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강북 나들이였다. 폭염주의보 전의 서울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걷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지긋지긋한 마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았을 날이었다. “술이나 마시고 헤어지자”고 제안한 이가 나였는지, 친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을 지나 경의선 숲길 공원을 걷다 보면 연남동이 나온다. 연남동을 걸어 다니는 사람 중 우리가 가장 나이 든 것만 같아 위축되었는데, 그런 기분도 잠시였다. 푸릇푸릇한 청춘들을 보고 있노라니 대학생 시절이 떠올랐고, 연남동에 있는 술집이 ‘옥타’가 생각났다.
5년 전, 처음 옥타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한 자리를 지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워낙 부침이 심한 상권이다. 소비자들의 기호는 늘 바뀐다. 그런데 이곳은 그런 세태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늘 어두운 조명을 켜고 눈이 와도, 비가 와도 그대로였다. 잊을 만할 때 한 번씩 들러 위안을 얻고 가는 그런 곳이었다. 이렇게 작고 소담한 일본식 선술집을 사람들은 ‘심야 식당’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굳이 그런 식의 허울을 옥타에게 붙이고 싶지 않았다.
음식 2~3가지를 놓으면 꽉 차는 조그마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친구와 마주 앉았다. 이곳의 메뉴는 단출하고 정갈하다. 튀긴 가지 위에 양념간장을 얹은 ‘아게다시나스’, 닭튀김, 수제 군만두인 ‘테즈크리교자’, 야끼소바 등 일본 선술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음식들이다. 하지만 이런 음식들을 파는 곳을 찾기란 의외로 어렵고, 맛있는 집은 더 드물다. 많은 백반집 중 밥이 맛있는 곳을 찾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술 종류도 다양하다. 보리소주, 고구마소주, 매실 술, 청주는 물론이고 하이볼 등 칵테일의 가짓수도 많다.
아게다시나스와 닭튀김을 주문했다. 달콤한 매실 술과 고구마소주를 한 모금씩 나눠 마시면서 그 옛날의 기억들을 꺼냈다. 바로 튀겨 나오는 가지 튀김과 닭튀김은 예상대로 적당히 맛있었고, 아주 뜨거웠다.
‘완벽한 술집’이라는 것은 전설의 유니콘 같은 관념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옥타는 다르다. 적당히 맛있는 음식, 내 취향에 맞는 다양한 술, 편안한 분위기, 그 옛날 추억까지, ‘우리의 완벽한 술집’이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