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푸드 유튜버들. 사진 왼쪽부터 ‘맛상무’의 김영길씨, ‘애주가TV참PD’의 이세영씨, ‘산적TV밥굽남’의 오진균씨. 박미향 기자
강원도 홍천의 파란 하늘엔 하얀 구름이 가득하다. 짙은 초록빛 나무 사이로 바람도 분다. 지난달 16일, 청정한 홍천 산자락 아래 있는 ‘홍천 사랑말한우 영농조합’의 나종구(67) 대표가 ‘먹방’ 유튜버 오진균(39)씨를 반갑게 맞는다. 오씨의 채널은 ‘산적TV밥굽남’이다. 구독자 수는 84만여명(6월3일 기준). “요즘도 주문 전화가 계속 온다.” 나 대표의 인사말에 오씨가 머쓱해하며 웃는다. 지난 4월 말, 오씨는 ‘농가 상생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홍천 사랑말한우’의 특별한 소고기를 자신의 채널에 소개했다. “한우 산업에서 중요한 건 튼튼한 한우 번식 시스템이다. 그런데 다산 한우는 저가에 팔리다 보니 좋은 유전자를 가진 암소도 몇 마리 안 낳고 도축장행이 된다.” 나 대표의 말이다. 그는 이런 현실을 바꿔보려고 특별한 소고기를 세상에 내놨다. 드라이에이징(건조 숙성) 한 다산 암소다. 오씨는 “사람으로 치면 노인인데, 이 과정을 거치면 풍미가 올라간다. 가격은 일반 한우보다 싸다. 이런 걸 널리 알려 농가가 안정적인 기반을 닦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이 소고기에 ‘밥굽남산적스테이크’란 이름을 달아 소속사 ‘다이아티브이(DIATV)’의 인플루언서 쇼핑몰인 ‘다이아마켓’을 통해 5월22일부터 판매한다. “수익금 전액을 지역사회에 환원할 생각”이라며 “농가와의 상생 작업은 보람된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강원도 찰옥수수, 제주 광어 등 다양한 상생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홍천 사랑말한우 영농조합’을 찾은 오진균씨(사진 왼쪽)가 나종구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미향 기자
♥ 유명 유튜버들의 신선한 도전
한동안 먹방 유튜브의 대세는 과식이나 괴식이었다. ‘왜’가 없다. 왜 먹는지, 왜 그렇게 많이 먹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저 많은 양을 우겨 넣은 그로테스크한 영상에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자신도 모르게 ‘구독’, ‘좋아요’를 클릭한다. 하지만 3년 전부터 ‘먹방’ 유튜브 세계에 미세한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산적TV밥굽남’의 오씨처럼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려는 유튜버나 꼼꼼한 맛 평가가 영상의 대부분인 ‘리뷰 유튜브’가 등장한 것이다. ‘애주가TV참PD’(구독자 126만명·6월3일 기준)의 운영자 이세영(39)씨와 ‘맛상무’(57.6만명·6월3일 기준)의 김영길(46)씨가 대표적인 리뷰 유튜버다. 간장 국물에 밴 생강 향의 풍미를 칭찬하거나 한국에선 아직 생소한 갑각류 ‘크레이피시’의 원산지 등을 소개한다. 이젠 음식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익한 채널이 대세다.
지난 4월, 이씨도 오씨처럼 ‘사회적 책임’에 나섰다. 소속사 다이아티브와 벽제농협·일산농협의 협업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다. 코로나19로 판매가 어려워진 얼갈이배추·열무 생산 농가를 돕자는 취지였다. 그는 수확한 2.3t 얼갈이배추를 전량 수매해 김치를 담아 다이아마켓에서 팔았다. 이날 김씨와 오씨도 ‘알바생’(?)으로 동참했다.
지난달 16일 홍천에 이들 세명이 모였다. 인플루언서지만 이들에게도 걱정은 있다. “과거 지나치게 상업화된 일부 블로거들 때문에 (콘텐츠의) 신뢰가 떨어진 것처럼 이쪽(유튜브)도 비슷하게 될까 걱정이다.” 김씨 말에 이씨가 거든다. “광고라는 걸 밝히지 않고 아닌 척 영상 올리는 건 문제 있다. 유튜브 시장도 캠페인 등을 통해 깨끗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구독자 수에 따라, 팬과의 소통 정도에 따라 수익이 생기는 유튜브 세계에서 이들도 광고를 무시하고 채널을 운영할 순 없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광고는 광고라고 밝히자는 것”이다. 광고 수익에 종속된 영상은 결국 유튜브 생태계를 변질시키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시청자 몫이 된다. “정직하게 영상을 제작하는 이들에게 수익이 공정하게 돌아가야 한다.” 이씨의 말이다. 그는 이어 “우리도 수익 활동 안 할 순 없다. 다만 다 같이 잘 살면 좋겠다. 농가 상생 활동은 그런 생각에서 하는 거다. 우리 영향력이 도움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김씨는 “우리 활동이 대단한 건 아니다.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게 좋고, 많은 이가 좋아해 주니 더 좋다. 우리의 작은 재주가 (세상에) 도움이 된다는 게 보람 있다”고 말한다.
♥ 이들은 어떻게 유명 유튜버가 되었을까?
대전에서 식품제조유통회사를 친구와 동업하는 ‘맛상무’ 김영길씨는 실제 ‘상무이사’다. “단순하게 회사 온라인 채널 하나 만들자”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 지금에 이르렀다. 그가 먹거리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가능한 이유다. 그의 별명은 ‘대맛남’. ‘대신 맛을 봐주는 남자’란 뜻이다.
10~20대가 중심인 푸드 유튜브 세계에서 40대인 그는 돋보이는 존재다. “진지하게 접근하는 맛 리뷰 유튜버는 나이 든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 신뢰가 더 가는 것 같더라. 결국 맛은 경험이다.” 그도 한때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피시방에서도 방송도 해봤다. 하지만 집토끼만 놓치는 꼴이 됐다. 조회 수가 급격하게 는 건 스웨덴 음식 수르스트뢰밍(청어절임)을 먹으면서 설명한 영상이 랜선을 타면서였다.
‘애주가TV참PD’ 이세영씨는 본래 ‘맛상무’를 보면서 술 한잔하는 게 낙이었다. 각종 동호회 활동도 시들해졌을 때 유튜브에 빠졌다. 20대부터 동대문시장 노점에서 장사를 시작한 그는 여러 번 사업 실패의 쓴맛을 봤다. 이른바 “홀랑 망한 것”이다. 대박이 터진 건 요식업계에서였다. 유명한 포차에서 칼질부터 배운 그는 작은 해산물 포장마차를 열었는데, 손님이 몰려들었다. 프랜차이즈 지점만 40여개 열 정도로 성공했다.
2년 전 ‘나도 한 번 유튜버 돼볼까’ 하는 생각에 카메라, 편집 기계 등 고가 장비를 사들였다.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결국 그 몰입의 즐거움 때문에 이젠 아예 전업 유튜버가 됐다. “처음엔 편집을 몰라 녹화만 9시간을 했다. 조금만 말이 꼬여도 다시 시작했다”며 옛날을 회상하는 그는 “유명 유튜버라도 3년이면 잊히는데, 죽을 때까지 롱런하는 유튜버이고 싶다”고 말한다. 구독자 100만이 넘은 그. 그 비결엔 체계적인 ‘작전’이 있었다. “대한민국 안주 키워드는 다 등록했다. 포털에서 검색하면 내 채널이 다 걸리도록 말이다.”
‘산적TV밥굽남’ 오진균씨는 1999년 부친이 귀농해서 홍천에 자리 잡는 바람에 그의 첫 직장은 부친의 농장이 됐다. 꽃도 팔고 소도 키웠다. 식당 ‘오고집 한우농장’과 글램핑장을 운영하면서 청년 농업후계자로 활동했다. 2018년께 “투자 대비 수익이 높은 핫한 사업을 찾다가 유튜브를 하게 되었다”는 그. 하지만 좀처럼 구독자 수가 늘지 않던 그에게 ‘애주가TV참PD’ 이씨가 은인처럼 나타났다. “아파트에서 ‘먹방’ 하지 말고 야외로 나가라. 콘셉트를 잡아라.” 이씨의 조언이었다. 그날로 글램핑장에서 장작불 태우면서 미국식 바비큐를 선보이자 구독자 수에 불이 붙었다.
그저 부럽기만 한 이들의 일상에도 그림자는 있다. 김씨는 “유튜버가 갖춰야 할 덕목 중의 하나는 ‘멘탈 관리’”라고 한다. 악성 댓글은 기본이다. 어린이날 자녀를 해치겠다는 협박 메일도 받았다. “실시간 라이브에 바로 댓글을 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더 자극적인 댓글을 다는 듯하다.” 이구동성으로 이들은 말한다.
자신들의 리뷰 때문에 한 업체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도 채널 운영의 고려 요소다. 부정적인 평을 잘 안 하는 이유다. 물론 “진짜 사기꾼”을 퇴치한 적도 있다. 이씨는 중국산 생선을 국산이라고 속인 업체 제품을 직접 성분 분석해서 공개한 적 있다. 기부도 많이 한다는 이들, 앞으로 행보가 더 궁금해진다.
홍천(강원도)/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