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잔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느껴지는 차가운 냉기, 잔에 맺힌 물방울, 쏟아질 듯한 희고 고운 거품을 마주하는 쾌락 등은 애주가라면 누구나 아는 순수한 기쁨이다. 가난한 대학생 시절 학교 앞 허름한 치킨집에서 마주한 치맥부터 나 혼자 잘나가는 줄 착각했던 거만한 20대 때의 호텔 라운지 맥주까지, 유독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추억이 많은 술이 맥주다.
목말라서 맥주, 기름진 고기 때문에 맥주, 배고파서 맥주 등 그저 습관을 핑계 삼아 브랜드도, 생산 지역도 가리지 않고 마시고 또 마신다. 특유의 진하고 강한 풍미를 자랑하는 크래프트맥주도, 평범한 호프집의 밍밍한 맥주도, 일하다가 마시는 캔 맥주도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덮어놓고 마신다고 해서 맛에 대한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풍미 좋은 맥주는 맛있고, 그렇지 못한 맥주는 밍밍하고 김빠진 탄산음료같이 싱숭생숭하다. 이런저런 맥주를 틈나는 대로 마시는 것은 맛있는 맥주를 골라내 필요할 때마다 즐기기 위해서다.
최근 등장한 ‘에잇피플 브루어리’는 이런 나의 욕심을 한껏 충족시켰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양조장이 있다는 점도 믿음직했다. 서울 도심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양조장에서 뽑아내는 신선한 맥주가 맛 없을 리가 없다. 최근 몇 년간 한국 크래프트맥주의 저변이 넓어졌지만, 그렇다고 국산 수제맥주가 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에잇피플 브루어리의 맥주는 어쩐지 결이 달랐다. 신선한 홉의 향은 그대로인데 뒷맛이 깔끔한 ‘테이크오프 페일에일’, 화사한 꽃 향과 상큼한 유자 향이 조화로운 ‘그리움 위트비어’, 미끄러지듯 목구멍으로 술술 흘러들어 가는 ‘비단길 바이젠’ 등 손에 잡히는 대로 들이켰는데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밀맥주 싫어한다”는 이에게 권한 ‘비단길 바이젠’이 몇 분 만에 사라지고, “맥주는 배불러서 싫다”는 이의 잔은 연신 비워지는 놀라운 경험도 에잇피플 브루어리의 맥주라서 가능했던 일이다.
새로운 양조장을 만나는 경험은 언제나 서늘하게 짜릿하다. ‘나만 아는 술’도 좋지만, 모두가 좋아하는 술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신생 양조장의 저력일지도 모른다. 드디어 ‘진짜 맥주’가 나타났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