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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장마철 만난 산타 밥상

등록 2020-07-17 09:22수정 2020-07-17 09:28

‘삽다리 순대국’의 메뉴. 사진 백문영 제공
‘삽다리 순대국’의 메뉴. 사진 백문영 제공

서울 시내에 전통시장이 몇 개 있는지 알 수 없다. 지역구마다, 동마다 뻗어 있다. 용산구 용문동에 있는 꽤 유명한 시장인 ‘용문전통시장’은 그런 시장 중 하나다. 각종 술집이 포진해 있는 원효로 근방에 있다. 요즘 뜬다는 삼각지 일대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용문전통시장을 방문하는 젊은이들이 왕왕 눈에 띈다.

눅눅한 장마철 오후 3시. 지하철역을 나오자마자 티셔츠는 눅진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이런 날 친구가 고른 곳이 시장통이라니. 불편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가다듬었다. 분명 친구가 고른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떡볶이 전문점, 생선가게, 정육점을 지나 5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곳이 ‘삽다리 순대국’이었다. ‘입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작은 출입문에 ‘순대국’이라는 글자가 간신이 붙어 있었다. ‘찐’ 맛집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비밀스러움에 구미가 당겼다.

내부는 단출했다. 들어가자마자 술국와 머리고기를 주문했다. “술은 알아서 가져다 마시라.” 주인 할아버지의 안내도 간결했다. 혼자 식사하는 테이블에서도, 데이트하는 젊은 연인의 밥상에도 예외 없이 소주병이 있었다. ‘질 수 없다’는 경쟁심으로 소주 두 병을 가져왔다. 닭곰탕을 연상하게 하는 맑은 육수에서 쌓여있는 부추를 걷어내니 순대와 각종 내장이 가득했다. 알싸한 부추 향, 은근히 풍기는 돼지 부속물의 냄새는 고소했다. 맑고 칼칼한 육수는 소주의 영원한 친구이자 술꾼의 진정한 파트너다. 이내 나온 머리고기의 비주얼도 특별했다. 보자마자 “코리안 샤르퀴트리(샤큐테리·샤퀴테리. 돼지고기 육가공품)”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름만 머리고기지, 피순대와 백순대, 오소리감투, 간, 돼지 귀 등이 정갈하게 늘어선 접시는 시장 골목 순댓국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새였다. 맛보면 맛볼수록 와인이 생각났다. 파테, 푸아그라에 버금갈 정도로 고소하고 녹진한 돼지 내장의 맛은 어떤 종류의 술과도 잘 어울릴 것만 같았다.

단순히 소주 안주라고만 생각했던 돼지 부속물에서 이런 즐거움을 느끼게 될 줄 몰랐다. 모든 술을 껴안는 포용성부터 한식과 양식을 넘나드는 유연함까지, 시장 골목 안 작은 순댓국집의 저력은 어디까지일까? 축축한 장마철, 크리스마스 같은 식당을 만났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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