다 생물에 유해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환경을 고려한 제품을 고를 필요가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정미란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 국장은 "한국에서는 규제에 대한 논의가 없어 기업에 자발적으로 해당 성분을 빼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국장은 “제주도 산호초에서도 백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라며 “하와이나 팔라우에서 과학적 근거 없이 규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나라 식약처에서도 세계적 흐름을 파악하고 규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제주 바다에는 2014년 기준 우리나라 산호류 약 160종 가운데 126종이 서식하고 있다. 해양보호구역인 서귀포시 문섬, 섶섬, 범섬 등에 있는 몇몇 지역의 산호들은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7조에 의하여 채취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보호되고 있다.
정부 방침이 이러하니 손 놓고 있을 것인가. 언젠가 여행에서 만났던, 산호 사이에서 평화롭게 헤엄치던 작은 상어와 물고기들이 집을 잃고 생명력을 잃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 우선은 우리가 먼저 옥시벤존과 옥티노세이트가 함유되지 않은 자외선 차단제를 쓰는 것으로 상황을 대처해보자.
우선 논나노(non-nano) 무기 자외선 차단제를 찾아야 한다. 자외선 차단제는 화학적 자외선 차단제(유기자차)와 물리적 자외선 차단제(무기자차)로 나뉜다. 유기자차는 자외선과 만난 자외선 차단제가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자외선이 피부에 침투하지 못하게 한다. 무기자차는 이산화티타늄이나 산화아연 같은 광물질이 피부 표면에 보호막을 만들어 자외선 자체가 피부에 닿지 못하게 하는 방식이다. 둘 중에는 무기자차가 그나마 산호를 덜 훼손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중요한 게 차단제 성분의 입자 크기다. 나노 미터 이하 사이즈의 입자는 바다로 흘러들어 가 산호의 몸 안에 이상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옥시벤존 프리’, ‘옥티노세이트 프리’ 제품뿐만 아니라 ‘리프 세이프’를 표기하기도 한다.
선크림 ‘라운드어라운드 그린티 시카 선로션’. 사진 CJ올리브영 제공
‘아로마티카 유기농 알로에 베라 젤’. 사진 CJ올리브영 제공
최근 한국에서는 비건 뷰티 바람이 불며 환경을 생각하는 이들은 비건 제품을 선호하곤 한다. 그래서 비건 제품이면 어쩐지 해양 환경도 무해할 것 같은데, 이는 오해다. 비건 제품 중에 리프 세이프 제품도 있고, 리프 세이프 제품 중에 비건이 아닌 경우도 있다. 올여름 자외선 차단제를 아직 고르지 못한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아끼길 바라며 몇 가지 제품을 추천한다.
아떼 비건 릴리프 선 쿠션은 ‘이브 비건(EVE VEGAN) 인증’(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프랑스 비건 인증)을 받았으며 친환경 포장을 사용하는 등 비건 스킨케어 제품 중 인정받고 있는 브랜드다. 동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거나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아떼의 선 쿠션을 사용해 보길 바란다. 아떼의 다른 선케어 제품들의 경우 유기자차로 만들어진 반면, 비건 릴리프 선 쿠션은 징크옥사이드와 티타늄다이옥사이드 성분이 들어간 무기자차 제품이다. 시원한 촉감으로 피부를 진정시켜주며 영국 비건소사이어티의 인증을 받은 검증된 제품이다. (24g, SPF50+, PA++++, 소비자가 4만5000원)
선크림 ‘엘에프(LF) 아떼 비건 릴리프 선 케어’. 사진 LF 제공
올리브영의 라이브코스메틱 브랜드 라운드어라운드에서 선보인 그린티 시카 선로션은 논나노 무기자차 자외선 차단제다. ‘해양생태계에 해로운 자외선 차단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내건 만큼 ‘리프 세이프’한 제품이다. 올리브영에서 자체적으로 ‘올리브영 클린뷰티’를 선정하고 ‘클린뷰티’, ‘애니멀 프렌들리’, ‘에코 프렌들리’ 마크를 붙이고 있는데, 그린티 시카 선로션은 이 세 개의 마크를 모두 받았다. 즉, 파라벤, 아보벤젠 등 유해 의심 성분 16가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상품 제조 과정에서 동물 실험을 진행하지 않으며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활용이 쉬운 포장재를 쓴다는 뜻이다. 로션 타입 제형으로 발림성이 좋으며 약간의 백탁현상(피부에 하얗게 들뜨는 현상)이 있지만, 오히려 피부가 화사하게 표현된다. (100㎖, SPF50+/PA++++, 소비자가 2만원)
아로마티카 수딩 알로에 미네랄 선스크린은 징크옥사이드 24%가 첨가된 논나노 무기자차 자외선 차단제다. 정제수 대신 알로에를 넣은 것이 특이점이다. 식물성 오일이 피부에 장막을 만들어 자외선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화장이 뜨지 않도록 에센스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무기자차이기 때문에 에센스가 자외선차단성분과 분리되어 있어 사용 전 충분히 흔들어주어야 한다. (50㎖, SPF50+, PA++++, 소비자가 2만2000원)
윤리적 소비를 통한 작은 행동들이 모여 산호와 물고기를 오래 볼 수 있도록, 소개한 제품들을 한번 써보는 게 어떨까? 물론, 선크림을 사용하지 않고 모자와 선글라스,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 옷으로 최대한 가릴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임세연(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