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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육식성

등록 2020-06-18 09:27수정 2020-06-18 09:41

[6월 손가락 소설-장강명 작가]
좀비로 망한 세상, 나는 감염자
희망은 여의도 캠프에 있다는 라디오 듣고
가보니 피 뚝뚝 고기로 시험해
식욕을 참았으나….

세상이 망했지만 비는 내리고, 그 풍경은 무척 쓸쓸하다. 좀비 영화에서는 비 오는 풍경을 좀처럼 본 적이 없다. 어제 라디오 디제이가 그랬다. 좀비 영화들 다 이상하지 않으냐고. 영화 속 인물들이 그때까지 살면서 좀비 영화를 본 적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입가에 피를 묻힌 채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는, 몸 곳곳이 썩어 문드러진 지인들을 보고 영화 속 비감염자들은 “어떻게 된 거니?” 하며 달려간다. 그리고 좀비를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디제이의 말은 틀렸다. 제시 아이젠버그가 나오는 영화 <좀비랜드>에서는 주인공들이 좀비가 뭔지 잘 알았다. 그 영화 속편도 있었는데, 제목이…. 옆에서 새가 한 마리 날아가는 바람에 나는 잠시 이성을 잃는다. 몇 초 정도였지만 머릿속은 온통 저 새를 잡아 산 채로 찢어 먹으면 그 피가 얼마나 짭짤하고 맛있을지, 내장이 얼마나 향기롭게 비리고 기름질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다.

새는 빗줄기를 뚫고 날아가고, 나는 이성을 되찾는다. 며칠 전에는 내 팔을 보고 먹음직스럽다는 생각에 물어뜯을 뻔했다. 마지막 순간에 행동을 멈췄던 건 그게 내 팔이어서가 아니었다. 푸석푸석하고 푸르스름한, 감염자의 팔이어서였다.

나는 감염자다.

*

좀비 영화 속 인물들이 몰랐던 것, 그리고 현실의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은 따로 있다. 감염에도 정도가 있다는 사실. 감염자는 어느 순간 한 번에 좀비가 되는 게 아니라 천천히 변한다는 사실.

중증 감염자는 물론 누구나 알아볼 수 있다. 그들은 무릎과 팔꿈치가 굳어 제대로 걷지 못한다.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해 상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썩은 피부를 뚫고 뼈가 삐져나오거나 내부 장기가 흘러나와 있기도 하다. 눈은 텅 비어 있다. 말도 못한다. 입가에 묻은 피를 닦을 생각도 못 한다. 그들에게는 죽음만이 가장 자비로운 해결책이라는 데 누구나 동의한다.

문제는 초기 감염자다. 라디오에서는 초기 감염자를 피부 상태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감염이 되면 초기라도 피부가 푸석푸석해지고 푸르스름해진다고. 자세히 보면 피부가 찢어진 곳도 있을 거라고. 하지만 세상은 망했고, 비감염자들도 피부 상태가 멀쩡하지는 않다. 며칠 굶어 기력이 없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데 몸에 타박상을 입고 빗물로 세수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되면 특히 더 그렇다.

진단 키트 따위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옆 사람을 의심했고, 그래서 서로를 공격했고, 그래서 세상은 더 빨리 망해버렸다.

발발 초기에는 ‘감염은 죄가 아닙니다’라는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나왔던 인권 운동가들도 있었다. 집회 현장에는 ‘우리도 인간입니다’라는 팻말을 들고나온 감염자들도 있었다. 집회 둘째 날 감염자들이 발작을 일으키며 팻말을 버리고 운동가들의 살을 물어뜯었다. 그 광경이 유튜브로, TV로, 입소문으로 퍼졌다.

그때까지는 TV 방송국이 운영되고 있었다. 전력도 그럭저럭 공급됐고,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도 있었다. 그러다 대정전이 터졌고, 이후 전자제품은 무용지물이 됐다. 이제는 건전지가 필요 없는 게르마늄 라디오가 유일한 통신기기다. 군인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며 게르마늄 라디오 수천 대를 작은 비닐 낙하산에 달아 뿌렸다.

라디오에서는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

희망은 여의도에 있다고 한다. 여의도에 군대가 생존자 캠프를 차렸다고 한다. 깨끗한 물과 식량이 있다고 한다. 숙소도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초기 감염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이 있다고 한다.

그 캠프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문명을 재건할 수 있을 수준일지, 간신히 헬기를 띄울 수 있는 정도인지. 일단 라디오에서는 현재 캠프 인력으로 외부에서 사람들을 수송해 오는 건 무리라고 한다.

라디오 디제이가 말한다.

“이 방송 듣는 분들은 좀비가 아니라 인간이겠죠? 여의도로 오십시오. 희망 캠프에서 치료받고 힘을 합쳐 저 좀비 놈들과 싸웁시다. 오실 때에는 강북에서, 서강대교로 해서 오세요. 다른 길로 오면 안 받습니다. 밤에는 다리를 폐쇄합니다. 낮에만 오세요.”

나는 인간일까. 라디오 디제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아직 알아들을 수 있다. 하지만 내 인간성은 여러 차례에 걸쳐 허물어졌다. 가족의 시신을 뜯어먹었을 때 처음으로, 자살을 하려다 무서워 포기했을 때 두 번째로, 나 역시 감염자인 주제에 다른 감염자에게 칼을 휘둘렀을 때 세 번째로….

“저희는 초기 감염자도 받습니다. 초기 감염자한테만 통하는 백신이 있어요. 서강대교에서 간단한 검사를 통과하면 희망 캠프로 오실 수 있습니다. 밤에 서강대교 입구에 있으면 좀비들에게 공격받기 쉬우니까, 낮에, 근처에 좀비가 없는지 살피시고 재빨리 들어오세요.”

라디오 디제이가 말한다.

*

세상은 망했고, 다시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나는 서강대교 북쪽 끝에 있다.

다리는 거대한 철조망 통로다. 다리 양쪽의 인도에 철조망으로 이중벽을 만들었고, 철조망 지붕도 얹었다. 다리 서쪽 인도의 철조망 뒤에는 아무도 없지만 다리 동쪽 인도 뒤로는 소총을 든 군인들이 줄지어 서 있다. 다리 중간을 향해 마음 놓고 총을 쏠 수 있게 군인들을 배치한 것이다.

군인들은 우비를 입고 있다. 제일 앞줄의 소총수들은 앉아쏴 자세로 비를 맞고 있다. 방아쇠는 철조망 밖에, 총구는 철조망 안에 있다. 다리 중간중간에는 콘크리트 바리케이드가 지그재그 형태로 놓여 있다. 여의도로 가려는 사람은 폭 25미터, 길이 1.3킬로미터의 그 철조망 통로를 다른 사람 도움 없이 걸어가야 한다.

탕! 탕! 타다당!

멀리서 총소리가 들린다. 나는 군인들이 뭘 쏘는지, 왜 쏘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다리를 걷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간격은 20미터쯤 된다. 혼자 걷는 사람도 있고, 둘이나 셋이서 걷는 무리도 있다. 세 사람 이상의 무리는 가족으로 보인다. 어린아이가 하나나 둘씩 끼어 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침을 꿀떡 삼키고, 그런 내 행동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다음, 너!”

서강대교 북쪽 끝 입구에 서 있던 군인들 중 하나가 나를 가리키며 말한다. 세 겹으로 된 철조망 문이 차례로 열린다. 나는 절뚝거리며 다리로 들어선다. 속옷까지 모두 비에 젖어 몸이 저절로 떨린다.

바닥에 붉은색 스프레이로 쓰여 있는 문장을 나는 그때에서야 발견한다.

‘아무것도 먹지 마시오.’

콘크리트 바리케이드로 만든 미로를 돌다 한구석에서 나는 개의 사체를 발견한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털이 곱다. 개의 사체 바로 옆에 두 좀비가 몸을 수그리고 쓰러져 죽어 있다. 마치 개를 먹으려다 총에 맞은 것처럼.

나는 나도 모르게 개의 사체를 향해 몸을 숙이려다 멈칫한다.

이것이 비감염자와 초기 감염자, 중증 감염자를 감별하는 시험이다. 군인들은 밤사이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손대지 않을 살코기들을 다리 곳곳에 두었다. 그러고는 다리를 통과하는 사람들이 그 고기에 손을 대는지 대지 않는지 관찰한다. 그리고 죽은 개, 죽은 고양이, 죽은 새, 썩어가는 고깃덩이에 입을 대는 자들을 향해 총을 쏜다.

*

나는 비를 맞으며, 몸을 떨며, 절뚝이며 다리 위를 걸어간다. 곳곳에 놓인 죽은 개, 죽은 고양이, 죽은 새, 썩어가는 고깃덩이에 시선을 돌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부패한 살코기에서 나는 유혹적인 악취에 몇 번인가 거의 의식을 잃을 뻔 한다. 그러나 요행히도 그때마다 총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다.

나는 한눈팔지 않기 위해 속으로 노래를 부른다. 중독성 있는 곡으로. 그런데 가사가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고민하다가 아무렇게나 가사를 지어낸다.

뚱땡이 아저씨는 뭐든 잘 먹어. 고기를 주면은 코로 먹지요.

뚱땡이 아저씨는 뭐든 잘 먹어. 고기를 주면은 코로 먹지요.

탕! 탕! 타다당!

뒤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노래 가사를 잘못 정했다. ‘고기’라는 단어를 읊조릴 때마다 몸이 움찔움찔 떨린다. 입에서 침이 배어 나온다. 그 비릿한 피 냄새, 미끈한 기름의 질감,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게 씹히는 육질을 상상하자 내 이성은 거의 마비될 것만 같다. 당장에라도 저 잘라놓은 돼지머리에 코를 박고 상한 고기의 시큼한 냄새를 마음껏 빨아들이고 입안 가득 돼지의 볼살을 베어 물고 싶다.

탕! 탕! 타다당!

앞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여기까지 와서 참지 못하고 유혹에 넘어가다니. 나는 정신을 차린다. 뒤를 돌아본다. 다리를 반 이상 걸어왔다. 우비를 쓴 군인들이 의혹에 찬 눈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노랫말을 바꾼다.

뚱땡이 아저씨는 뭐든 잘 먹어. 과자를 주면은 코로 먹지요.

탕! 탕! 타다당! 이번에는 뒤에서.

뚱땡이 아저씨는 뭐든 잘 먹어. 과자를 주면은 코로 먹지요.

탕! 탕! 타다당! 이번에는 앞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인내력을 짜낸다. 온몸에서 진액이 나오는 것만 같다. 팔꿈치와 무릎이 굳어 있다. 나는 이제 절뚝이지도 못하고 허벅지 힘으로 간신히, 어기적어기적 걸어간다.

뚱땡이 아저씨는 뭐든 잘 먹어. 과자를 주면은 코로 먹지요.

이제 30미터 남았다. 갑자기 숨이 막히고, 나는 기침을 토한다. 기침에는 피가 섞여 있고, 입 주변이 피범벅이 된다.

뚱땡이 아저씨는 뭐든 잘 먹어. 과자를 주면은 코로 먹지요.

이제 20미터 남았다. 내 속에서 무언가 무너지고 부서진다. 아래를 보니 배가 검붉은 액체로 흥건히 젖어 있다. 아무래도 갈비뼈가 부러져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다.

더 이상 못 버티겠다고 생각할 때, 마지막 메시지를 다리 위에서 읽는다. ‘조금만 힘내세요.’ 마지막 메시지 옆에 마지막 유혹도 있다. 두툼한 소고기 덩어리다. 고기 덩어리 주변을 핏물이 비를 따라 흐르고 있다.

나는 똑바로 서려고 애쓴다. 이제는 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나는 백신을, 인간성을, 새 출발을 생각한다.

다리 남쪽 끝에서 군인들이 나를 맞이한다.

나는 마침내 ‘희망’에 이른다.

*

“세상에.” 병사 한 명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겠는데요?” 다른 병사가 말한다.

“좀비도 식욕을 참을 수 있구나.” 또 다른 병사가 중얼거린다.

“뭐해, 쏴 버려.” 가운데 서 있는 장교가 말한다.

탕! 탕! 타다당!

총구가 불을 뿜고, 나는 배와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 앞으로 넘어진다. 땅에 고인 물웅덩이에 머리를 박는다. 억울하다. 난 시험을 통과했는데.

피가 역류해 식도를 타고 넘어온다. 입에 고이는 짭짤한 맛이 엄청나게 자극적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과연 이들에게 백신이 있기는 있었을까?

그러나 점차 의식이 흐려지면서 감각도, 사고도 점점 단순해진다. 나는 마침내 두 단어만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아파. 너무 아파.

글 장강명(소설가), 일러스트 백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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