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이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그 니부어 맞다. 기도문의 이름은 ‘평온을 비는 기도’다. 미국의 금주협회에서 애용되면서 유명해졌다. 아마 이 기도문을 아는 사람도 다른 버전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테다. 금주협회를 통해 다양한 버전이 양산되었기 때문이다.
이 기도문이 금주협회에서 애용된 이유에 관해선 알코올 중독자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만큼 이 기도문이 성찰하고 있는 지혜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십년 전 술 문제를 겪었던 나 또한 그랬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 중독자들은 알코올 중독이 삶에 초래한 불행과 그 결과를 결코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적어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더 이상 술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것, 즉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음주가 가져온 삶의 비극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자칫 중독을 다시 내 삶 안으로 끌어들이는 변명이 되지 않도록 분별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혜가 필요하다.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기도문은 내게 위안을 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성서를 너무 자주 인용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그건 중세 이후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빼어난 지혜들이 기독교를 인용하거나 부정하거나 극복하기 위해 쓰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세를 암흑의 시기로 보지만 그 안에서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베끼는 방식으로 기독교 세계관을 강화하거나 혹은 아예 뒤집어엎고자 하는 정치적, 철학사적 흐름이 있었다. 그런 걸 읽고 자란 인간이 비록 교회와 결별했더라도 이를 인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사유를 저버린다는 건 낭비에 가깝다. 사실 혐오와 배제가 융성한 세상에 내가 어떤 이웃이 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하기 위해 신약보다 인용하기 좋은 텍스트는 없다. 설득의 대상이 주로 기독교인이라는 건 아이러니다.
니부어의 기도문을 다시 떠올린 건 이 짧은 글이 담고 있는 지혜가 단지 음주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만 유효한 게 아니라는 걸 날이 갈수록 강하게 실감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기도문이 지칭하는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한정할 때 더욱 그렇다.
바꿀 수 없는 걸 평온하게 받아들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바꿀 수 없다는 말에서 누군가는 체제나 구조 같은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혹은 부장님 술버릇 같은 걸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사실 바꿀 수 있으며 실제 늘 바뀌고 있는 것들이다.
정말 바꿀 수 없는 건 이미 벌어진 일들이다. 내가 한 말과 행동, 선택으로 인해 이미 벌어진 일들 말이다. 이미 벌어진 일에 마음이 묶여 신음하는 소리를 들어보라. 얼마나 참담한가. 벌어진 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쉬운 일이라면 그토록 많은 시간여행 이야기들은 결코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너무 늦게 인정하면 삶이 파국으로 빠지는 걸 막을 수 없다. 오스카 와일드의 경우를 보자.
1890년대는 오스카 와일드의 해였다. 세계를 누비며 미학 강연을 했고 대중의 관심과 사랑은 꺼질 줄 몰랐다. 미국에 방문했을 때 세관에 “내 천재성 이외에는 신고할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은 전 세계 나르시시스트들의 귀감이 되었다. 1888년에는 <행복한 왕자>를, 1891년에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썼다. 같은 해 말에는 <살로메>를 완성했다. 모두 걸작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유미주의자로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그의 작품은 읽지 않고 소란스러웠던 삶의 외양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작품 속에서 사회적 책임과 윤리로부터 괴리된 아름다움이 얼마나 추한 것인지에 관해 늘 피력했다. 아무튼 1891년은 그렇게 오스카 와일드 인생에 있어 가장 화려한, 아무런 흠결이 없는 해로 기록될 참이었다. 그를 만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알프레드 더글러스는 스물한 살의 옥스퍼드 대학생이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사랑에 빠졌다. 수렁에 빠졌다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살다 보면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가슴 속에 큰 구멍이 있어서 아무리 큰 사랑을 바쳐도, 아무리 비싼 보석을 넣어도 채워지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반대방향으로 있는 힘껏 도망쳐야 한다. 잡아먹힌다. 아무튼 알프레드가 그랬다. 속물에 사치가 심했고 오스카가 멀어지려 하면 자살하겠다며 상대의 마음을 가지고 놀았다. 오스카 와일드는 빈털터리가 되어가면서도 그런 그를 사랑했고, 동시에 빠져나오고 싶어 했다.
그런 와중에 알프레드의 큰형이 자살했다. 동성애 관계가 발각된 것에 따른 두려움 탓이었다. 하필 상대가 당시 총리였기 때문에 이는 정치적 스캔들이기도 했다. 덮을 게 필요했다. 아버지 퀸즈베리 후작은 막내마저 동성애 문제로 잃을 수는 없다는 표면적 이유를 들어 당대의 슈퍼스타 오스카 와일드를 동성애 혐의로 고발했다. 알프레드는 사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를 공격하기 위해 오스카를 이용했다. 알프레드에게 설득당한 오스카 와일드는 퀸즈베리 후작을 맞고소했다.
훗날 퀸즈베리 재판으로 알려진 이 송사에서 오스카 와일드는 패소했다. 대중이 스타의 탄생보다 좋아하는 건 스타의 몰락이다. 영국의 모든 극장과 서점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흔적이 지워졌다. 시내에선 그의 패배를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다. 그는 파산했고 2년 동안 수감되어 중노동에 시달렸다. 이 기간 동안 알프레드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심연으로부터>를 보면 불과 몇 년 전까지 지구 위에서 가장 반짝거리는 인간이었던 오스카 와일드가 어떻게 말라 죽어가고 있는지 생생하게 드러난다. 거대한 자의식은 곧 거대한 피해의식으로 변모했다. 그는 원망과 후회, 피해의식에 몸부림치며 과거의 일들을 하나씩 전부 복기하기 시작한다. 네가 내게 한 이 끔찍한 짓을 좀 보라고 비명을 지르며 연인이 자기 삶에 끼친 폐해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한다.
출소가 임박해서야 겨우 벌어진 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영혼을 구할 수 있는 시점을 오래전에 지나쳤다. 너무 늦었다. 그는 완전히 망가졌다. 뒤늦게 삶 앞에 겸허해졌지만, 이미 삶 자체가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3년 후 죽었다. 죽기 전 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삶이 뭔지 모를 때 글을 썼습니다. 이제는 그 의미를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쓸 게 없습니다. 삶은 글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살아내는 것입니다. 나는 삶을 살아냈습니다.”
바꿀 수 있는 걸 바꿀 수 있는 용기에 관해서는 니체를 다시 한 번 인용하고 싶다. 얼마 전 ‘삶의 바닥에서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라는 글을 썼다. 니체의 삶과 후기 철학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네가 아무리 추악한 결론에 이르러 있더라도 아직 그것은 삶의 결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너는 아직 할 수 있는 것이 많고 그것을 이루려면 피해의식으로부터 결별하여 마침내 ‘그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니체의 영원회귀와 아모르파티)을 외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글에서 소개했듯 니체 또한 앞선 오스카 와일드의 사연처럼 시련을 겪고 피해의식에 파묻혀 숱한 편지를 썼다. 그러나 주저앉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일어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성했다.
바꿀 수 있는 걸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인간을 니체의 언어로 바꾸어 말하자면, 그것은 위버멘쉬일 것이다. 한때 초인으로 번역되었으나 이제는 극복하는 인간, 혹은 그냥 위버멘쉬라고 이야기한다.
위버멘쉬는 전지전능한 슈퍼맨이 아니다. 말 그대로 스스로를 극복해나가는 인간이다. 영원회귀와 아모르파티는 이 삶이 영원히 똑같이 반복된다 할지라도 주체적으로 끌어안고 긍정하며 살아내겠다는 자기선언이었다. 위버멘쉬는 이를 실천하는 인간이다. 나아가 내 삶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만큼 제대로 바꾸고 극복하며 살아내겠다는 이야기다. 즉,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란 자기 삶을 향한 주체적인 긍정으로부터 나온다.
처음 읽을 때는 위버멘쉬를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다음 단계 정도로 이해했다. 오랜 세월 몇 번 되풀이해 읽다 보니 위버멘쉬란 단계가 아닌 태도에 붙여지는 이름이 아닐까 싶어졌다. 고통마저 긍정하고 사랑하며 운명을 바꾸어나가는 삶이란 단 한 번의 각성이 아닌 끊임없는 다짐과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광장에서 마부에게 학대당하고 있던 말을 부둥켜안고 울부짖다 쓰러진 뒤 완전히 미쳐버린 니체의 마지막을 떠올릴 때마다 그래서 더욱 눈물이 난다. 아마도 평생 동안 마부에게 채찍으로 맞아왔을 말을 보고 그는 무엇을 떠올렸을까. 그런 삶조차 긍정하고 주체적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에 관해 생각하며 그는 대신 맞아주기 위해 말을 감싸 안았던 것이다. 울다가 혼절하고 미쳐버린 것이다. 영원회귀고 아모르파티고 위버멘쉬고 그냥 아무 말이나 떠들어댔던 게 아니라 그 길에 이르는 처연함에 관해 누구보다 예민하게 공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니체가 이때 미치지 않았다면 분명히 개인들이 서로의 구원을 위해 필요할 때 대신 맞아주며 연대하여 위버멘쉬에 이르는 길을 제시했으리라 생각한다.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별하는 지혜가 남았다.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없다며 인내하고 받아들이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꿔야 한다며 이미 벌어진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니부어의 기도문은 구조상 이 마지막 구절을 위해 쓰인 것이나 다름없다.
니부어는 그러므로 신에게 매일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생각-사고를 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다.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하다 했고,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이 평범한 것은 사고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thought-defying)이라며 강조했던 바로 그 생각-사고 말이다. 시키는 대로 주어진 대로 혹은 우리 편이 하라는 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생각하고 의심하고 고민하는 태도만이 오직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꿔야 할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밝은 눈으로 이어진다. 이 글이 단 한명의 독자라도 그런 밝은 눈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이다.
허지웅(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