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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더 뜨기 전에 여러 번 가야지!

등록 2020-07-31 10:04수정 2020-07-31 10:31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서울 종로구 누하동의 작은 골목에 있는 ‘스시 누하’의 신선한 해산물.
서울 종로구 누하동의 작은 골목에 있는 ‘스시 누하’의 신선한 해산물.

서울 강남에는 일명 ‘하이엔드 스시집’이라고 불리는 고급 스시집들이 즐비하다. 한 끼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다이닝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곳들이다. 아무래도 한 끼의 식사비로는 부담스럽다. 마트에서 파는 초밥도, 푸드 코트에서 먹는 회덮밥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바로 구매할 만큼 해산물을 좋아하지만, 좀처럼 그런 스시집에 가지 않는 이유엔 가격이 있다.

우연히 지인의 에스엔에스를 보다가 발견한 ‘스시 누하’는 달랐다. 맛은 고급 스시집 수준인데, 가격은 그런 스시집에 견줘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점심 5만원, 저녁에는 10만원 남짓. 고즈넉한 한옥의 분위기도 남달랐다. 생긴 지 3달밖에 안 된 신생 업장임에도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한 달은 기다려야 한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도보로 10여분. 이른바 서촌이라고 불리는 누하동 작은 골목에 있는 ‘스시 누하’를 며칠 전 찾았다. 야트막하고 다소곳한 한옥은 10명 정도 겨우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다.

그날그날 해산물 수급 상황에 따라 주방장 마음대로 음식을 제공하는 ‘오마카세’ 메뉴만 있었다. 눈앞에서 주방장이 바로 건네주는 스시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까? 편안한 마음으로 생맥주 한 잔을 주문하고 히말라야 암염으로 간을 한 은행을 집어먹었다. 이어서 일본간장과 생강을 곁들인 메지마구로(참다랑어 새끼)가 등장했다. 생선에서 흘러나오는 기름기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이후로 삼치, 한치, 껍질을 살짝 익힌 도미, 청어 등을 재료로 한 스시가 줄지어 나왔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아득하기만 하다. 빨리 먹어야겠다는 조급함, 다음 음식을 얼른 맛보고 싶다는 긴박함과 사진 찍을 시간도 없었던 아슬아슬함 같은 감정들만 조각조각 남아 있을 뿐이다. 무의식적으로 증류주를 주문했던 순간과 스시를 집었을 때 희열 같은 것만 생각난다.

흔히 맛집을 구분 짓는 기준으로 가성비를 논한다. 저렴한 가격이 매력적일 수도 있지만, 재료와 조리법의 특성상 일정 금액 이상을 지불해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있다. 스시가 그런 음식이다. ‘스시 누하’를 경험하고 스시집에 가성비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식당이 더 뜨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방문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 했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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