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마일’(필명)이 직접 고친 거실. 앱 ‘오늘의집’에 올려 주목받았다. 사진 ‘1000마일’ 제공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8%로 지난 2017년에 견줘 1.3포인트 증가했다. 2010년 23.9%이었던 1인 가구는 올해 600만명을 찍으며 사상 처음으로 30%를 넘길 예정이다. 늘어나는 비중만큼 영향력 또한 커지고 있는 1인 가구의 중심에는 20~30대가 있다. ‘1코노미’, ‘홈코노미’의 주인공인 그들에게 집은 단순히 잠자는 곳이 아니라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본산, 개성과 취향의 집성지다. 이들에게 ‘집 꾸미기’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2020년 2030 세대 1인 가구의 ‘집 꾸미기’를 짚어본다.
■ 2030에게 집이란?
지금 2030 세대에게 집은 부동산이지만, 동시에 부동산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폭주하는 주택 시장의 악몽은 무주택자가 대부분인 2030 세대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2030 세대를 위한 자가 주택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 전세·반전세·월세 등을 의도치 않게 선택하면서 주기적으로 떠도는 ‘부동산 노마드’의 현실이 그들 앞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은 오히려 이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삶과 환상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매스컴만 보더라도 집에 대한 관심사는 그 어떤 때보다 강렬하다. 혼족의 일상을 보여주는 <문화방송>(MBC)의 <나혼자산다>를 비롯해 수많은 프로그램이 유명인의 집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집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은 계속 늘고 있다. <구해줘! 홈즈>, <집사의 선택>(SBS CNBC), <건축탐구–집>(EBS) 등 여러 프로그램이 방송 중이다. 최근에는 집 정리를 다루는 <신박한 정리>(tvN)까지 등장했다. 집은 2030 세대의 주 무대인 에스엔에스(SNS)에서 주인공으로 등극한 지 오래다. 이는 인스타그램 해시태그가 증명한다. #홈스타그램은 290만, #집스타그램은 무려 400만 건에 달한다. ‘랜선 집들이’라는 용어로 가장 사적인 영역인 집을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하는 게 일상이 돼버린 상황이다. 2030 세대에게 집은 조용한 휴식처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취향의 피사체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앱 ‘오늘의집’에 올린 이소발(필명) 작가의 집. 직접 인테리어 작업한 거실. 사진 이소발 제공
■ 2030의 ‘집 꾸미기’
요즘 이런 상황에서 ‘집 꾸미기’는 운명이다.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멋지고 편안하게 만드는 각종 가구와 소품은 필수재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홈스타일링, 홈퍼니싱, 홈드레싱 등 다양하게 부르는 관련 시장은 고공행진 중이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2008년 7조원에 머물던 국내 홈퍼니싱 시장 규모는 올해 13조7000억원으로 커졌고, 2023년에는 18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업로드한 집 관련 사진과 글을 접하며 사진에 등장한 가구와 소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빙 플랫폼 ‘오늘의집’ 앱은 2017년 8월 기준 100억원이었던 누적 거래액이 2019년 12월 3500억원으로 2년 사이에 35배 증가했다고 한다.
2030 세대의 ‘집 꾸미기’는 구매에 머무르지 않는다. 손재주가 좋은 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실내 풍경을 구현하기 위해 페인트칠과 시트지를 잘라 붙이는 걸 마다치 않는다. 가벽을 설치해 공간을 구획하고 화장실 타일을 갈아엎는 등 준전문가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 자신감의 원천은 포털 커뮤니티와 유튜브 영상에서 얻은 살아있는 지식이다. 이런 ‘셀프 인테리어’에서 한발 더 나아가면, 전문 인테리어 회사에 시공을 맡기지 않고 전문 작업자나 분야별 업체를 직접 고용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을 진두지휘하는 ‘반셀프 인테리어’까지 레벨업한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으려는 이런 시도는 입소문을 타고 비슷한 심정의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두드린다.
인테리어 유튜브 채널 ‘댄나 프로젝트, 집 꾸며볼래’. 유튜브 채널 화면 갈무리
■ ‘셀프 인테리어’가 가능해진 이유
가구 구매부터 전문 시공까지 포괄하는 ‘셀프 인테리어’의 보편화는 2030 세대 1인 가구가 주거 공간에 품은 열정에 오롯이 기대고 있는 걸까. 먼저 홈퍼니싱의 폭발적인 성장 이면에는 예상치 못한 이유가 공존한다. 바로 이케아다. 2014년 12월께 한국에 상륙한 ‘리빙 공룡’ 이케아는 국내 리빙 시장을 완전히 새롭게 재편했다.
“그전만 하더라도 가구는 티브이(TV), 냉장고처럼 한 번 사면 망가질 때까지 잘 바꾸지 않는 품목이었다. 하지만 대량 생산과 디아이와이(DIY·소비자가 직접 사용할 물건을 완성)가 만나 탄생한 이케아 가구는 산뜻한 디자인에 부담 없는 가격대, 다양한 제품군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가구가 패션 아이템처럼 기분과 상황에 따라 자주 바꿀 수 있는 영역으로 편입된 것이다. 국내 가구 또한 살아남기 위해 변신 전략을 짰다.” <트렌드 코리아> 공동 저자인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의 말이다.
실제 이케아 진출 이전 4조원대에 머물던 국내 가구 소매 판매액은 2018년 7조5000억원을 넘었다. 2019년 이케아 매출이 5000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일반인들의 소비재로서 가구를 구입하는 성향은 무척 강해진 셈이다. 전문 시공 또한 아파트 노후화에 따른 리모델링 수요 증가에 덕을 보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 등에 따르면 2015년 28조4000억원이던 리모델링 시장 규모는 올해 41조원을 넘길 예정이다. 수많은 공사에 따른 실전 인력이 배출되고, 인터넷이나 앱을 통해 군소업체와 전문가가 손쉽게 연결되면서 과거 온전히 자기 힘만으로는 불가능했던 전문 영역까지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국 리빙 편집숍 ‘네스트’에서 판매하는 의자. 네스트 누리집 화면 갈무리
■ ‘집 꾸미기’의 허와 실
어찌 됐든 셀프 인테리어를 통한 집 꾸미기가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면 다행이다. 문제는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많다는 사실이다.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의 고영성·이성범 공동대표는 감내해야 하는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간단한 페인트칠 하더라도 여러 밑 작업을 선행한 후 정교하게 진행해야 페인트 특유의 장점을 살릴 수 있다. 벽지나 콘크리트에 페인트를 바르면서 대단한 변화를 원하는 건 욕심이다. 시트지 또한 부엌과 수납장에 갓 붙였을 때는 멀쩡하지만, 물과 자외선에 노출되면 금방 흉해진다. 이런 단점을 예상하고 (셀프 인테리어 후 상황을)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다. 레퍼런스(참조)와 현실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노리는 셀프 인테리어는 곧잘 왜곡된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남용된다. 잠시 머무는 공간에 타일 무늬 시트지를 붙이고, 벽지 위에 쨍한 색감의 페인트를 칠한다. 복잡한 부분은 패브릭으로 잠시 가리고, 언제 망가질지 모르는 저품질 가구와 조명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조성해 이를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채집한다. 멋지게 편집한 이미지는 곧 에스엔에스(SNS)에 올라가 ‘좋아요’를 받는다. 이런 ‘눈 가리고 아웅’식 셀프 인테리어가 과연 주거 공간에 어떤 생명력과 진정성을 부여할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인테리어 전문 유튜브 채널 ‘이품 공간 스타일링’. 유튜브 채널 화면 갈무리
■ 건강한 관점에서 ‘집 꾸미기’도 많아
‘눈 가리고 아웅’식 셀프 인테리어는 사실 소수다.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공간을 본인의 수준에서 꾸미고 건강한 만족감을 갖는 이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려가 필요하다. 세간에 떠도는 말에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는 게 있다. 셀프 인테리어가 ‘좋은 공간을 스스로 창조하는 행위’라고 봤을 때 주거 공간의 가치를 새롭게 탐색하며 취향을 투사하는 2030 세대의 ‘집 꾸미기’는 칭찬할 만하다.
“공간을 직접 체험하며 변화를 만드는 행위는 결국 공간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많은 공간을 경험하고 공간을 보는 눈이 발달하면, 자기에게 맞는 공간을 찾고 꾸미면서 더욱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건축가 입장에서 그것만으로도 셀프 인테리어는 충분히 가치 있다.” 고대표와 이대표의 이구동성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많은 변화가 찾아오면서 이에 맞게 유동적으로 공간을 대하는 것은 이젠 필수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호모 파베르(도구적 인간)적 본성을 확장하는 연습으로 집 꾸미기만큼 좋은 유희 활동도 없지 않을까.
전종현(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인테리어 제품 등을 판매하는 국내 업체 ‘TRDST’의 조명. 사진 TRDST 제공
인테리어 제품 등을 판매하는 국내 업체 ‘TRDST’의 조명. 사진 TRDST 제공
[ESC] ‘집 꾸미기’에 참고할 만한 ‘거의 모든 것들’
◆ 한 권의 책이 주는 정보
<인테리어 원북> : <문화방송>(MBC) 피디였던 저자 윤소연이 자신의 집을 고치는 과정을 소상히 담아 화제가 된 책이다. 5년 전 출간됐지만, 아직도 추천 도서로 언급되는 스테디셀러다.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입니다> : 채우려면 버려야 한다는 지혜를 공간에 접목시킨 책이다. 저자는 정리 전문가 정희숙.
◆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로는 네이버 카페 ‘박목수의 열린 견적서’ ‘셀프인테리어 My Home’ ‘인기통’ 등을 추천한다. 유튜브 채널로는 ‘나르의 인테리어 NAR tv’ ‘댄나 프로젝트, 집 꾸며볼래’ ‘이폼 공간 스타일링’ ‘잼잼 티비’ ‘집꾸미기 House Room Tour’ ‘폴라베어 전실장’ 등을 추천한다.
◆ 홈퍼니싱
앱 ‘오늘의집’은 다양한 집 사진에 등장한 가구와 소품을 구매 링크로 연결해 실질적인 도움이 크다. 국내외 리빙 편집몰로는 영국의 ‘네스트’, 스웨덴의 ‘노르딕 네스트’, ‘로얄디자인’, 한국의 ‘TRDST’, ‘르위켄’, ‘콜렉션B’ 등을 추천하는데, 비교적 오프라인 판매처에 견줘 가격이 적게는 10~20%, 많게는 절반 이상 저렴하다고 알려져 있다.
전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