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차가운 음식이 당기는 여름의 복판이다. 뼛속까지 시린 평양냉면 육수, 얼음을 잔뜩 올린 빙수, 진하고 걸쭉한 찬 국물의 콩국수나 매콤하고 새콤한 비빔면 같은 음식들이 단박에 떠오른다. 도장 깨기를 하듯 오늘은 이것, 내일은 저것을 먹어 치웠는데도 성에 차지 않았다. 뭔가 특별한 여름 요리는 없을까.
마침 하루가 온전히 빈 평일 낮, 재택근무로 고통받는 직장인이 보낸 메시지는 무척 유혹적이었다. ‘우리 집 근처로 오면 궁극의 우동을 사 주겠다.’ 당장이라도 신나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문제는 ‘그 동네’였다. 남가좌동이라니. ‘명지대 입구’로 불리는 그 동네는 내 생활 권역 밖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니 엄두가 날 리 없었다. ‘어차피 보너스처럼 일없는 하루이니, 마음을 크게 먹자’는 생각으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대략 1시간 만에 도착한 ‘가타쯔무리’는 간판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그 옛날 ‘대우전자 지정점’이라는 낡은 간판을 그대로 둔 패기와 길게 늘어선 대기 행렬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곳을 하루가 멀다고 드나들었다는 직장인 친구가 말없이 내민 메뉴판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가케우동, 붓가케 우동, 유자우동, 가마타마 우동 등. 총 4가지로만 구성된 메뉴는 사실 복잡할 게 없었다. 우동 이름 옆 ‘히야히야’, ‘히야아쯔’, ‘아쯔아쯔’라는 3가지 선택 옵션에서 혼돈이 왔다. ‘히야’는 차갑다는 뜻, ‘아쯔’는 뜨겁다는 뜻이라고 친구가 바로 설명해 주지 않았더라면 그 혼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히야히야’는 차가운 면과 차가운 국물, ‘히야아쯔’는 차가운 면에 따뜻한 국물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날도 더우니 무조건 차가운 면을 먹자는 제안을 받잡아 가케우동과 붓가케우동, 유자우동을 주문했다.
기다린 지 30여분 만에 나온 우동의 색깔은 남달랐다. 고이 빗어 쪽 찐 머리를 보는 듯한 정갈함, 직접 만든 우동 면의 윤기에 가슴이 떨렸다. 멸치 육수로 맛을 낸 가케우동의 찬 국물은 먹는 순간 머리에서 전등이 켜질 정도로 진했다. 아주 차지 않은 육수의 온도, 깊고 진한 멸치 향, 깔끔한 뒷맛 등 감동이 몰려왔다. 참치 육수로 맛을 낸 붓가케 우동 역시 훌륭했다. 생유자즙과 간장을 넣고 비벼 먹는 새콤한 유자 우동은 그저 ‘여름의 맛’이었다. 어디서도 먹어 보지 못했는데, 왠지 익숙한 맛이 났다. 멀다는 이유로 하마터면 ‘찐’ 우동 맛집을 놓칠 뻔 했다.
계절의 기분을 아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지만, 날씨에 잘 어울리는 음식을 골라 먹는 것이야말로 한 계절을 완벽히 이해하는 방식이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